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Nov 07. 2021

먼 곳 - 문태준

소리 없는 이별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 움큼, 한 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 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 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잘 못한다. 말이 앞서도 마음은 늘 뒷걸음질 친다. 확신이 없어서다. 그가 내 인사를 반길 거라는 확신. 외려 나를 껄끄러워할 거라는 자신에 대한 불신. 그래서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씁쓸한 결말에 대한 슬픈 예감. 그렇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사람에게 다가가는 걸 늘 주저한다. 그러면서 누군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자기 모순. 그러나 자신을 멀리 하는 듯한 사람을 좋아하고 먼저 손 내밀 사람은 드물어서 "오늘은(도)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소리 없는 이별의 말들이 커다란 물주머니처럼 부피를 가지고서 나를 조금조금 밀어낸다. 그렇게 조금조금 "먼 곳이 생겨난다" 멀어질수록 서먹해지고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힌다. 한 순간 돌아보면 나는 하염없이 멀리 와 있다. 그 아득한 거리를 무릅쓰고 기별을 띄우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이별을 말"하게 되는 것. 그렇게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먼 곳은 생겨난다. 그걸 알면서도 당신에게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다. 소리 없는 이별만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깊이 묻다 - 김사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