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Nov 25. 2019

모듈화를 원하는 회사

이전까지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다시 회사에 입사하면서 느낀 것 중 가장 큰 온도차는 바로 모듈화 부분이다. 담당업무를 모듈화하고 담당자를 모듈화 한다. 모듈화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외주다. 외주 시스템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음식을 만드는 회사가 음식에 관련되지 않은 것까지 커버하기엔 비용적인 측면이나 활용도에서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외부의존도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요즘이다.


생산 효율성 향상은 기업이 항상 원하는 것이다. 한정된 리소스를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다면 수익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은 신경 써야 할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관리 효율성이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1년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직과 퇴직을 한다. 어느 한 업무를 차지하는 개개인은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 때문에 기업은 반드시 이 리스크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기업이 이 부분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담당자가 나간다고 하면 그제야 구두로, 혹은 문서를 이용해 인수인계라는 형태로 짧은 시간 안에 끝낸다. 적지 않은 사고가 이 인수인계 이후에 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애 대응 능력이나 파생효과에 대한 고려가 떨어지기 때문에 함부로 손을 대길 꺼려한다.


매뉴얼이 촘촘히 만들어져 있다면 담당자가 바뀌어도 두렵지 않다. 잘 다듬어진 매뉴얼을 보며 그대로 실행하면 되기 때문에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때문에 이런 모듈화는 회사에서 가장 원하는 관리형태이자,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듈화가 회사를 좀먹는 거라면 그래도 그런 방식으로 운영하려 할까.


쉽게 교체가 가능하다는 말은 관련 항목에 대해 전문성이 길러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일이 바뀌면 일에 대한 숙련도가 붙지 않는다. 일이 낯설면 새로운 생각, 더 좋은 생각을 하기 힘들다. 당장 되게 하는 일을 쫓아가는데도 벅차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종종 이 같은 사태를 팀장을 세워 전반을 위임함으로써 어떻게든 모면하려 한다. 그러나 팀장은 실질적인 실무자가 아니다. 직원들이 업무를 대하면서 가지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의 결과만 받는 존재다. 물론 팀 문화가 훌륭한 곳이라든가 훌륭한 팀장은 직접 실무선을 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며 개개인이 가지는 노하우는 아무리 많은 대화를 해도 완벽히 전달되지 않는다. 모듈화는 대체를 쉽게 하는 대신에 기업의 혁신을 방해하는 양날의 검이다.


한국은 외주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 타이밍에 왜 외주 문화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직원들이 가지지 못하는 전문성을 외주를 통해 해소하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전문가를 길러내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에 투자하느니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직원을 두고 선별한 업체 중 하나를 선택해 외주를 주고 관리하도록 맡긴다. 즉 기업에 관리자만 남고 실질적인 엔지니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체가 가능하니 새로운 사람을 데려다 앉히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다니던 사람이 일을 그만두게 될 때, 다음 선택지가 좁은 이유도 이런 일을 반복하다 나온 경우다. 관리라는 것은 특성상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로 올라갈수록 피라미드 형태가 강해지고, 소수만 살아남는다. 대외협상능력 외에는 특출한 능력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를 배우기 시작한다. 직급이 어느 정도 차면 골프를 시작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외주 문화는 수많은 중소기업을 살리는 바탕이 된다. 게다가 요즘은 프리랜서를 연결시켜주는 플랫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프리랜서를 쓰는 것이 직원을 채용해서 진행하느 것보다 훨씬저렴하다. 단일 몸값은 프리랜서가 당연히 비싸지만 복지나 혜택, 비용적인 측면에서 정직원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프리랜서를 두는 게 경제적 이익이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의뢰를 해 일을 해결할 수 있게 요청한다. 이로 인해 기술은 축적되지 않고 관리 노하우만 축적된다. 관리 노하우라도 쌓이면 좋은 거 아니냐 라고 반박한다면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언뜻 보면 노동자가 불리하고 기업이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이 지속된다면 유능한 팀원들은 하나 둘 회사를 탈출하기 시작한다. 부족한 기술력은 외부에서 사 오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차별화된 브랜드를 가질 수 없다. 또한 시대에서 요구되는 빠른 피드백과 유연성이 떨어지게 된다. 결국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경영방침이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으로 보는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