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일기장
민트 티 한 잔 놓여 있는 테이블 벽면에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큼직한 직사각형 창이 나 있었다. 그 창으로 기다란 건물과 평행한 주차장이 내다보였다. 주차장 둘레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긴 침엽수들이 촘촘했다. 밖에 바람이 부는지 새 발자국 같은 초록 잎들이 사부작사부작거렸다.
고요한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오른쪽 주차장 입구에서 푸른색 픽업트럭 한 대가 대각선의 주차라인으로 진입했다. 운전하는 이는 초로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왼쪽 칸에 이미 주차되어 있는 차량 때문에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두어 번 시도하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차를 세우고 보조석에 앉은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운전대를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자리를 바꾸는 대신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들리진 않았지만 지금 잘 하고 있으니 계속 해보라는 독려 같았다.
노부인 다시 운전대를 양손으로 꼭 잡았다. 조심스럽게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앞과 옆을 주시하며 차를 여러 번 움직였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마침내 왼쪽에 주차된 차 옆에 적당한 간격으로 근사하게 주차하는 데 성공했다. 양 옆의 주차 라인도 밟지 않았다. 완벽한 주차였다. 남편이 그녀의 어깨를 다시 다독였다. 들리진 않았지만 왠지 "아주 잘했어, 거봐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부인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향하고 한 오초 간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이진 않았지만 왠지 환하게 미소짓고 있을 것 같았다. 그 웃음에는 작은 일지만 쉽지 않은 일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남편의 인내와 배려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노부인은 시동을 껐고, 두 사람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닫은 후 몇 걸음 걸어 트럭의 뒤켠에서 다시 만나 가만히 손을 맞잡았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지긋이 쳐다보는 맑은 눈동자의 배경으로 노을이 진하게 물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황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