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겡끼데스까?~ 덕분에요

by 탕헤르의 달

S상 : 오겡끼? (오늘도 별일 없어?)

나 : 응, 겡끼요. 아리가또. S상와? (응, 좋아. 고마워. 넌?)

S상 : 오카게사마데. 겡끼. (덕분에. 아주 좋아)


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땀을 흘리며 교실에 들어서면 스님이자 같은 반 친구인 S상이 제일 먼저 안부를 물어준다. 그리고 자신은 내 덕분에 아주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내가 널 위해 뭘 했다고. 나는 조금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등굣길에 지나는 '헤이안 진구(신사)'의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 신사(神社) 입구 출입문에 띠풀로 엮은 커다랗고 둥근 고리가 설치된 까닭이다.


며칠 후면 다가오는 6월 30일은 한 해의 반을 보내고, 남은 반을 맞이하는 날이다. 6월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신사(神社)'는 저마다 입구에 커다란 '띠풀의 고리'를 설치하고, 남은 반쪽에 대한 ‘무사’를 기원하는 액막이 행사를 집행한다.


이즈음 신사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은근한 풀냄새를 맡으며 ‘띠풀의 고리’를 세 번 넘은 후 경내로 발을 디딘다. 이를 '치노와쿠구리(茅の輪くぐり)'라고 부른다.


고리를 넘기 전에 먼저 가볍게 목례를 한다. 왼발로 고리를 넘고 왼쪽으로 한 바퀴 돌아 정면에 선다. 다음에는 고리의 오른쪽으로 돌아 나와 다시 정면에 선다. 마지막은 다시 왼쪽으로 돌며 고리를 건넌다. 이 동선의 모양은 마치 '무한대의 기호(∞)' 같다.


'무한대의 기호'를 그리며 '치노와쿠구리'를 하는 동안, 반년 동안 지었을 죄와 더럽혀진 마음을 씻어 보낸다. 그리고 남은 반쪽의 '무사'를 기원한다.

'무사'는 기원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영역인 듯이, 겸허히. 경건히.


'치노와쿠구리'가 언제 시작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신화에 기원을 두었다는 '설(說)'에 마음이 간다. 태고의 시간이 띠풀의 형태가 되어 현재의 시간까지 둥글게 엮어져 내려왔다는 상상은, 아득하고 영구해서 신비롭다. ‘연결성’의 신비.


아주 오래전 폭풍의 신인 '스사노오노미코토(スサノオノミコト)'는 신붓감을 찾아 북에서 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행색이 남루했던 탓인지 해는 저무는데 묵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소민쇼라이(蘇民将来)’라는 이가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지어 주며 정성으로 대접했다.


이튿날 '스사노오노미코토'는 마을을 떠나며 보답으로 띠풀로 만든 고리를 선물했다. '이것을 허리에 차면 역병을 막을 수 있을 것이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 며칠 후 마을에는 역병이 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소민쇼라이’의 가족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후 역병이 돌기 쉬운 여름이 시작되면 마을의 신사(神社)에서는 입구에 '띠풀의 고리'를 설치하고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인류는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추운 겨울 굶지 않는 것, 더운 여름을 무사히 넘기는 것에 '기적(신의 손길)'이 필요했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반년을 보내고, 한 해를 보내는 것. 과학과 기술과 의술이 발달한 현대인에게는 '나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영역일까. 전쟁과 재난과 사건과 사고의 뉴스를 매일 접하며, '나의 의지'는 반쪽의 온전함임을 깨닫는다. 나머지 반쪽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의 의지’이다.


그 모든 의지들이 한 올 한 올 얽히며 ‘나의 세상’은 직조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금명과 피카소의 만남이 그 모든 톱니의 작동으로 이루어지듯.

「때마침 IMF가 오지 않았더라면. 실직하지 않았더라면. 극장이 문 닫지 않았더라면. 그 모든 톱니가 제 몫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이 오지 않았을까.」


그들의 만남도, 나의 현재도 무수한 의지들의 '덕분'이고 '때문'이다. 그래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오늘의 무사는 '기적'이다.


나는 비로소 S상의 '덕분에. 오늘도 좋다 ‘라는 말을 이해한다.

나도 이제 그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안부를 전한다. '오카게사마데. 겡끼'라고. '덕분에. 나는 오늘도 무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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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헤이안 진구의 치노와쿠구리(茅の輪くぐ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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