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의 두 의미
깊이 묻다 / 김사인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상실은 마음에 바다를 만든다. 이 바다는 항상 텅텅 비어 있다. 채워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로인한 그리움은 아픔의 감정이자 고통의 감각. 무언가를 누군가를 잃은 사람은 누에처럼 몸부림치며 사무치는 노래를 한평생 길게 뽑아낸다. 하나의 상실은 또 다른 상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깊은 두려움을 키운다. 두 감정이 만나면 공포가 된다. 다시 잃지 않기 위해 사람은 항상 겁에 질린 얼굴을 한다. 염려로 밤을 지새느라 붉게 충혈된 눈이 가라앉을 날 없다. 그럼에도 상실은 막을 수 없다. 사람은 무언가를 잃어가며 밀려난다. 그렇게 나아가고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자주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나. 파란 불꽃은 절망의 온도요, 날선 조선낫은 분노의 형상화일 테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참을 수 없이 차가운 감정과 시린 감각 그리고 위태한 생각들을 그저 가슴에 “깊이 묻”고 산다. 저마다의 가슴에서 후두둑, 가을비 내리는 대숲의 그 애달픈 빗소리가 생의 골목마다에서 공명하는 이유일 테다. 이 시의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인 이유는 그 공명 때문이 아닐까. 자기만의 슬픔과 절망, 분노의 감정은 시 [깊이 묻다]에서 보편적인 정서로 승화한다. ‘사람’이 ‘사람들’이 될 때 우리는 조금 안도한다. 맞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이다. 상실을 분모로 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서로를 미워하고 다치게 하는지. 너무 깊이 묻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이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신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그리도 “깊이 묻”었는지. 제목 ‘깊이 묻다’에는 이런 중의적 의미도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