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예요'
수다스럽지 않은 A상의 입에서 조용히 나온 말이다. A상은 우리 반 천재이다. 그의 일본어는 정확하고 풍부하다. 인도네시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유학하다가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던데.
완벽한 문법, 정확한 발음, 논리적 구성. 그의 언어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어휘량은 풍부하며 일본의 역사, 지리, 사회에 대한 지식은 풍성하다.
그의 공부법이 늘 궁금했지만, 말을 걸 기회가 없었다. 그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자고, 수업이 끝나야 일어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는 자느라 밥도 먹지 않는다. 출석을 불러도 모르고, 세게 흔들어야 ’앗‘하고 놀라며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가끔 깨어 있는 극히 짧은 시간에 유감없이 발휘된다. 일본 최북단의 섬이라던가,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한 수상이라던가. 특정 상황에 어울리는 사자성어 등을 그는 차분하고 또박하게 말하고는 어느새 잠이 든다. 혹시 그가 기면증은 아닐지 걱정도 되었다.
'기온마쯔리'의 전야제가 있던 날도 A상은 종일 잤고, 수업이 끝나서야 일어났다. '솨~솨~' 교실밖에는 거세게 비가 퍼부었고, 우산이 없던 그와 나는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공부법을 물었고, 한 시간이 넘게 이어진 대화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천재의 공부법‘이 아닌 세상과 단절한 ’어떤 외로움‘이었다.
콘치키친~ 콘치키친*~
야사카신사에서 카모가와(鴨川)로 이어지는 기온(祇園) 거리를 지나 강을 건너 상업지구인 테라마치까지 ‘콘치키친~ 콘치키친~’ 기온마쯔리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축제의 계절 7월이 온 것이다. 개인의 아픔과는 무관한 듯 세상은 자신의 박자대로 굴러갔다.
'기온마쯔리(祇園祭)'는 일본의 3대 축제 중 하나로, 매년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다. ‘야마보코준코(山鉾巡行)’라는 긴 가마 행렬이 이어지는 17일과 24일이 하이라이트이며, 포장마차가 늘어서는 전야제(15~16일)도 관광객이 몰려든다.
869년에 야사카신사에서 시작된 기온마쯔리는 '오닌의 난'이 있었던 약 10년간을 제외하고, 천년 이상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마쯔리(祭)'는 굳이 번역하자면 축제가 되겠지만, 제사의 성격이 짙다. '제사 지내다, 신을 모시다'라는 의미의 '마쯔루(祭る)'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가 ’마쯔리‘이다.
당시 수도였던 교토에는 역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전국 66개 지역을 상징하는 66개의 ’창‘을 만들어 역병을 봉인하는 제를 올렸는데, 이것이 ’기온마쯔리‘의 기원이다.
현재는 교토의 각 지역마다 지붕에 긴 창을 꽂은 가마를 만들어 교토의 중심지역을 크게 한 바퀴 순행(巡行)한다. 총 34대의 가마는 전(前)마쯔리(17일, 23대)와 후(後)마쯔리(24일, 11대)로 나누어 순행하는데, 가장 큰 가마는 높이가 약 25미터이고, 무게는 약 12톤에 이른다. 지역마다 가마의 모양과 장식은 조금씩 다르고, 저마다 화려하다. 가마 한 대의 조립과 이동에 약 180명의 수레꾼과 소리꾼이 참여한다고 한다.
신사에서 시작한 제례행사지만 현재는 상인들이 중심이다. 긴 세월 동안 잦은 화재와 전란으로 교토는 여러 차례 잿더미가 되었다. 그때마다 상인들은 힘을 모았고, 자치조직을 만들며 교토를 부흥시켰다. 신에게 삶을 비는 동안 그들이 터득한 것은 '함께'하는 지혜였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2년간 중단되었지만, 역병퇴치를 위한 행사이니 '이럴 때일수록 진행해야 한다'는 웃픈 논란도 있었다고 한다.
올해 기온마쯔리에는 종일 세찬 비가 내렸다. 그러나 크고 화려한 23대의 가마는 예정대로 교토인의 삶의 터전을 돌며, 힘을 모아 ’삶‘을 기원했다.
코로나 19라는 21세기의 역병은 '기온마쯔리'를 멈추게도 하였지만, 존재의 이유를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의 진짜 역병은 코로나19 이후에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술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세상을 연결했고, 많은 것을 혼자서 가능하게 했다. 함께 땀을 흘리지 않아도, 음식을 나누지 않아도, 저마다의 공간에 칸막이를 쳐도 세상은 잘 흘러갔다. 서투른 마음만이 흐르지 못하고 자꾸 갇혔다. 마음을 흐르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해졌다. 저마다의 가슴에 역병처럼 ’어떤 외로움‘이 번졌다.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A상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밥을 먹는다. 역병의 아픔과 슬픔을 알 것 같아서이다. 올여름 역병퇴치를 기원하는 나의 작은 마쯔리도 기온마쯔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부디. 콘치키친~
*콘치키친~ 콘치키친~ : 기온마쯔리 음악은 북,징,피리로 연주되는데 일본사람들에게는 '콘치키친~ 콘치키친~'처럼 들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