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달에 한두 번은 장안사에 가게 된다.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에어컨이 있는 집으로 피서를 가는데, 그 근처에 장안사가 있었다. 장안사는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학생들과 함께 간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 거의 11년이 지났다. 하지만, 절에게는 그 시간이 매우 짧았는가 보다. 장안사는 11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였다. 천년 고찰에 11년은 찰나의 시간일 것이다.
장안사에 도착하자 잠시 뒤에 비가 내렸다. 가는 비였다가 이내 장대비가 되었다. 장안사 뒤 편에 거친 바위가 드러난 산이 보이는데, 그곳에 안개가 자욱해서 신선이 내려올 듯했다. 인심이 후해 보이는 부처님이 우람한 몸집을 한 채 시원한 비에 웃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내린 비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었다.
그러다가 세상이 고요해졌다. 까마귀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고, 비만 진자 운동처럼 같은 속도로 꾸준히 내리는 것이다. 시냇물은 실크처럼 길게 늘어져 바위와 자갈 사이로 흘러내리고 나무는 녹색으로 몸단장을 하며 짙은 녹음을 뽐내는 데 세상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보게. 세상 바쁠 거 있나. 차나 한잔하고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