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랑해수욕장 해변가에서.
부산 기장군에 있는 장안사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형이 가끔 임랑해수욕장으로 산책을 간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집에 가기 전에 임랑 해수욕장이나 들릴까요?"
"너무 멀어서 가겠나."
아버지는 바다가 여기서 멀 거라고 생각하셨다. 나 역시 바다는 딱히 보고 싶지 않았다. 빈 여백에 파란 물과 파란 하늘만 그린 심심한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내가 핸드폰을 열고 임랑해수욕장을 검색한 까닭은 이왕 가는 길에 들리는 것이 경제성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동석한 어머니도 바다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여기서 매우 가까운데요. 불과 2.3킬로미터 밖에 안됩니다."
"그래. 그럼 가자."
몇 분 뒤 우리는 좌회전 비보호 도로를 지나 임랑 해수욕장 주차장에 들어섰다. 주차장이라고 하기엔 모래사장에 표지판만 세운 정도였다. 해변가도 동네 놀이터만큼 작고 아담했다.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아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해변가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을 보았다. 오랜만에 바다에 왔는데 그냥 사진 한 장만 찍고 돌아가니 아쉬웠다. 캔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 질러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나 한잔하고 갑시다!"
어머니가 멀리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슈퍼마켓은 식당과 슈퍼마켓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문을 덜컥 여니, 마침 식사 중이었다. 어이쿠!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문을 연 곳은 가게가 아니라 가정집이었다. 가게 주인이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정집과 가게가 이어져서 헷갈린 것이다. 가게 주인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였는데, 화도 내지 않고 올바른 가게 출입문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올바른 출입문으로 들어가 가게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원두커피는 팔지 않았다. 그때, 가게 주인이 물었다.
"뭘 찾으세요?"
"따뜻한 커피 있을까요?"
"여기 있는 게 다예요."
주인이 가리키는 온장고에 캔커피가 들어 있었다. 나는 제일 저렴한 레쓰비를 2개를 집어 들었다가 하나를 더 들었다가 놓으며 몇 개를 살지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주인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내가 3명이라고 답하자 가게 주인이 웃었다. 순간, 나는 스스로 돈 몇푼 아끼려는 자신을 자책하며 3개를 들었다. 한 캔에 250원 정도 하는 커피를 1000원씩이나 받아서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이처럼 조용한 해변가엔 그 정도 가격을 받지 않으면 가게 운영이 안될 것이다.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니 아버지께 밖에 나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두 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왜 낭만이 없으세요?"
나는 투덜대며 캔커피를 하나 들고 바다로 향했다. 두 분은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두 분을 포기하고 혼자 계단이 있는 곳에서 멈춰 앉아 바다를 감상했다.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고 밀려 나가기를 반복했다.
쏴아아 쓰으윽 호오오 후우우. 쏴아아 쓰으윽 호오오 후우우.
파도 소리는 잠자는 짐승의 소리처럼 잔잔하면서도 깊고 길게 이어졌다. 그 소리는 단순하지만 오묘했고, 어떤 음악보다 감동적이었고 압도적이었다. 그 소리가 이렇게 훌륭한 것은 지구의 대부분을 뒤덮은 바다가 내는 숨 쉬는 소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압도적으로 큰 크기와 최소 수십억 년 전부터 존재했을 영원 같은 시간의 바다.
바다에 오는 까닭은 바다의 푸름과 드넓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드넓은 여백을 가득 채우는 파도 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