몇 개월 전에 ebook을 쓸지 말지 계속 고민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구매한 것이 리디 페이퍼 프로. 다른 리더기를 놔두고 이것을 선택한 이유는 화면이 크고, 물리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듯 리디북스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책이 아니라면 볼 수 없다는 점. 루팅 하게 되면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구입하자마자 바로 루팅 했다. 그러나 며칠 써보면서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초기화했다.
이번 글엔 리디북스를 선택한 이유와 리디 페이퍼 프로를 순정으로 돌린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ebook을 선택할 때의 조건이 있었다. 가벼워야 했고 책갈피 기능이 있어야 했다. 책갈피 기능은 ebook 어플이라면 어디든 있는 것인데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표시한 부분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어떤 기기에서든 확인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경우 책을 보면서 중요한 문구에는 책갈피 스티커를 붙인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아 블로그나 노트 앱(에버노트나 노션 등)에 정리해 둔다. 전자기기에 책갈피 스티커를 붙일 순 없지만 다행히도 비슷한 기능인 형광펜이 있다. 맘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그 부분을 드래그하여 형광펜으로 칠하면 된다. 이 기능이 매번 책갈피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랑 똑같다. 간혹 붐비는 지하철에서 책갈피 스티커를 떼다가 떨어뜨리면 입에서 불경스러운 단어들이 튀어나오는데 ebook을 쓰면서 그럴 일이 사라졌다.
표시해둔 형광펜 문구를 정리해야 하는데 리디북스의 경우 홈페이지 -> 마이리 디 -> 독서노트로 들어가면 내가 쳐둔 형광펜이 잘 기록되어 있다. 물론 그전에 와이파이를 연결해두어야겠지만. 텍스트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긁어다가 내가 정리하는 곳에 옮기는데 정말 1분도 안 걸린다. 검색도 가능하다는 것은 덤이다.
종종 독서노트 페이지가 느리거나 접속이 안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음에 접속해주면 원활히 접속된다.
그에 반해 타사이트에서 제공하는 ebook, 대표적으로 교보문고의 경우는 이 기능이 부실하다. 기기에서 형광펜으로 그어도 그걸 PC에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리를 하려면 ebook리더기로 그 부분을 켜서 사진을 찍어야 할 판이었다. 안 그래도 ebook리더기는 성능이 대부분 낮은데 페이지를 이동할 때마다 버벅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형광펜 표시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할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기기를 잃어버리면? 그간 표시한 것을 다 날려버리지 않을까 싶었다. 백업을 받아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연락처도 백업을 잘 안 하는데 그런 걸 손수 할리가.
사실 같은 ebook이라 하더라도 교보가 가격적인 면에서 더 저렴한 경우가 있다. ebook자체가 종이책에 비해 30% 정도 할인하는데, 교보는 여기에 10%를 더 할인하는 책이 리디북스보다 많았다. 그리고 캐시를 충전할 때도 교보가 단 1%라도 추가 포인트 적립을 해주는 경우도 있으며 종종 빨리 읽고 싶은 책이 교보에만 있는 경우도 있다.(시간지나면 리디에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디북스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책갈피 공유 기능 때문이다. 만약 가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교보문고를 추천한다. 아,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볼거라면 그것도 역시 리디 페이퍼는 비추한다.
ebook을 보려면 리더기로 보는 게 좋다. 만약 아이패드 같은 것이 있다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없으므로 리더기를 사야 했다. 패드류로 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리더기로 보는 게 좋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리더기 가격적인 면은 충분히 매력포인트가 있었는데 평균 10~20만 원 사이인데 반해 아이패드는 5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왠지 사려면 셀룰러도 추가해야 할 거 같고, 용량도 커야 할 거 같고 하다 보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자기기가 2개 이상 있다면 한쪽만 계속 사용하게 된다. 내가 아이패드를 사고 한 달도 안돼 되파는걸 2번이나 하면서 깨달은 진실이다. 내 경우는 노트북을 대부분 항시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핸드폰과 노트북 사이에 태블릿이 낄 자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잘 쓰는 거 같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루틴의 목적 하나였던 타사의 월정액 서비스도 막상 리디 셀렉트를 쓰다 보니 싹 잊게 되었다. 밀리의 서재 같은 경우 같은 월정액 서비스인 리디 셀렉트와 비교했을 때 볼 수 있는 책이 더 많지만, 리디 셀렉트에서 제공하는 책도 다 못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리디 셀렉트보다 밀리의 서재를 더 많이 이용할 거라면 리디 페이퍼가 아니라 다른 기기 구매를 추천한다. 굳이 안 되는 기기에서 루팅 하면서 이리저리 해보려 해 봤자 피곤만 동반한다.
무엇보다 루팅을 할 경우 기기가 좀 불안하다. 책을 다운로드하고 보는 부분에선 문제가 안되는데, 배터리가 어느 순간 광탈한 경험을 3번이나 했다. 분명 전날 배터리 잔량이 70% 이상 있었는데, 다음날 보면 Low Bettery라는 문구가 화면에 떠있다. 처음에는 화면이 하루 종일 켜져 있었나 생각했는데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포켓에 넣고 다녔으므로 자동으로 켜질일도 없었고 켜졌다 하더라도 3분 후에 자동으로 Sleep 모드로 되기 때문이다. 방전이 되거나 배터리 사용량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순정으로 돌아오고 나니 그런 문제가 사라졌다. 매일 충전하면 문제없겠지만 보통 3~5일에 한번 리더기를 충전했고 그때마다 위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다시 돌려놓았다.
얘기하는 김에 장점을 몇 개 더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가볍다. 아마 아이패드 미니보다 가볍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애초에 든 기능이 없고 많은 배터리를 요구하는 제품이 아니니 그런 것에서 많이 자유로운 듯하다. 그리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험하게 쓰기 좋다. 아이패드 같은 고가품을 사면 케이스를 예쁘게 씌워주고 조심스레 들고 다녀야 할 거 같은데, 이건 한 손으로 덜렁거리며 들고 다닌다. 심리적으로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자주 들고 다니니까 책을 자주 볼 수 있게 된다. 핸드폰을 자주 하는 이유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언제든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기 때문도 있다.
그리고 책 읽는 행위 외 다른 것에 방해받을 일이 없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각종 알람에 이리저리 앱을 옮겨 다니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패드류도 똑같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에 반해 리더기는 책 읽는 것 말고는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알람이 오는 경우가 없다. 유혹하는 유튜브도, 카카오톡의 알람도 없다. 그래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켜서 보기만 하면 된다.
아무래도 리더기는 항상 손에 들고 다닐만한 물건은 아니다. 그에 반해 핸드폰은 항상 손에 들고 다닌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는 핸드폰을 이용하고, 지하철 같이 긴 시간을 가질 때는 리더기를 이용한다. 두 개의 전자기기를 양손에 들고 있으면 그렇게 불편할 수 없다. 그래서 둘 중 하나만 써야 하는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각기 디바이스에서 하나의 책을 볼 때 불편한데, 리더기가 항상 와이파이와 연결되어 있다면 마지막에 본 페이지를 서로 공유하면서 앞으로 봐야 할 페이지를 한 번에 이동시켜 주겠지만, 주로 펼쳐보는 지하철은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진다. 그렇다고 페이지 번호를 외우기도 애매한 게 화면 크기에 따라 페이지 번호가 새로 채번 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그나마 목차로 이동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다음으로 컬러 표현이 안된다. 흑백(정확히는 전자잉크)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컬러풀한 화면을 표현하기에 부적절하다. 그래프의 경우 여러 개의 선이 그어져 있을 때 각각 어떤 걸 표현하는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이책 한번 볼래? 하고 줄 수가 없다.
소소한 단점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장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 책을 여러 개 들어야 할 때의 무거움에서 해방된다는 것, 그리고 손으로 들었을 때의 가벼움은 절대적인 장점을 가진다. 내 경우는 구매하는 책은 ebook으로 보고 도서관에서 종종 종이책을 빌려서 본다. 종이책에 표시해둔 책갈피를 사진으로 찍을 때마다 ebook의 편리함이 자꾸 떠오른다.
만약 교보에서 형광펜 공유 기능을 좀 더 신경 써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내손에 들려있는 건 리디 페이퍼가 아닐 것이고, 내가 애용하는 곳도 리디북스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 보기엔 사소한 기능이 누군가에겐 그 제품을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이번 ebook을 쓰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가격 우위에 열광하지 않는다. 이제는 취향을 소비하는 시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