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낮은 소리가 대기를 가로지르며 넓게 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뜨겁고 무거워진 대기가 매일 오후 요란하게 비를 쏟아낸다.
예년이었다면 7월 중순까지 이어졌을 장마가 6월이 채 가기도 전에 사라졌다. 대신 35도를 넘나드는 때 이른 더위와 오후의 소낙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뭇 달라진 여름의 모습이다.
소낙비가 지나가고 나는 조금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배우자 '이군'과 그의 선배 '김군'은 이미 하이볼과 맥주와 닭꼬치와 닭튀김으로 여름의 더위를 씻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토리키조쿠(鳥貴族, 닭의 귀족)'. 닭의 몸 곳곳을 구이, 튀김, 볶음으로 아낌없이 즐길 수 있는 닭요리 전문 이자카야(居酒屋,일본의 선술집)다.
교토생활 20년을 훌쩍 넘긴 김군은 몇 해 전 'K상'을 만나 연애 중이다. 운동과 여행과 사람을 좋아하고, 술의 '맛'을 섬세하게 즐길 줄 아는 K상은 김군의 표정을 바꾸어 놓았다. K상을 만난 이후 김군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번졌고, 커다란 웃음이 자꾸 터져 나왔다. 눈에 띄게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김군이 웃으며 말한다. '술도 마음대로 못 먹어. 혼날까 봐ㅠㅠ.' 김군의 건강을 염려하는 K상의 '잔소리?'가 가끔 힘들다며 가볍게 투덜댄다. 그러나 K상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그는 수십 년 간 쌓아온 여러 습관을 바꾸려 노력 중이다.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닭뼈가 쌓여갔다. 인류가 살다 간 지층에는 방사성물질, 플라스틱과 함께 닭뼈가 나올 것이라는데 과연 그러할 것 같다.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도축된 닭의 수는 약 750억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전 세계인구의 9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이다. 인류의 흔적은 닭뼈로 기록될 것이다.
김군은 최근 한국의 모(某) 대학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된 지질시대를 일컫는 용어이다.
지질시대는 '누대-대-기-세-절'로 나뉘는데, 지금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시작된 신생대 제 4기 홀로세에 해당된다고 한다. 홀로세는 약 11,700년 전에 시작되었다.
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열 번도 넘게 이어지는 동안 인류는 농업을 발전시키고,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을 꽃피웠다. 이러한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켰지만, 거대하고 급격한 변화가 두드러진 것은 1950년 이후이다.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이 지질시대를 구분해야 할 정도로 뚜렷해졌다.
'인류세'는 현재까지 공식 인정된 용어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용어의 탄생은 지질에 닭뼈의 화석을 새길만큼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50대에 접어드는 김군과 K상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그들의 오랜 습관을 조금씩 바꿔가며 서로에게 맞춰가는 노력을 한다. 김군은 조용히 동네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여행을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 가방을 챙긴다. K상은 먼 여행길에 오르는 대신 동네 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작은 그네에 앉아보는 시간을 늘린다.
그들의 사랑법에서 지구와 인류의 '사랑법'을 생각한다. 지구와 인류는 오래된 연인이다. 나는 우리의 사랑이 천년, 만년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오랜 사랑이 '닭뼈'와 '플라스틱'으로 기록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익숙함을 버리고 일정 부분 불편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우리의 사랑이 낭만적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 인류세라는 용어는 1980년대 미국의 한 생물학자가 처음 사용하였고, 네덜란드 대기화학자인 파울 크뤼첸(Paul Jozef Crutzen)이 2000년 학회에 제안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인류세의 시기를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부터로 해야 할지, 핵실험으로 인공 방사성 물질들이 배출된 1950년대부터 해야 할지 등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2024년 3월 인류세 도입은 투표로 부결되었으나, 온실가스 급속 증가, 플라스틱 쓰레기 및 인공방사성 물질 축적, 생물의 대량멸종 등은 인류세 도입의 근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