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기도편지
임상실험 그룹 무작위 추첨 randomisation의 결과는 치료 시작 딱 하루 전에 알려준다고 했다. 스크리닝 결과도 모두 정상으로 나와야 하고, 연구자나 환자의 편향을 막기 위한 공정한 배정을 위해, 그리고 치료 직전 내 몸 상태도 다시 체크해야 하고 등등의 이유로 직전에야 알려준단다.
아... 정말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한데.
스크리닝 기간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어느 그룹에 배정이 될까?’
신약 그룹에 배정되고 싶었다. (신약, 이라고 하기엔 나온 지 몇 년 되긴 했다) 물론 신약을 사용한다고 모든 게 만사 오케이인 것은 아니다. 엡코리타맙 Epcoritamab 이라는 약이 효능이 좋다는 것은 그 동안의 임상과 치료를 통해 밝혀져 왔지만, 재발이 아닌 ‘신규’ 진단된 여포성 림프종에 사용하는 것은 세계 최초이다. 그에 따른 어떤 위험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존의 항암치료제보다 몸에 부담이 훨씬 적다고 들어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스페셜리스트의 확신에 찬 추천도 한 몫 했다. 그는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 알아버려서.
내 치료의 옵션이었던 몇 가지 약물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일단 리툭시맙Rituximab 이라는 표적항암치료제를 공통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항암치료제는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다 죽이는 강한 화학 약품이고, 그래서 암 환자들은 머리도 빠지고 토하고 힘들어한다. 리툭시맙은 ‘표적 항암 치료제’로 특정한 세포만을 표적해서 공격한다. 여포성 림프종은 B세포 림프종의 일종으로 B세포라고 하는 항체를 만드는 면역 세포에서 암세포를 만드는 것인데, 이 B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CD20이라는 특정 단백질을 리툭시맙이 알아보고 공격하는 것이다. 참 기특한 아이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전 리툭시맙이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도 림프종 치료의 기본 약처럼 사용되며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킨 약이라고 한다.
신약인 엡코리타맙은 여기선 한 단계 더 똑똑해진 아이다. 요새 암 치료의 트렌드라고 하는 면역 치료인데, 내 몸 속의 면역세포를 활성화 시키고 따라서 부작용은 최소화 하는 것이다. 이 약제에는 팔arm이 두 개가 달려 있는데, 한 팔로는 위에서 말한 암세포인 CD20을 잡고, 나머지 한 팔로는 암세포를 죽이는 세포인 T-cell의 CD3을 잡는다. 그리고 이 두 세포를 붙여놓는다. 즉, 암 세포를 죽이는 세포가 암 세포를 직접 대면해서 공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세세하게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의 최소한의 기제를 알고 싶었고 그게 내 자신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뼛속까지 문과인지라 일단 여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엡코리타맙을 쓰는 선택지가 두 개가 있었는데, 한 그룹은 6개월의 집중 치료 후 2년 동안 유지 치료를 하는 2년 6개월 일정의 치료이고, 나머지 하나는 유지 치료 없이 6개월만 집중 치료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6개월만 짧게 치료 받고 끝나기를 바랬다가, 확실히 치료하고 오랫동안 관해 기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2년 6개월 그룹을 마음속에 두고 기도했다.
만일 항암치료 쪽으로 그룹이 배정 되면 리툭시맙을 기본으로 몇 가지의 항암약 옵션들이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벤다무스틴 Bendamustine 이라는 약을 쓸 예정이었다. 다른 센 항암 옵션들에 비해 비교적 부작용 관리가 쉽고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항암약 인지라 몸이 힘들 것은 각오하고 있었고, 머리가 빠지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머리야 빠지면 다시 나겠지만, 머리를 민 내 모습을 거울에서 마주하고 얼마나 발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엄마가 침대에서 힘들어하며 누워있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얼마나 자주 보여주어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약들은 오랜 기간 동안 안전하게 사용해 왔고 그 효과가 증명된 항암제 들이다. 하게 되면 이 또한 감사하게 하는 거다. 항암 치료를 먼저 하게 될 경우 혹여 나중에 재발 했을 경우에 쓸 수 있는 다른 좋은 옵션인 면역치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으로 나의 걱정을 덮었다. 내 몸에 가장 필요한 약이 무엇인지는 사실 나도 의사도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실 테니, 지금 당장 뿐 아니라 10년 후 30년 후의 미래를 보시는 분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달라고 기도했다.
2월 16일 월요일부터 치료를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병원 사정으로 며칠이 앞당겨져 12일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병가를 당기고 예정보다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느라 정작 임상 그룹 배정이 나오는 날이 임박해서는 그룹에 신경 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연락이 오는 당일. 일을 하면서도 자꾸 핸드폰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전화를 준다더니 어느 순간 메일이 슥 와있네.
너무너무 반갑고 기쁜 내용이라 회사에서 폴짝 폴짝 뛰어다녔던 건 안 비밀이다. 원하던 옵션이 되었다. 신약이 되었다. 2년 6개월짜리가 되었다. 다 이루었다. 감사 이상의 감동이 밀려왔다. 내 머릿속에 별안간 예쁘고 하얀 작은 비둘기가 한 마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안다. 이 약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을. 치료를 시작한 지 한달 쯤 된 지금은 더 잘 안다. 이 약에도 나름의 어려움들이 있다는 것을. 사실 지금도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하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것 중의 최선이었다 믿고, 이것이 나에게 제일 좋은 선택이기 때문에 주어졌다 믿는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너무나 정신 없이, 하지만 최선을 다해 잘 일을 마무리 하고,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하러 갔다. 아이들에게 암밍아웃을 한 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기쁜 소식이야, 엄마가 암에 걸렸는데 치료가 가능하대!“
를 시전했던 그 날처럼, 이 날은
“엄마가 치료를 시작 하는데, 제일 좋은 약으로 치료 할거래!”
라고 신나게 외쳐 주었다.
이게 내게 제일 좋은 약이기를 바라며, 내 추첨 결과가 나온 후 Tom이 다시 한번 자신 있게 말했던
best available therapy for this condition in the world를 믿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기도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처음 진단을 기다릴 때의 떨리는 순간부터 시작해 나에게 가장 맞는 약으로 배정받게 해달라고 지금도 함께 기도해주고 계시는 분들에게, 어떤 약으로 얼마 동안 치료 받기로 결정되었는지 알려드리는 게 당연했다. 첫 날은 주사를 아주 오래 맞는다고 들은지라 첫 치료가 순적하게 이루어 지고 부작용이 적기를, 치료 받는 동안 마음 평안하고 가족들이 지치지 않기를 함께 기도해달라고 적었다.
그리고 답들이 왔다.
때에 따라 가장 적절한 치료를 받을 거라고.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는 증인이 될 거라고. 감사 넘치는 마음을 주셔서 가족이 더 단단해 지는 시간이 될 거라고. 가족들이 지치지 않게 기도하겠노라고. 바라던 신약이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모든 치료 과정에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거라고. 누군가와 대화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 하라고. 언제든지 아이들 픽업을 맡겨달라고.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 적어달라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내일이면 벌써 반은 한 셈이라고.
뭘 기대하고 보낸 건 정말 아니었는데, 따뜻하고 감사한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왔다. 집단 지성 아니 집단 영성의 힘이다.
이제 나는 치료 받을 준비가 다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