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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14. 2018

안경

 서른이 되었을 무렵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따로 검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체감할 만큼 시야로 들어오는 세상이 흐릿해져 있었다. 신체기관들과 장기들은 이렇듯 통증으로 저의 정확한 위치와 적확한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려오는가 보다. 하지만 대부분의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오듯이 건강도 잃고 나서야 건강을 생각하게 된다. 안경을 맞출까 한다는 나의 말에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불편한 게 많으니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 했다. 한번 쓰면 시력이 계속 나빠질 것이고 그래서 평생 벗을 수 없다는 그들의 말에는 왠지 전쟁 영화에서 총알에 맞은 병사가 최후를 맞으면서도 나는 이미 늦었으니 너는 꼭 살아남으라고 멋진 대사를 뱉어내는 것처럼 섬뜩한 비장감도 배여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못생긴 얼굴이 흐릿한 시야를 선명하게 하겠다고 무의식으로 미간을 찌푸리다가 더 못난 얼굴이 될 것이 가장 겁이 났던 나는 안경점으로 가서 난생처음 안경을 맞추고야 말았다. 그렇게 첫 안경을 맞추고 안경점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세상에, 시야가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었다. 무성한 가로수 잎들의 선명한 잎맥과 윤곽선, 오가는 사람들의 미세한 표정, 그리고 보도블럭의 디테일까지가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것이다. 그건 가히 시야 충격이라 할 만했다. 선예도가 좋은 값비싼 렌즈로 찍은 웅장한 풍경 사진을 보는 듯 황홀했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이제까지 이런 풍경의 세부들을 놓치며 살았구나…’ 그런 억울함이 황홀감에 뒤섞여 기묘했던 그 날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인생 선배들의 잔소리가 대체로 틀린 게 없듯이 안경 선배들의 충고도 거의 들어맞았다. 안경을 쓰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겨울에는 바깥에서 실내로 들어갈 때마다 안경알에 김이 서렸고, 먹음직스러운 라면 앞에서는 무슨 숭고한 의식을 치르듯이 안경을 벗어 테이블 한쪽에 놓아두어야 했으며, 안경알에 날아와 들러붙는 이물질을 지우기 위해 항상 안경닦이를 지녀야 하는 일 또한 상당히 번거로웠다. 깜빡하고 안경닦이를 집에 두고 온 날에는 유독 먼지나 얼룩이 잘 묻는 것 같았고, 흡연자가 낯선 흡연자에게 쉽게 라이터를 빌리듯 거리에 흔한 안경인들에게 선뜻 안경닦이를 빌리지도 못하면서 안경에 실금이 생길까 염려되어 아무 옷가지로 쿨하게 닦아내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스스로를 지켜보는 건 꽤 심란한 일이었다. 여름에는 코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 때문에 자주 흘러내리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추켜올려야 했으며, 귀에 걸리는 지지대는 계절을 막론하고 관자놀이 부근이 배겨서 아팠다. 가장 큰 불편함은 역시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함으로 안경을 집에 두고 출근한 날이면 평소의 익숙한 작업이 쉽지 않았다. 행여 여행지에서 안경이 박살나거나 분실이라도 하면 신뢰가 잘 가지 않는 현지의 허름한 안경점에서 넉넉하지 않은 여행자금을 털어 바가지요금은 아닐까 미심쩍어하며 안경을 맞춰야 하기도 했다. 밤하늘 별들의 무진장을 보기 위해 인도에 있는 사막까지 갔는데 투어 바로 전날 밤에 안경을 잃어버려서 사막 야영지에서 눈물을 머금고 흐릿한 밤하늘은 올려다봐야 했던 일도 있었다. 하나의 별이 두세 겹으로 겹쳐보여 결과적으로 누구보다 많은 수의 별들을 보긴 했지만 또렷한 별들의 향연을 보지 못한 건 지금까지도 크나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안경 선배들의 저주 중 또 하나 들어맞았던 건 한번 안경을 쓰면 시력이 계속 나빠진다는 것이었다. 의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지, 아니면 원래 저하되고 있는 시력에 안경을 올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안경을 쓰면서부터 시력은 계속 낮아졌고 이삼 년에 한 번씩 안경을 바꿀 때마다 도수는 높아졌다. 새 안경으로 바뀔 때마다 시야 충격을 경험했지만 점점 낮아지는 시력에 대한 걱정에 처음 안경을 썼던 날처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시력저하가 안경 때문일지라도 이제와 안경 없이 살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느낌이다. 안경을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묘비에 “플로렌스에 살던 안경 발명자 ‘살비노 다르마토 데글리 아르마티’ 여기에 잠들다. 신이여 그를 용서하소서.”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안경이 시력 저하를 거든다면 그건 신이 정한 법칙을 거스르고 문명의 이기가 주는 일종의 반칙에 의존하는 대가일지도 모르겠다.






 올여름에는 백수가 된 기념으로 울릉도에를 다녀왔다. 천부항에서 관음도를 향해 걷다가 쪽빛 맑은 바닷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갯바위에 올라 다이빙을 했다. 물에서 마음껏 헤엄을 치다가 올라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요즘 말로 기분이 쌔-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짐을 챙기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아, 안경! 바보같이 안경을 쓴 채로 다이빙을 했고 얼굴이 수면에 부딪히는 찰나의 충격에 안경은 저의 자리를 떠나 바다 밑바닥으로 포르르포르르 가라앉았던 것이다. 맑고 투명한 울릉도 앞바다에 입수할 생각에 설레발놓으며 무턱대고 다이빙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꽤 비싼 값을 주고 맞췄던 나의 안경은 이미 해저유물이 되어 있었다. 몇백 년 후에 그곳에서 물질하는 해녀 혹은 해남이 수중으로 쏟아지는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해 저게 보물은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리며 힘겹게 바닥까지 잠수했는데 그것이 겨우 안경으로 밝혀졌을 때의 그의 실망하는 표정이 상상되어 쓴웃음이 지어졌다. 안경을 잃은 덕분에 나는 생눈으로 울릉도를 여행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안경 없이 보는 세상은 모네의 그림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다른 의미에서의 시야 충격이었다. 그곳이 일상의 공간이 아니라 여행의 시공간이어서 더 그랬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사물의 표정이 뭉개지고 윤곽의 경계가 흘러내리면서 시시각각 빛이 채색하는 하늘과 산 바다의 색채 속으로 용해되는 울릉도 천부 해안가는 분명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과 닮은 면이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저 그림은 나의 시각, 내 고유한 시력을 통해 들어오는, 어느 누구의 것과도 다른 나만의 유일한 세계였다. 하나의 세계에서 모두가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세계는 모두 다르겠다는 직감이 그 순간에 섬광처럼 스쳤다. 문득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안경의 교정 없이 나의 눈으로 흐릿하게 들어오는 나만의 이 작은 세계가 잔잔하게 흔들리는 호수에 비치는 반영처럼 아름다웠다.






 울릉도 여행을 마친 후 육지에 올라와 안경을 새로 맞췄다. 안경 없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일상을 사는 데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울릉도에서의 시야 충격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종종 안경을 내려놓는 것이다. 캔버스에 물빛이 스며든 듯 인상주의풍의 그림 같은 세계를 나만의 시력으로 가만히 관조하는 걸 즐기곤 한다. 누군가 안경 맞추는 일로 고민하는 이가 나의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그의 안경 선배로서 내 안경 선배들이 했던 말들을 그대로 전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들이 하지 않은 이 말을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에서는 한번쯤 안경을 벗어보라고. 세계 표준 시력 말고 당신만의 눈의 감각으로 세계를 한번 바라보라고. 그러면 뭔가 오글거리고 밥맛 없는 안경 선배라는 평판이 뒤따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꼭 하겠다. 당신이 이런 풍경과 조우할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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