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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Jan 28. 2020

유계영 / 에그



사진 출처 : Myriams-Fotos


깃발보다 가볍게 펄럭이는 깃발의 그림자
깃에 기대어 죽는 바람의 명장면

새는 뜻하지 않게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창밖의 무례한 아침처럼
그러니까 다가올 키스처럼
어떻게 두어도 자연스럽지 않은 혀의 위치처럼
새는 뜻하지 않게 시작된 것이다

새가 머무는 날
훌쭉한 빛줄기에 매달리는 어둠을 쪼며
짧게 나누어 자는 잠

그런 잠은 싫었던 거야
삼백육십오 일 유려한 발목의 처녀처럼
하나의 목숨으론 모자라
죽음은 탄생보다 부드러운 과정

새는 알을 남기고 간 것이다
나는 알을 처음 본 게 아니지만
곧 태어날 새는 어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
그런 명장면

유계영 시집 <온갖 것들의 낮>, 민음사, 2016





깃발, 깃발의 그림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바람. 깃발은 주체. 주체인데 주체 아닌 존재. 춤추고 있지만 스스로 추는 춤이 아닌 춤. 깃발은 바람에 의해 펄럭이고 있다. 바람이 깃발의 현재를 결정하고, 그림자로 상징되는 주체의 내면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바람이 죽으면 깃발은 또다른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움직임을 멈춘다. 그러니까 바람이 불기 전부터 깃발의 흔들림은 결정되어 있었고 바람이 죽기 전부터 흔들림의 멋음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결정론. 결정론은 하나의 현상이 무수한 원인들에 의해 이미 결정지어지고 그 원인들은 우연에 기초한다는 이론. 우연한 바람이 깃발의 필연을 결정한다.


시 [에그]는 이 우연성을 노래한다. 길들일 수 없는 타자의 은유인 "새"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고. 새와 함께 "홀쭉한 빛줄기에 매달리는 어둠을 쪼며 짧게 나누어 자는 잠"도 우연이었다고. 모든 만남은 우연히 찾아온다. 계산할 수 없고 계획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사태를 겪는다. 이 예측불가능한 우연성 때문에 이별도 피할 수 없다. 사랑이 우연의 선물이라면 이별도 그렇다. 그러나 이별이 끝은 아니다. 과거의 만남이 현재의 이별을 결정했듯이 지금의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준비한다. 알은 그 새로운 가능성의 상징. 미지의 미래를 품은 자그마한 세계. 그 만남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우연들이 작동하고 있고,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것 또한 우연의 결정이다.


우연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는 결정론은 자칫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연이라는 운명 앞에 다만 무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론은 허무주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간섭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밖에 없다. 가령 지금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을 내맡기는 것. 수동적인 흔들림을 능동적인 춤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럴 때 내일의 그림자가 오늘보다 더 가벼워지는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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