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꽂힌 영화는 몇 번씩 다시 본다. 그때의 여운을 다시금 느끼기 위해 보기도 하고, 그리워서 보기도 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해 본다. 때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수차례 본 영화가 더러 있는데 <비긴 어게인>, <인턴>, <너의 이름은>등이다. 딱히 장르를 가리진 않고 선별 조건은 간단하다. 얼마큼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오늘은 이름의 가치를 알려준 <너의 이름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너의 이름은>의 감독 신카이 마코토를 알게 된 것은 이전작인 <언어의 정원>을 통해서다. 우연히도 영화를 접한 당시엔 언어에 대한 관심이 폭증할 때였다. 외국어가 아닌 우리가 말하는 언어와 그것이 삶에 미치는 아주 진부한 그런 생각을 매일 하던 차였다. 언어는 그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고 더 나아가 삶을 비춰준다는 말은 내 뇌리 속에 강하게 박혔고, 그런 생각을 가질 때쯤 본 게 바로 <언어의 정원>이었다. 말하지 않는 공간에서조차 수많은 언어가 오간다는 작품의 설정과 아울러 아름다운 그림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후 보게 된 <너의 이름은>에서는 영화에서나 보여줄 법한 극적인 우연적 만남뿐 아니라 매일 보면서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인연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내 이름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아무도 없는 외딴곳에 산적도 없고 해외에 나가 살아본 적도 없다. 때문에 이름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이름을 잊는다는 것, 잊혀간다는 것이 어떤 괴로움을 주는지 가슴 깊이 와 닿는 그런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마 죽음에 대한 생각도 겹쳐있었던 거 같았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원피스>에서는 수많은 명언을 탄생시켰는데 그중 하나가 생각난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여,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때다.
- <원피스> 중
상대방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이름을 적으려는 찰나 모든 기억이 사라지며 외치는 절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순간에 상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적어둔 손바닥을 펼쳤을 때 적힌 '너를 좋아해'라는 표현도 애잔하면서 동시에 그리움을 전한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고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너무나 그립고 애달픈 일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언젠가 들었던 소설가 김영하의 강의에서 소설이란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보는 시간을 갖기에 의미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의 입장이 돼보려면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봐야 한다. 등장인물이 가진 생각과 사상, 환경, 분위기,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 등을 관찰하고 감정이입을 해보며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반응에 대해 온전히 공감해봐야 한다. 그래야 그 일들이 얼마나 가슴 뛰고 슬픈 일인지 알 수 있다.
스포에 민감한 시대다. 스포 당하면 처음 볼 때의 감동과 반전의 재미가 사라지기에, 뭔가 손해 본다는 느낌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스포 된 스토리를 보면 모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메인 스토리만 따라가기도 벅찼던 순간을 벗어나 잔줄기에도 눈 돌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랑이야기로만 기억되다가 거듭 보면서 존재에대해 생각하게 되고 잊혀져가는 슬픔에 공감하는 것처럼, 다시본다는 행위는 좀 더 의미있게 바라보겠다는 행동이며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내 삶에서 무심코 지나쳐가는 것들을 돋보기로 비춘다. 그래서 포장지로 선물받는 느낌이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순 없지만 그렇기에 기대감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