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젊은 신사가 영국풍의 옷을 입고, 번쩍이는 총을 메고, 백곰 같은 개 두 마리를 거느리고 깊은 산속을 걷고 있다. 사냥을 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산의 거대한 기운에 눌린 탓인지 사냥개 두 마리도 현기증을 일으키다 거품을 물고 죽는다.
산은 깊고 으슥하다. 허기진 배를 움켜쥔 채 서둘러 돌아갈 채비를 하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근사한 서양식 집 한 채가 서 있다.
'서양요리점, WILDCAT HOUSE'
하얀 도자기 타일로 꾸며진 현관, 유리로 된 출입. '어서 오세요'라는 금색의 글자들이 두 신사를 환영한다. 하루의 고단함이 씻기는 듯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긴 복도가 이어진다. 복도 끝에 파란색 문이 나타난다. 식당의 분위기가 여느 곳과 다르지만, '이건 러시아풍'이라며 추운 지방의 집들은 이렇다고 생각해 버린다.
문은 계속 이어지고, 그때마다 요구사항이 주어진다. '머리를 단정히 하세요', '먼지를 털고, 모자와 외투를 벗으세요', '총과 탄알은 이곳에 두세요'' 등등.
'과연 대단한 사람들만이 찾아오는 식당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선다. 그러다 두 신사는 문득 깨닫는다.
이곳은 서양요리를 내주는 식당이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을 서양요리로 만들어 잡아먹는 곳이라는 것을. 되돌아 나가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먹는 쪽'과 '먹히는 쪽'이 역전되는 과정을 소설은 재미있고 무섭게 보여준다.
미야자와겐지(宮沢賢治)의 동화이자 단편소설 '주문이 많은 요릿집(注文の多い料理店)'이다. 작품은 1924년에 출간되었고, 당시 일본은 급격한 근대화와 서양화의 흐름 속에 있었다. 식당의 '주문'을 서양 문화의 우수성으로 해석하며 받아들이는 두 신사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서양문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당시 사회를 풍자한다.
서양 문물에 대한 신봉의 결과일까. 일본에서 '빵'은 '쌀' 만큼 맛이 좋고, 제빵 산업은 발달되어 있다. 슈퍼에서 파는 빵조차 부드럽고 맛이 좋아, 귀국을 앞두고 '일본의 빵이 그리울 것 같다'는 사람이 제법 있다.
그중에서도 교토의 빵 소비량은 전국 1위이다. 교토에서는 빵집이 사찰이나 신사(神社)만큼 흔하며, '교토의 스님은 아침식사로 빵을 먹는다'는 말까지 있다. 동네 찻집에서 빵과 토스트로 아침을 즐기며, 신문을 읽는 어르신의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신문물을 앞장서서 누리고 싶어 하는 교토인의 성향이 '빵과 커피를 사랑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낳았다.
그러나 교토와 일본의 '빵 문화'는 그저 서양문물에 대한 신봉에서 온 것만은 아니다. 일본은 주식이 '쌀'로 알려져 있지만, 1970년대까지 학교 급식의 메뉴는 '빵과 우유'였다.
패전 후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일본은 미군정의 통치를 받는다. 이때 미국은 밀가루를 원조로 제공하는데, 그 이면에는 '미국의 잉여 농산물 처리를 위한 일본의 식문화 전환'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목적 달성에 가장 유효하고 지속적인 것이 학교 급식이다. 아이들에게 '하얀 빵'은 풍요이자, 고급스러운 서구 문명이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가정의 식단도 점차 변화되었다. 여기에는 '빵은 계란이나 고기 같은 단백질과 함께 섭취하므로 균형 잡힌 식단'이라는 반복된 선전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전후(戦後)의 어린이가 2000년대의 노인이 되는 동안 빵은 밥과 함께 일본인의 주식이 되었다.
어느 시절 아시아 여러 나라를 잡아먹던 일본은 미국의 빵에 먹혔고, 이로 인해 밀가루와 육류를 수입에 의존하며, 낮아진 식량 자급률(약 38%, 2023년 기준)은 식량안보로도 이어졌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사계(四季)가 순환하듯 돌고 돈다. 나는 7월의 태양을 피해 카페를 찾고, 커피와 함께 빵을 주문한다. 작은 빵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 힘의 역학이 그 맛을 깊고 풍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