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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27. 2018

플라톤 [향연] 강철웅 옮김 정암학당

책 내 맘대로 오독하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단서가 붙었다. ‘리뷰를 쓸 것’. 플라톤 [향연]의 리뷰라니…, 철학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실로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지만, 선물에 대한 고마움과 의리로 리뷰를 써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 세 번이나, 이 어려운 책을 세 번이나(강조) 정독했다. 아마 이 생애 다시없을 일이지 싶다.     






 [향연]은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아가톤을 축하기 위해 그의 집에서 열린 연회에서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뭇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사랑 이야기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메타 이야기인 것인데, 역자의 말에 따르면, 향연의 이야기를 아폴로도로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액자 구성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전개 방식이라고 한다. 향연 자리에서 이야기를 즐겼던 토론자들과,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난 아폴로도로스 시점에까지 그날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플라톤의 [향연]을 읽을 독자들의 이야기 사랑이 행간이라는 역자의 예리한 의견에 동의한다. 이야기 사랑에서 이야기는 지혜로도 대체될 수 있는데, 지혜 사랑은 철학 PHILOSOPHY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향연은 그 자체로 철학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은 아폴로도로스가 이야기 부탁을 받은 친구들에게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해 준비(연습)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 대사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습작과 퇴고를 거듭하고 있을 이 시대의 모든 창작자들을 떠올렸다. 아폴로도로스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의 친구들이 다시 아폴로도로스를 찾아가 이야기를 요청할 때 아폴로도로스는 지난번보다 더 잘 다듬어진 버전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모든 아폴로도로스들이여, 힘을 내자!


 향연이 메타 이야기인 만큼 나는 향연을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지난한 과정으로도 읽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다양한 관점을 통해 주제를 분석 심화하며 하나의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그걸 다시 여러 번 퇴고하는 창작의 과정으로. 그 과정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출산의 기쁨은 또한 얼마나 클 것인가. 그렇게 완성된 자신의 작품이 평단에 호평받고 대중들에게 회자되는 일은 창작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영광일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불멸을 욕망한다는 에로스 본질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한다.


 플라톤의 초기 저작들 대부분은 민주주의 진영에 의해 고소당한 소크라테스를 변론하기 위해 쓰였다고 한다. 중기 저작에 해당하는 [향연]도 그 선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진 않은 듯하다. 알키비아데스의 입을 빌려 소크라테스의 위대함과 인간됨을 찬미하는 [향연]의 후반부에서 소크라테스를 향한 플라톤의 존경과 사랑, 그리고 상실감과 그리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플라톤이 [향연]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억울하게 처형당한 소크라스테의 진면목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향연]은 목적을 달성한다. [향연]을 통해 이천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추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읽은 향연이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에로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나만 당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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