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를 가기 전에 그곳에서 내가 가장 처음 무엇을 할지, 어느 곳으로 달려갈지 시뮬레이션해보곤 한다. 처음 맞닥뜨리는 낯선 풍경 앞에서 내가 가장 먼저 가야 할 곳, 해야 할 것을 정해놓는 것이다. 밀라노에 도착하면 한낮의 공원으로 가 우선 걷고 싶었다. 생에 처음 밀라노라는 도시의 이름을 기억하게 해 준 건 헤밍웨이의 소설이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 속 밀라노는 전장에서 빗겨 난 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다리에 부상을 입은 프레데릭 헨리는 밀라노 군인 병원으로 이송돼 입원하면서 캐서린과의 사랑을 키워간다. 부상당한 다리를 끌고 잠깐씩 병원 밖으로 나가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이 묘사된 페이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밀라노를 꿈꿨었다. 그중에서도 “그해 여름 우리는 멋진 시간을 보냈다. 내가 외출을 할 수 있게 되자 우리는 공원에서 마차를 탔다.-중략- 서로의 손끝이 조금 스치기만 해도 우리는 흥분을 느꼈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공원이 나를 매료시켰다. 마차가 다니는 초록빛의 드넓은 공원. 이국적인 건물들이 늘어선 도심에 펼쳐진 공원을 서로 꼭 붙어 마차를 타고 지나는 연인. 생각만 해도 너무나 낭만적이었으니, 밀라노라는 이탈리아 도시를 흠모할 수밖에.
무거운 짐을 숙소에 내려놓고 밀라노 중심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공원으로 향했다. 길 건너 사진으로만 보던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화려한 두오모의 뾰족한 첨탑이 보였다. 낯선 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지만 나는 일단 공원! 헨리와 캐서린이 썸을 타던 그 공원으로 가고 싶었다. 찾아보니 르네상스 시대 요새로 사용되던 스포르체스코 성과 맞닿은 시립 샘피오네 공원이 있었다. 지도상으로 규모가 가장 큰 걸 보니 헤밍웨이가 묘사한 공원은 그곳이 맞을 것 같았다.
공원까지의 경로를 찾으니 두오모가 보이는 중심가의 큰길에서 직진으로 1km 남짓이었다.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밀라노의 거리를 걸으며 다른 도시에 비해 현대적인 느낌이 풍기는 건물들을 둘러봤다. 어디까지나 다른 도시에 비해 현대적이라는 것이지 지금의 우리처럼 회색빛의 빌딩숲이 아니었다.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쓸 무렵의 아니 그가 이탈리아 내전에 참전했을 시절에도 충분히 존재했을 건물들이었다. 오래됐지만 모던한 건물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혹시 헨리와 캐서린이 사랑을 키웠던 군인병원이 그 어디쯤 있는 건 아닐까 상상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의 거리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하루빨리 자유롭게 거닐기를 소망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오모가 그랬던 것처럼 스포르체스코 성도 도착하기 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누구에게나 보이는 압도적인 크기로 도시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분주히 드나들거나 말거나 밀라노 사람들은 느긋하게 성의 앞과 뒤 안쪽에서 휴식을 즐겼다. 성에 들어가기 전 입구 바깥쪽에 꽃과 벤치가 있었는데, 자전거를 세워놓고 벤치에 앉아 무심히 책을 읽는 밀라니즈의 모습이 무척 근사해 보였다. 스포르체스코 성 아니 밀라노의 도처에는 그런 것들이 즐비했다.
미켈란젤로가 죽기 나흘 전까지 만들었다는 마지막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가 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건축에 참여했다는 깊은 역사가 있는 스포르체스카 성. 한때 바깥의 도시들에게까지 웅장함을 자랑했던 요새는 지금도 그 풍모를 잃지 않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에 의해 쓰러진 곳을 재정비한 터라 다른 유적지들보다 더 깔끔한 모습이었는데, 그런 중에도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물들이 가득했다.
알려진 유명한 것들을 지나면 마침내 공원이었다. 헤밍웨이가 이 공원을 보고 소설을 쓴 게 틀림없어 보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넓은 부지의 공원은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마차를 운행하기 충분히 넓은 면적이었고, 무엇보다 밀라노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스쳐 지나는 관광객들과 다르게 그곳의 사람들은 큰 나무 그늘 아래 잔디에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보호자를 따라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이 연못가를 어슬렁거리고, 사람들은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즐겼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소년과 소녀가 나란히 앉아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라니. 그 풍경은 헤밍웨이가 살아있을 때도 아니 그 훨씬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았다. 공원의 끝에는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지은 개선문이 있었다. 정확히 말해 그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시작됐지만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배하며 건설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평화의 상징으로 끝내 완성됐고, 지금은 평화의 아치라고 불리고 있는데 그 꼭대기에 내가 찾던 마차가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이 6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탄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던 것인데, 그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다. 어떤 사람은 나폴레옹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설마 패배한 적국의 황제를 동상으로까지 만들었을까 싶었다.
평화의 아치보다 스포르체스카 성보다 나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공원이었다. 나는 밀라노를 떠나기 전까지 매일 공원을 찾기로 다짐했다. 밀라노 사람처럼 책 한 권을 들고 나무 그늘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일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발길이 떨어졌다. 왔던 길을 돌아 다시 두오모로 향했다. 그렇게 상상만 했던 밀라노의 공원을 지나 다시 그곳,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밀라노의 상징 두오모를 향해 걸었다.
시크하게 차려입은 멋쟁이들 사이로 노란색 트램이 지나고 복잡해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는 길을 건너 두오모에 닿았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아! 탄성이 나왔다. 가까이에서 만난 밀라노의 대성당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14세기에 지어진 이 대성당이 처음부터 화려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엔 예배당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엄숙한 모습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첨탑이 하나씩 생겨났고, 나폴레옹이 이곳에서 이탈리아 황제로 즉위식을 한 뒤 더 화려해졌다. 고딕,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온갖 양식이 혼재된 두오모의 파사드는 그렇게 밀라노의 얼굴이 됐다.
지나치게 넓은 성당 앞 광장이 사진을 찍는 인파로 가득했다. 질 수 없지. 완공하는 데 600년이나 걸렸다는 세기의 작품 앞에 서서 나도 열심히 기념사진을 남겼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헨리와 캐서린이 이 대성당 바로 옆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리 천장으로 덮여 있는 19세기 완성된 아케이드 안의 화려한 쇼핑몰. 그 안에서 광장과 제일 가까운 레스토랑에 앉아 캄파리를 한 잔 시켰다.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앞을 지나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서 있는 두오모의 파사드를 바라보며 캄파리를 마셨다. 인생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인가, 삶을 긍정하게 되는 순간. 그렇게 한참을 상상하던 어떤 이미지를 현실에 마주하며 느끼는 여행의 행복을 만끽했다. 그렇게 한낮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복잡한 갤러리아를 빠져나왔다. 떠나기 전 한쪽 발을 대고 세 번 돌면 다시 밀라노로 돌아온다는 황소모자이크 그림 앞에서 줄을 서서 의식을 치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미리 예매해두지 못한 탓에 오늘의 오페라를 볼 수 없겠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념비가 있는 스칼라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하니 길 건너 라스칼라 극장이 보였다. 재정비 중으로 한쪽에 공사용 가림막을 해놓은 모습이었지만 정면의 모습과 입구는 그대로였다. 그 앞을 지났을 많은 예술가들이 환영처럼 스쳐 지났다. 트램과 택시와 승용차와 교차하는 사람들을 지나 극장 앞에 다다르자 아치 사이로 무대의 조명을 켠 듯한 타원형의 빛이 밀려왔다. 오늘의 이곳 밀라노의 주인공은 바로 너, 라고 말해주는 뜨겁고 환한 빛이었다.
<걸음 속의 유럽> 밀라노1 산책은 르무통 메이트(다크네이비)와 함께했습니다.
원고 내 여행 코스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aps.app.goo.gl/CBfiwT1JAKyNi1BN9
밀라노를 거닐은 '르무통 메이트' 만나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