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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Dec 06. 2018

솔개

여행자의 일기장

소설 [너의 이름은]에서 솔개는 이렇게 운다.
피- 효 로로로.
그 기다란 울음소리가 내면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솔개의 기억들을 물어왔다.





1

하늘색은 파란색 페인트 한 통을 죄다 쏟은 것처럼 파랗고, 하늘은 용소처럼 깊다. 몇 점 하얀 조각구름들이 아니라면 빙하의 속살처럼 무결하게 동결된 듯한 하늘. 간간히 불어오는 마른바람에 입술의 물기가 마르는 딱 그만큼 나는 조금 가벼워진다. 창공을 나는 솔개는 날갯짓 한 번 없이 나선과 사선의 궤적을 비행하다, 역광 속으로 들어갈 때, 눈부시게 반투명해지는 저 환한 몸. 누군가는 나의 비행(非行)을 부러워하고 하고 나는 저 솔개의 비상을 부러워한다. 삶이란 어차피 동경과 동경 사이의 슬픈 파닥거림.


2
이곳은 라트니기리. 숙소에서 멀지 않은, 아랍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상공에서 작란하는 빛의 입자들. 선명한 수평선을 지우는 흐릿한 해무. 바람은... 해상의 허공을 메우기 위해 바다로 내달렸다. 바람을 추동하는 것은 저 상공 어딘가에 있을 결핍.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바람은 불어가고 거기서 바람은 스러지고 또 다른 결락을 메우러 바람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바람은 사람을 닮았다.


십여 마리의 솔개들이 창공을 날았다. 보행을 포기한 대신 강인한 날개를 획득한 솔개들은 한두 번의 날갯짓만으로도 한참을 날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나는 저 비상을 경외한다. 자유를 질시한다. 수단과 목적이 하나 되는 순수를 욕망한다. 인간은 어쩌면 가장 하등한 동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유의 능력. 그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한 층위에 위치시키는 결정적 요소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인간인 나는 생각한다. 저토록 아름답게 공중을 활공하는 완벽한 존재에게 사유의 능력 따위는 불필요하다. 저들에게 사유란 불필요한 짐들이 가득 들어찬 여행자의 크고 무거운 배낭 같은 것. 저들은 사유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유를 초월한 것이다. 오랜 여정 끝에 필수 불가결한 것만 남기고 모든 것을 버리는 데 마침내 성공한, 그래서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비로소 떠나온 일상에 대한 집착과 삶의 무게로부터 오롯이 자유로워진 어느 여행자처럼.

나는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인간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숨을 향한 집착일 것이다. 그걸 버리지 않는 한 가벼워질 수 없고 자유로워질 수 없는 한낱 인간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아찔한 절벽 끝에는 얼씬도 못하는 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 이 생을 더 살아갈 것이다. 그다지 튼실하지 않은 두 다리로.

모든 초목들이 일제히 바람이 내달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중 하나의 미약한 존재로 나 또한 바다를 내다보았다. 바람이 옷가지를 펄럭였다. 꽃처럼, 풀처럼, 나는 나부꼈다...


3
누군가는 스리나가르를 지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낙원은 이미 더럽혀졌다. 나처럼 낙원을 찾아온 숱한 인간들에 의해서. 오염된 낙원에서 유일하게 좋아한 건 솔개의 울음소리였다. 그곳의 하늘엔 솔개가 참 많았다. 걷다 보면 솔개의 울음소리가 가랑비처럼 투명한 빗금으로 내렸다. 귓가에서 표로로로로롱-,하고 가늘게 떨렸다.

저렇듯 웅장하고 견고한 몸피에서 이토록 애처롭고 연약한 울음이 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심오한 모순으로 다가왔다.

실은 모든 존재의 내부는 솔개의 울음소리처럼 텅 빈 듯 한없이 여린 게 아닐까.

가랑비처럼 투명하고 하얀 빗금으로 내리는 솔개들 울음소리에 젖어 가며, 목을 뒤로 젖히고, 희부연 하늘을 활공하는 솔개들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덮었다. 솔개의 울음이 귓가에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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