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날
입원과 외래의 중간쯤 되는 혈액내과 당일 입원실 Haematology Day Stay 에서 매 주 목요일마다 치료를 받는다. 전에 공포의 골수검사를 했던 곳이 바로 여기라서 그 때 잠시 둘러 보았던 적이 있다. 열 개 남짓 되는 쨍한 파랑색 리클라이너들은 주사를 맞는 사람들과 수혈을 받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옆자리를 지키는 가족들. 뉴질랜드는 치료와 회복에 확대가족 Whanau (진짜 가족 뿐 아니라 친한 친구 등 넓은 가족의 범위) 의 서포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누구든 데려오는 것은 웰컴이다. 여기서 나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하고 환자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라, 옆에는 성인 자녀나 은발의 배우자, 혹은 유치원 땡땡이 치고 온 손주도 가끔 보인다. 골수검사 때 처음 이 Day Stay를 보고 난 이후 이 공간을 마음 속에 떠올리며 첫 치료를 준비했다. 나도 이제 여기 앉아서 몇 시간씩 보내겠구나, 평안한 시간이 되면 참 좋겠다, 하면서.
첫 치료 날, 아침 일찍 병원에 가니 내 자리는 리클라이너 대신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첫날이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서 의자보다는 침대가 좋을 거라며 열심히 세팅중인 내 담당 간호사 조안나Joanna는 타이완 출신의 명랑한 아줌마다. 모두 그녀를 Jo라고 부르길래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처음엔 그녀의 독특한 영어 발음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살짝 걸렸지만, 뭐든지 더블 체크하고 자세히 설명해주는 그녀의 성격이 궁금한 거 많은 나와는 아주 찰떡이다.
임상실험을 하고 있다 보니 일단 방대한 양의 질문지부터 한바탕 끝내야 했다. 컨디션이 어떤지, 내 림프종이 일상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등등. 그 이후 Tom이 와서 이런저런 체크를 했다. ICE 검사라고 하는, 뇌 신경에 문제가 생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매번 하는 신경 검사가 있는데, 오늘 날짜며 현재 위치며 물건의 이름 등을 묻는 정말 간단한 검사다. 그 검사의 마지막 단계는 첫 날 썼던 짧은 문장을 매 번 기억해서 쓰는 것인데, 내가 첫 날 쓴 문장은 I will be fine. 이었다. 매 주 내가 I will be fine 이라고 꾹 꾹 눌러 쓰면, 마치 꼭 대답을 해야 하는 질문이었던 것 처럼Tom은 언제나 단단하게 말해준다.
“YOU WILL BE FINE.”
메인 약물들을 투여 하기 전,구토 억제제와 파라세타몰 등 부작용 방지제를 먹고 덱사메타손 이라는 강한 스테로이드를 정맥주사로 투여했다. 그리고 레날리도마이드 Lenalidomide도 먹었다. 레날리도마이드는 리툭시맙, 엡코리타맙과 함께 내 치료의 중요한 축이 되는 경구 복용 약인데, 면역 세포를 깨워 암을 더 잘 공격하게 만드는 면역 부스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리툭시맙과 엡코리타맙이 내 몸 안에서 일을 더 잘 하도록 시너지 효과를 주는 약이라고 하면 되겠다.
오늘 첫 리툭시맙을 얼마나 천천히 넣을 건지, 중간에 부작용이 생기면 어떻게 조절 할건지를 Jo가 정성 들여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9시쯤 시작한 리툭시맙은 한방울 한방울 인내심을 잔뜩 품고 떨어진 후 느릿느릿 내 혈관으로 들어왔다. 몽롱했던 탓에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오후 3시가 넘도록 맞은 것 같다. 다행이 맞는 동안 큰 부작용은 없었다. 혈압이 떨어져서 어지럽고 졸린 정도? 그리고 나서 수액도 한참 맞았다. 첫날이라 내내 같이 있어준 남편이 이것저것 챙겨 주었고, 교회 언니가 병원 가서 먹으라며 싸 준 호박죽도 야무지게 꺼내 먹었다. 침대를 반쯤 세워 마치 고대 로마 귀족처럼 비스듬히 누워 죽을 먹고 있으려니 이건 말 그대로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어쩜 호박죽은 식어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그래, 병원 이까이꺼, 식은 죽 먹기지!
잠시 후 점심시간, 뉴질랜드 병원 점심의 현실을 간파했다. 샌드위치와 과일이었는데 샌드위치는 치즈와 당근샐러드의 오묘한 조합이었고, 과일은 통 사과. (다른 옵션은 통 오렌지였다. 아니 뭘 어쩌라고...) 이 나라에서 출산한 한국 친구들이 하나같이 병원 밥 때문에 금방 퇴원했다며 산모식이 토스트랑 아이스크림이었다고 했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해가 간다. 모든 치료가 다 무료에 밥까지 무료로 주는데 메뉴에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요거 먹고는 못 버티는 한국사람이라 매 주 바리바리 간식을 싸 와야지 싶었다.
리툭시맙을 문제 없이 맞은 늦은 오후, 기다리던 엡코리타맙이 등장했다. 중요 약들은 모두 투약 전 두 명의 간호사가 함께 와서 내 인적사항을 다시 묻고 약의 이름, 용량, 유통기한 등을 크로스체크 한다. 한 번 치료 받으러 갈 때 최소 세 네 번은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벽에는 ‘아직도 내 이름을 모르냐고 섭섭해하지 말아주세요, 혹시 모를 의료 사고를 위해 꼭 필요한 절차예요’ 라고 설명하는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다. 암요, 이해하고말고요!
엡코리타맙은 배에 피하 주사로 투여하는데, 오늘은 첫날이라 baby dose란다. 0.16mg의 적은 용량이지만 암 세포를 파괴하는 능력이 엄청나다는 이 약물이 내 몸 속에 들어가서 맡은 일을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도가 절로 나왔다. 피하주사이다 보니 30초도 안 걸려 끝났다. 하지만 혹시 부작용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1시간을 대기하며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행이 별 일 없었고, 아침 8시에 시작한 첫날Cycle 1 Day 1의 일정은 4시가 훌쩍 넘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 동안 각종 부작용이 찾아왔다. 임상 실험에 대한 안내 자료를 받았을 때, 그 방대한 페이지의 대부분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었다. 물론 어느 그룹에서 어느 약으로 치료를 받을 지 모르니 모든 그룹의 가능성을 설명하느라 내용이 많기도 했고 부작용을 사전에 고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실 동의서를 쓸 때 내가 가장 신경 써서 ‘대충’ 보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괜히 미리 겁 먹고 싶지 않았다.
나의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부작용은 엡코리타맙을 처음으로 전체 용량 full dose로 맞는 4주차에 일어날 예정이었는데, 첫 주에 baby dose를 넣고 겪은 부작용은 이것에 비하면 미미했지만 참 다양했다. 불면, 두통, 메스꺼움, 소화불량, 이명, 손발저림, 관절통, 속쓰림, 변비, 피로, 부종 등등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번갈아 가며 쉬지 않고, 혹은 한꺼번에 오니 사실 영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심하게 구토를 한다거나, 정말 못 견딜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 힘들고 암을 치료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참을 만 했다. 항암 치료가 아니고 표적 치료, 면역 치료라서 감사했다. 두 아이 모두 무통주사 없이 자연 분만한 나라서 고통에 대한 한계치가 좀 높은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항상 손발이 저리고 속이 불편하고 머리 한 쪽이 띵 하고 귀에는 맥박성 이명으로 쿵쿵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지만, 정말 다 참을 만 했다. 게다가 나는 병가 중 아닌가. 힘들면 쉬면 되고 아프면 누우면 되니 얼마나 좋아. 감사하지. 급할 때 언제나 갑자기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동네 언니가 있고, 아이들 픽업을 늘 신경 써 주는 친구들이 있고,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는 분들이 있고, 나와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고. 이 정도 부작용 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그.리.고. 약들의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내 뱃속의 크고 딱딱했던 암 덩어리가 일주일 만에 벌써 말랑해진 것이었다. 이제는 엎드려 누울 수도 있다! 정말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기도해온 대로 나에게 최고인 약이었다. 엡코리타맙은 현재 뉴질랜드에서는 아직 승인되지 않은 약이라 돈을 내고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현재 비급여로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한 번 맞을 때 금액이 950만원 정도라고 했다.
나는 그저 감사밖에 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