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냐 뉴질랜드냐

한국 가는게 낫지 않겠어...?

by 혜원

암 진단을 받은 것을 알게 된 후 만나는 지인들은 걱정 어린 말투로 이런 저런 질문을 해 왔다. 나의 몸 상태가 어떤지, 뉴질랜드에서 괜찮겠는지, 한국에 가서 치료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한국행 옵션도 처음엔 많이 고민했다. 아무래도 의료는 한국이 최고니까. 한국에서 큰 병 진단을 받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서울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것처럼, 이민자들의 고민은 한국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린 일단 비행기 값 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제껏 내가 경험해 본 뉴질랜드 의료는 아이들이 아플 때 GP 가서 급한 불 끄는 정도였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나마도 예약 하면 최소 며칠은 기다리는 게 기본이라 시의 적절한 대응을 못할 때도 있었다. 이민 온 후 나와 남편은 우리를 위해 병원에 가 본 일이 거의 없었다. 감사하게도 특별히 심하게 아픈 데가 없기도 했고, 비싸고, 가면 별 거 안 해 주는 거 뻔히 알고.


그런데 암은 좀 다르잖아. 여러 사람이 한국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특히 뉴질랜드 의료에 데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더 그랬다.


그리고 한국에 계시는 아빠도 넌지시 말씀하셨다.

“들어오는게 안 낫겠나...”


스페셜리스트를 만나고 나서는 림프종 치료가 국제 표준에 따라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어디서 치료 받든 비슷하고, 특히 나처럼 신규 진단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걸 모를 때에는 정말 많이 고민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고 확실히 암 진단을 받기 전, 그러니까 정말 많은 것이 불투명할 때, 내 마음은 이미 한국에 가 있었다.


사실 한국에 간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친정이 시골이라 서울로 병원 찾아 다니려면 오가는 길이 험할 것이 뻔했고,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 것이었고, 나 혼자 다녀오려면 여기 남은 남편이 일하며 아이들 챙기며 혼자 고생할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여기 선한 것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기로 했다. 지인 중에 암 투병을 한 분이 있는지, 림프종에 걸린 분을 아시는지, 뉴질랜드 병원 시스템 좀 겪어보신 분이 있는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요즘은 3명이 모이면 그 중 1명은 암환자라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암환자를 알고 계셨다. 그런데 거의 유방암이나 폐암이 많았고, 림프종은 무엇이냐고 다들 되물으셨다.


뉴질랜드는 영주권자 이상이면 의료비가 무료이다. GP 에 갈 때는 돈을 내지만, 그 이상의 치료가 필요해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경우라면 모든 비용이 무료이다. 하지만 무료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기나긴 웨이팅 리스트가 있고 우선순위가 아니면 끝없이 뒤로 밀려나다 보니 한국인 이민자분들, 연세가 좀 있으시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암 진단을 받으신 경우 한국으로 많이들 가신다. (물론 여기서 개인 보험이 있는 경우는 다르지만, 보험이 워낙 비싸서 많이들 가입을 안 한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게 가장 기본이 되는 뉴질랜드에 남고 싶은 이유였지만, 의료비가 무료라는 것도 나에게는 정말 큰 장점이었기에 웬만하면 있고 싶었다. 뉴질랜드의 암 치료, 특히 림프종 치료에 대해 이리저리 헤매며 물으러 다니던 어느 날.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이었던 나는 가끔 경험이 많은 직원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이 어떻게 일 하는지를 배우는 섀도잉 shadowing 시간을 가졌다. 전부터 한번 따라 나서고 싶었던 남자 직원 Y가 있었는데 어째 스케쥴이 맞지 않아 계속 못 하다가, 마침 그 날 시간이 맞았다. 그때만 해도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나는 온갖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고, 잠시 가드를 내려놓으면 얼굴에 수심이 올라오던 때였다.


섀도잉을 마치고 나오는 길, 내 얼굴을 살피던 Y가 괜찮냐고 묻기에, 나는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Y는 우리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또 다른 파트타임으로는 목사님을 하시는 분이라 뭔가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털어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Y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놀라웠다.


“우리 아들이 림프종이었어. 몇 년 고생 했는데, 지금은 다 괜찮아.”


너무 어린 아기 때 너무나 커다란 종양으로 고생을 한 그 아들은 몇 년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지만 지금은 다 지난 일이란다. Y는 림프종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이야기 해 주며, 본인이 겪은 뉴질랜드의 림프종 치료 과정과 헌신적인 의료진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따뜻하게 덧붙였다.


“혜원, 네가 치료를 받아야 할 곳은 여기야.”


마음이 갑자기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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