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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Oct 04. 2024

피사, 보이는 것 너머 온 감각으로 느껴야 하는





피사의 사탑은 어린 시절 어린이잡지에 단골 건축물이었다. 세계의 불가사의, 신비한 세계 건축 등의 제목 아래 삐뚜름하게 기울어진 새하얀 탑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에 가면 있다는 기울어진 둥근 건물을 보며 언젠가 그곳에 가서 볼 날이 있을까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도대체 왜 사탑이라는 건지 궁금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므로 일단 아는 지식으로 유추를 해봤다. ‘사’라는 단어로 표기되는 한자 중 뜻을 아는 건 두 가지였다. 죽을 사와 모래 사. 모래로 만들어진 탑은 아니니 분명 죽음을 맞은 어떤 영혼의 저주로 저리 되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소녀의 몸을 녹여 만들어 엄마, 엄마 슬픈 소리를 내며 울린다는 에밀레종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사진 속 모습만으로도 왠지 오싹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with 르무통 메이트(오렌지)

사탑의 ‘사斜’가 비낄 사라는 걸 알게 됐을 즈음엔 피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세상엔 더 불가사의한 것들이 많았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라던가, 동물을 괴롭히고도 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라던가,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 친구를 못살게 구는 아이, 차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웃… 이런 세상을 모른 체 하는 나 역시. 피사 같은 것 다 잊은 채 온갖 불가사의한 일들로 마음이 복잡할 때면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나 감미로운 그러니까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악 같은 것을 들었다. 인터넷을 뒤지면 얼마든지 뜻을 알 수 있었지만 궁금해하지 않았다. 감각을 열고 멜로디에 집중할 뿐이었다. 어느 날 안드레아 보첼리가 피사대학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피사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울어진 탑 정도는 불가사의에 끼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세상이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소년 시절 축구를 하다 실명하게 된 안드레아 보첼리는 피사의 사탑을 보았을까? 토스카나주 출신이니 눈이 멀기 전 그곳을 찾았으려나. 괜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가 플레이될 때마다 여행지로서의 피사가 더욱 선명해졌다. 


누군가는 피사에 갈 시간에 피렌체에 더 머물라든가 피렌체 교외의 아울렛에 다녀오라고 권하기도 했다. 거기는 정말 볼 게 피사의 사탑뿐이야! 라면서. 그러나 그럴 리가 없었다. 피사대학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다녔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바로 그 피사에서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별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다. 그 때문에 고초를 겪고 말년에 가택연금을 당했던 그는 평생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세상의 법칙을 발견하는 사람이 반짝이는 청년 시절을 보낸 그곳이 평범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싼값에 명품을 사 올 기회를 버리고 피사를 찾겠다는 나를 바라보는 지인의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진짜 사탑 딱 하나인데! 그것 말고도 다른 걸 찾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나는 피사를 여행지에 포함시켰다. 


피사 중앙역 앞 분수대, 상점가를 가로질러 아르노강을 향해 걷는 길 with 르무통 메이트(오렌지)


과연 피사 중앙역에 내리자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광장을 지나 길을 건너 상점가를 가로지르고 아르노강을 지나 다시 앞으로 앞으로, 그렇게 아무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짠 하고 멋진 파티에 특별히 맞춘 케이크 모양의 사탑이 나타났다. 사탑이 있는 미라콜리 광장에는 대성당과 세례당 공동묘지인 캄포산토 네 건축물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보다 더 눈을 끄는 건 광장 가장자리에 빼곡히 늘어선 사람들이었다. 손바닥 위에 놓은 피사의 사탑, 손으로 들어 올리는 피사의 사탑, 머리를 맞댄 피사의 사탑, 등으로 맞댄 피사의 사탑, 등에 업힌 피사의 사탑…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카메라 렌즈의 각도를 비틀어 각자의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처음에 피사의 사탑보다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사탑의 신비함에 감탄하기보다 유희로 사탑을 마주한 사람들을 보면서 괜히 유쾌해졌다. 이 즐거운 장면을 이렇게 한 번에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천천히 피사를 느끼며 만났으면 했다. 중앙역에서 내려 흥분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뒤통수만 보고 따라온 것이 조금 후회됐다. 


아르노강을 지나 마주한 피사의 사탑 풍경


나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걸었다. 온 길을 따라 상점들을 지나 아르노강을 건너 중앙역 앞 광장으로 갔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야. 잠시 눈을 감고 그곳의 바람을 느끼고 후각을 열어 크게 호흡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별들을 바라봤던 곳, 안드레아 보첼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닐었던 곳. 그들의 발걸음이 지났을 골목과 거리로 타박타박 걸어 나갔다. 사탑은 그렇게 걷다 보면 나올 것이었다. 사탑을 목표에서 지우니 나의 발걸음도 우아해졌다. 중앙역 앞 광장을 지나 길을 건넜다. 아르노강까지 이어진 건물의 아케이드 안쪽에는 이제는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기념품숍이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 바깥으로 축구유니폼과 사탑 모형의 자석이 걸려있는 벽을 지났다. 조금 더 걸어가니 S나 Z, I 등으로 시작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상점들이 나타났다. 규모가 작은 상점들 중엔 책방과 안경점이 있었다. 전부 현대에 들어 생겨난 것들이겠지만 책방만은 왠지 오래전에도 다른 형태도 그 거리에 있었을 것만 같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후배들이 그 거리에서 책을 사고, 읽고, 서로 발견한 것들을 이야기했을 생각을 하니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중앙역 광장을 지나 마주한 골목에서 with 르무통 메이트(오렌지)


사탑을 향해 가는 사람과 상점에 들어가는 사람과 레스토랑의 야외테이블에서 한낮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교차되는 거리는 활기찼다. 그 왁자한 거리 중간에 13세기에 고전적인 로마식 조각으로 유명했으며 현대 조각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니콜라 피사노의 동상이 나타났다. 미간을 찌푸린 동상 아래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Nicola Pisano. 피사에만 조각작품을 남긴 것도 아니었고, 피사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물론 피사의 캄포산토에 그의 유명한 석관이 있지만 볼로냐, 피아자, 페루자 등등 그는 명성에 맞게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조각작품을 남겼다. 그의 이름 때문일까, 어쨌든 그는 지금 피사의 거리에서 손에 조각용 망치를 들고 서 있다. 800년 전의 사람, 당신도 이 거리를 걸었겠죠? 나는 괜히 그의 조각상에 말을 걸었다. 이런 뜻밖의 만남은 여행을 풍성하게 해 준다. 사탑을 향해 미친 듯 걸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 발견하자니 다시 돌아와 천천히 걷기로 한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나에게 칭찬을 담뿍해줬다.


거리의 끝 로지아(Loggi di Banchi)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누워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1605년 토스카나 대공의 유언에 따라 건설됐다는 요즘으로 치면 필로티 구조의 1층에 기둥만으로 받쳐진 건물에는 양모와 실크 가게, 환전상 노점, 곡물 좌판이 열렸다. 로지아는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의 축소판인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S나 Z, I로 시작되는 간판을 단 상점을 찾는 것처럼 400년 전 사람들은 로지아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에 실크 가게를 구경하고, 돈을 바꾸고, 밀이나 귀리를 샀겠지. 로지아의 아치형 입구에 걸터앉아 아르노강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마침 나는 오렌지빛의 신발을 신었는데, 중간 다리라는 뜻의 메쪼(Fonte di Mezzo) 다리의 하얀 난간과 물빛과 너무 잘 어울려 걸을 기분이 났다. 


하얀 난간이 물빛과 어우러지는 메쪼 다리 앞에서의 산책


오렌지빛을 길 사이사이에 흩뿌리며 다리를 건너고 다시 거리로 들어섰다. 이 길의 끝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다시 사탑이 나올 것이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젤라또가게를 찾았다. 사탑을 배경으로 한 기념 촬영의 최신 버전이 젤라또 콘을 뒤집어 놓은 모양이라는 걸 SNS에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장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운영하는 작은 젤라또 가게에 들어가 오렌지빛에 가까운 핑크빛의 젤라또를 주문했다. 과일 맛의 달콤한 젤라또를 먹으며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피사에 살았던 사람인양 사탑으로 향했다. 한번 왔던 길은 익숙했고 사탑의 풍경도 그려졌으니까. 한눈을 팔고 걷다가 젤라또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원하던 기념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대신 신발을 높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여러모로 오렌지빛 신발을 신은 건 잘한 일이었다. 


오렌지와 핑크빛 사이의 젤라또, 그리고 다시 찾은 피사의 사탑 with 르무통 메이트(오렌지)


할 일을 마치고 인파로 가득한 미라콜리 광장을 빠져나왔다. 이번엔 들어온 곳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메쪼다리에서 왼쪽 편이 피사대학이라고 했으니 반대편으로 나가 걷다 보면 피사대학을 지나갈 것이었다. 정말 한적한 사람들의 삶이 내려앉은 피사의 주택가에는 거리에 가로수로 협죽도가 피어 있었다. 대나뭇잎 모양의 잎과 복사꽃 모양의 꽃이 화려한 협죽도는 현대식으로 고쳐 지은 고요한 주택가에 작은 포인트가 되었다. 흰색과 진분홍색이 번갈아 피어 있는 꽃을 구경하다 보니 강가에 다다랐다. 조금 올라가니 금방 10으로 시작하는 세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물들이 나타났다. 피사대학,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안드레아 보첼리가 다녔다는 그 건물 앞에 잠시 앉아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아무래도 한참을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흰 꽃과 진분홍 꽃이 번갈아 있는 고요한 주택가에서의 휴식 with 르무통 메이트(오렌지)






<걸음 속의 유럽> 피사 산책은 르무통 메이트(오렌지)와 함께했습니다.

원고 내 여행 코스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aps.app.goo.gl/CBfiwT1JAKyNi1BN9


피사를 거닐은 '르무통 메이트' 만나보기↓

벗고 싶지 않은 편안함, 르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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