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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Oct 12. 2018

광합성하여 사는 나무는 왜 가을에 잎을 버릴까?



잎으로 광합성하여 먹고사는 나무는,
가을이 되면
왜 그 잎을 버릴까?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드는 날>, 도종환
  
 지금처럼 가을이 조용히 다가오는 날이면, 도 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을 소리 내어 읽으며 차 한잔 마시면 운치가 있을 것 같다. 


 단풍나무는 뜨거운 여름 내내 열심히 광합성 하며 밥벌이하던 잎새들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며, 올해의 작별을 준비한다. 방하착(放下着).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여름 내내 땡볕에 이뤄진 뜨거운 광합성의 노동과는 작별이다. 곧 그 어여쁜 단풍잎들은 낙엽이 되어 나무의 품을 떠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단풍나무는 잎새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한다. 인간으로 치자면 나무의 잎새는 나무에겐 먹거리 채집 도구이자 음식을 만드는 요리 도구이다. 


  아까운 잎새를 왜 버리는 것일까? 


  아둔한 내 생각으로 보면, 겨울 추위에 잎새가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광합성을 해서 밥벌이를 하는 게 나무한텐 이득이 아닐까? 아니. 이왕 잎새를 버릴 거라면 최대한 사용할 때까지 사용하고 버려야 긴 겨울을 버티는데 보탬이 되는 거 아닌가?


 답은 햇빛이 들어오는 일조량과 바깥 온도를 계산하는 나무의 놀라운 능력에 있었다. 매우 깐깐한 회계 법인이 있는 기업을 생각하면 된다. 나무는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언제 잎새를 버리는 게 이득인지 계산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10월이 오기 전 8월부터 약 2달 동안 일조량과 온도 변화, 광합성의 양을 계산하면서 이뤄진다. 나무가 들인 공에 비해 광합성의 양이 줄어들게 되면, 그때부터 광합성을 그만둘 준비를 한다. 휴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무의 휴업 준비는 단풍나무의 몸에서 성장억제호르몬이 나오면서 시작된다. 성장억제 호르몬은 나무의 잎새로 가는 수분을 모두 차단하며, 나무와 나뭇가지에 두터운 층을 만들어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조금씩 잎새에 있는 엽록소를 분해하여, 자산을 안전한 나무의 몸통으로 옮긴다. 기업으로 치자면 신규 투자를 취소하고, 금고에 여유자금을 쌓아두는 것과 비슷하다.


 엽록소는 붉은빛을 흡수하고 초록빛을 반사하는 성질이 있다. 활발하게 광합성을 하는 나무의 잎새는 엽록소가 충만하여 푸르게 보인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서 엽록소가 잎새에서 줄어들게 되면, 잎새에는 크산토필, 카로티노이드, 안토시아닌과 같은 노랗고 붉은빛의 색소만 남는다. 


 우리 인간의 눈에는 아름다운 단풍의 시간이 온 것이고, 나무의 입장에선 자연에 공식적으로 휴업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나무는 잎새가 떨어지든 말라죽든 걱정할 필요 없이 안전하게 겨울을 보내면 된다. 필요한 자산은 다 안전한 곳에 운반했으니 말이다. 봄이 올 때까지 나무는 그대로 깊은 잠을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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