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들, 그 끝없는 간극에 관하여
나에게는 만 11살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과 만 8살 올해 5학년이 된 아들이 있다.
딸과 아들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다르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사랑스러웠고 내내 사랑스러워왔고 지금도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아직 인간과 원숭이 사이 그 어디쯤에 속해 있는 게 분명한 아들. 또래보다 성숙하고 마음도 깊고 배려 넘치는 내 베프 우리 딸. 그리고 생일이 빠른 탓에 제 학년에서 제일 어리고 작아 영 동생 같지만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개구쟁이 우리 아들. 물론 이 엄마는 아들을 무지하게 사랑한다. 다만, 딸이랑은 너무도 다르다는 거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과학임을 입증하는 산 증인 이라고나 할까.
암 선고를 받기 전 불안하던 순간들에도, 그리고 진단을 받은 후에도, 아이들은 나의 눈물 버튼이었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아가들은 어떻게 하나. 2년간 대학원 공부한다고 집안일도 육아도 뒷전으로 미루었을 때, 남편은 나 없이도 아이들을 잘 돌보았고 아이들도 엄마 없이 잘 지냈다. 하지만 엄마가 암에 걸리면 이건 또 전개가 다르지.
병원에 나흘 동안 잡혀 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 날. 딸은 나를 보는 눈빛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그 순간, 바로 한두 주 전에 딸이 읽고 너무 슬펐다며 나누었던 책 내용이 번뜩 생각났다. 엄마를 암으로 잃은 어떤 소녀 이야기였다. 많고 많은 스토리 중에 하필이면.
확실한 진단을 아직 못 받은 상황이었고, 평소보다 많이 피곤한 것 빼고는 딱히 아픈 데가 있었던 건 아니라서, 아이들에게는 있는 그대로 설명을 했다. 검사를 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다시피 엄마는 정말 괜찮다고.
그리고 한 열흘쯤 후 정확한 진단과 함께 치료가 가능한 암이라는 희망적인 정보까지 받은 날, 우리는 외식을 했다. 워낙 외식비가 비싸 자주 사 먹지 않는데, 그날은 맛난 음식을 시켜놓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기쁜 소식이 있어. 엄마가 암에 걸렸는데, 치료가 가능한 암이래!”
요새는 약이 좋아 웬만한 암은 다 치료가 가능하다지만, 암 이라는 말의 무게를 아이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나도 잘 모르고 있었던 터라 그냥 좋은 것만 강조하기로 했다.
두 녀석은 눈을 껌뻑이더니 아들이 먼저 입을 뗀다.
“그럼 엄마 또 병원 가서 며칠 자고 와야 해?”
“아니? 잘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니야. “
“오케이!”
아들은 이렇게 끝.
딸은 갑자기 내 팔에 자기 팔을 포개더니 떨리는 눈빛으로 글썽이며 묻는다.
“엄마...... 죽어?”
“아니? 엄마가 죽긴 왜 죽어~ 치료가 완전 가능하다니까?”
그날 이후로도 일상은 계속 되었고, 아이들은 엄마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스페셜리스트를 만나고 각종 검사를 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들은 딱히 엄마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딸은 종종 엄마 괜찮냐고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느닷없이, 드디어, 처음으로, 엄마의 상태에 대해 물어왔다. 질문인즉슨
“엄마, 이제 다 나았어?”
네 믿음이 크도다... 그래도 치료를 해야 낫지 이 녀석아...
“아니야, 엄마 이제 곧 치료 시작 할거야.”
“오케이!”
그런데 딸이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내 소맷자락을 꼭 잡고 묻는다.
“엄마, 정말... 안 죽는거지?”
알고 보니 딸내미는 내 침대 맡에 있는 결과지를 몰래 보고 나름 공부를 했다. 정확한 병명과 기타 등등의 정보를 가지고 구글과 챗 gpt에 물어 볼대로 다 물어보았다. 이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은 죽기도 하냐고 물어보았다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대답을 받았고, 혼자 어지간히도 마음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에구 짠해라...
어느 날은 갑자기 아들에게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닌가. 아무리 어리고 잘 모른다지만... 모르면 가르쳐야지 싶어서 아들을 불러 앉혔다.
“너, 엄마 암 이름이 뭔지 알아?”
물론 지난번에 알려 주었지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최대한 8살의 눈높이에 맞게 혈액암과 림프종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 주고, 그래서 엄마 몸에 암세포가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있다고 알려주었다. 양 손을 사용해서 번갈아가며 귀 뒤, 양 어깨, 양쪽 배, 그리고 양쪽 허리까지, 림프가 부어있는 곳들을 가리키며 여기에 다 암세포가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말없이 내 제스쳐를 따라하더니 갑자기... 마카레나를 추기 시작했다.
아......!!! 그 순간 깨달았다. 얘는 그냥 해맑은 게 도와주는 거구나. 그래, 8살짜리가 엄마 암 걸렸다고 맨날 우는 거 보다 이게 백번 낫다...
지금도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 대로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아들은 너무 웃겨서, 혹은 말을 안 들어 엄마를 화나게 해서, 가끔은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벙 찌게 만들어서 등등 순간 순간 내 암 따위 잊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딸은 엄마의 컨디션을 수시로 묻고, 차 운전석 옆이나 베개맡에 깜찍한 응원 쪽지들을 숨겨놓으며, 다음 치료 일정을 체크한다.
정말, 총량의 법칙은 과학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