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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Nov 15. 2024

오 바르셀로나여! 위대한 가우디의 세상




시차 적응 실패로 눈이 떠진 어슴푸레한 이른 새벽 가우디를 떠올렸다. 고해성사를 받으러 성당으로 가던 중 그는 전차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 장소에서 누구도 가우디를 알아보지 못했다. 늙고 초라한 늙은 부랑자라고 여겨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도 오래 걸렸다. 가진 거라고는 주머니 속 견과류 한 줌이 전부였던 노인이 가우디라는 걸 알고 뒤늦게 친구들이 몰려왔다. 가우디는 사고 이후 사흘 만에 열악한 국립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가우디는 사랑하는 바르셀로나를 그렇게 떠났다. 


가우디가 건축한 까사밀라, 까사바뜨요 / 바르셀로나 산책을 함께한 르무통 포레스트(블랙)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모두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까사밀라와 까사바뜨요 앞은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였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높은 입장료에도 일찌감치 매진이었다. 그 무리 속에 나도 섞여 들어갔다. 바르셀로나니까,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니까. 아침 일찍 카탈루냐 광장에서 그라시아스 대로를 따라 걸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길을 건너 세 블록을 가면 왼쪽에 까사바트요, 거기서 또 세 블록을 더 걸으면 까사밀라였다. 까사바트요는 현재는 박물관으로 가우디가 지은 아파트이고, 현재는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까사밀라는 당대 부자였던 밀라 부부가 의뢰해서 지은 저택이었다. 까사바트요와 까사밀라 앞은 이미 투어를 위해 이른 아침 공기를 가르고 나타난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일단 저들의 줄에 합류하는 게 나을까? 분위기를 보려고 아침도 먹지 않고 나선 길이라 고민이 됐다. 티켓박스 앞에 서서 여행자로서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까 생각하다가…


웅장한 높이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츄러스 맛집이라는 바로 옆 블록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꽤 1950년대에 문을 열었다니 가우디가 그곳에서 식사를 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그즈음 어딘 가에서 지금을 사라졌을 어느 레스토랑에서 츄러스를 먹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밤늦도록 일을 하고 아침에 현장으로 가기 전 잠시 들려 달콤한 초콜릿에 갓 튀겨낸 츄러스를 적셔 먹으며 힘을 내지 않았을까. 머리가 띵할 정도의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라 부드러운 달콤함을 가진 초콜릿에 심심하고 담백한 츄러스를 풍덩 담가 먹으며 가우디의 시선으로 바르셀로나의 골목과 하늘과 사람들을 관찰했다. 


전날 관광객 반대 시위 현장을 보아서인지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표정에 피곤이 묻어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시위가 관광객 반대 시위라는 걸 아침에 서치를 하고 알았다. 피켓에 쓰인 스페인어를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불청객이 싫다는 사람들 옆에서 불청객인 줄도 모르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들은 어쩌면 가우디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남긴 것들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에 진저리 치고 있으니. 


근처 골목 레스토랑에서 즐긴 츄러스와 커피


그럼에도 가우디는 위대하다. 가우디의 삶은 건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가 지은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가 됐다. 어느 건축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고. 다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시위를 해야 할 만큼 피곤하지 않도록 조용히, 깨끗하게, 가우디의 세계를 즐겨야 한다.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까사바뜨요 / 상대적으로 점잖은 느낌의 까사밀라 / 옥상의 조각 풍경


츄러스로 배를 채우고 까사바트요를 찾았다. 맨 꼭대기 층 발코니 문이 열리고 청소 메이드가 청소를 하는데 당장이라도 공주님이 나와 인사를 할 것 같았다. 무도회의 가면 모양의 발코니 난간, 화려한 색감의 오뜨쿠튀르 드레스 같은 외관, 호그와트의 지팡이를 세워둔 것 같은 기둥. 어느 것 하나 평범하게 그냥 넘어간 것이 없었다. 

반면 건너편 베이지빛 까사밀라는 상대적으로 점잖은 느낌. 클라이언트에 따라 설계가 달라져서일 텐데. 듣기로 가우디는 까사밀라 작업을 하며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지어지고 있는 까사밀라를 보며 기괴하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화가 난 밀라 부인이 공사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아 중단을 반복해야 했다고 한다. 

까사밀라는 산, 까사바트요는 바다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도로에 서서 양쪽을 바라보면 과연 그것이 어떤 의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까사바트요는 상큼하고 청량한 바다가, 까사밀라는 고요하고 묵직한 산이 느껴진다. 내부도 다르지 않다. 까사바트요의 내부는 만화 속에서 표현되는 심해에 들어간 듯 화려하고, 까사밀라는 스페인 남부 협곡에 들어간 것 같다. 까사밀라의 옥상에는 기괴한 모양의 기괴한 조각들이 있는데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 조각에 영감을 받아 <스타워즈>를 만들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의 형상 같은 그 조각은 사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가우디가 성경에 나오는 수호신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외부 및 내부 / 구엘공원에서 바라본 성당 모습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조각들도 기존 문법과는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졌다. 40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가우디의 역작인 만큼 과연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었다. 거의 100년에 걸쳐 완성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구엘 공원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과 안은 인파로 너무 붐비고, 고개를 높이 들고 봐야 해서 신기하다 하는 정도였는데 구엘 공원 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성당은 너무 아름다웠다. 비슷비슷한 건물 위에 우뚝 선 성당은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신의 거처로 딱 알맞아 보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구엘공원까지 버스를 타고 30~40분을 가야 했는데 그 여정이 정말 좋았다. 성당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목에는 카탈루냐 광장이 있는 람블라 거리와 사뭇 다른 고요함이 있었다. 아파트먼트로 보이는 건물에 한낮의 태양을 가리기 위한 드리워진 차양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고, 그 사이로 쉬고 있는 강아지가 보이는.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며 버스를 기다렸다가 버스를 탔다. 버스는 천천히 달려 중심가와 다른 느낌의 거리로 접어들었다. 구엘공원 앞은 좀 더 내밀한 일상이 펼쳐졌다. 좁은 골목을 따라 난 오르막으로 크고 잡은 집들이 빼곡해서 건축관광지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동네 산책을 하는 기분이었다. 


과자집처럼 보이는 구엘공원 내 건축물

 

공원 앞 학교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들어선 공원에는 과자집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고 그 사이사이를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지나갔다. 가우디 건축물의 특징이 하나의 목적이 아닌 다양한 쓰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던데 구엘 공원은 특히 그 특징에 충실했다. 공원은 부자들의 주택단지를 만들려고 설계했다가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용도가 변경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가우디가 세심하게 설계한 공간을 공원 곳곳에서 만난다. 주택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더위와 비를 피할 용도로 만들어진 요새, 다양한 좌판이 들어오는 작은 마켓을 열려고 만든 86개 기둥이 있는 홀, 작은 분수대와 용의 조각이 있는 단지의 입구. 공원을 한 바퀴 돈 후 맨 위에 난간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긴 의자를 놓은 공원의 지붕으로 갔다. 앉지 못하는 사람 없이 누구나 쉴 수 있도록 배려한 디자인이 고마웠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걸었던 지친 다리를 쭉 펴고 앉아 가우디가 디자인한 모자이크 난간에 기대 눈을 감았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모자이크 무늬 / 구엘공원 산책을 함께한 르무통 포레스트(블랙)


도처에 깔려 있다는 소매치기를 대비해 가방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았다. 주인에게 공을 던져달라고 컹컹대는 강아지 소리에 눈을 뜨기까지 십여 분, 달고 깊게 잠을 잤다. 친절한 가우디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다시 일어나 바르셀로나 시내와 저 너머 바다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십자가 세 개가 우뚝 선 전망대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내려다봤다. 신의 창조물인 자연을 모티프로 인간의 공간을 지었던 가우디. 가우디는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고 싶었던 걸까? 신이 되고 싶었던 걸까? 가우디의 삶을 곱씹으며 단 한순간도 한가할 틈 없이 붐비는 구엘공원을 빠져나왔다. 


아름다운 타일이 매력적인 까사비센스


천천히 그들의 일상을 염탐하며 내려가 다시 버스를 타고 가우디가 가장 처음 참여한 건축 프로젝트라는 까사비센스로 향했다. 까사비센스는 가우디가 건축한 후 실제 사람들이 살면서 평범해졌던 건물을 복원한 곳이었다. 모래색의 비슷한 건물들이 늘어선 길 사이에 아, 하고 눈에 띄었다. 종려나무 문양의 철제울타리 안쪽의 까사비센스는 화려했다. 타일제조업자가 의뢰한 집이라더니, 처음 건축을 시작한 청년 가우디는 의뢰인의 삶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해주고 싶었으리라. 


까사바트요와 까사밀라, 까사비센스, 구엘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하루 종일 가우디의 바르셀로나를 만끽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가우디의 세계는 꼭 한 번 보아야 할 절경이고 예술이었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 미안하지만, 가우디의 세계가 그곳에 있는 한 바르셀로나를 향한 발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산책을 함께한 르무통 포레스트(블랙)






<걸음 속의 유럽> 포르투갈 스페인 바르셀로나2 산책은 르무통 포레스트(블랙)와 함께했습니다.

원고 내 여행 코스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aps.app.goo.gl/CBfiwT1JAKyNi1BN9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거닐은 '르무통 포레스트' 만나보기↓

벗고 싶지 않은 편안함, 르무통 (lemout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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