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5월이라 막 좋다가도, 막 슬프다...

by Lena Cho

어젠 점심엔 긴 연휴 끝의 출근을 해서

그런지 몸도 피곤하고 아프던 곳도 더

아파서 휴게실에 가서 좀 누워 있을까

하다가 하루종일 앉아 있을 건데,

좀 움직이는 게 낫겠단 싶어 혼자서

간단히 샐러드로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에 조계사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조계사 근처에 다다르자,

흥겨운 민요자락 노랫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좀 더 가까이 가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춤까지 추고 계셨다, '나는 절에서 지금

뭐 하는 것인가' 하며 쉴 곳을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오던 때 흥겹게 춤을 추고

계시던 할머니들이 눈에 더 들어왔고,

흥겨운 우리 민요 자락에 나도 좀 흥이

나는 거 같았다.

마침 오늘이 어버이날이라서 조계사에서

이벤트로 무대를 꾸민 거 같았고, 앞에

앉아 계시거나 춤을 추시는 분들 왼쪽

가슴엔 예쁘게 카네이션도 달려 있었다.


나는 어디서 이렇게 무료로 좋은 노래와 춤을

라이브로 듣고 볼까 싶어 기왕 온 거 좀 더

무대를 지켜보기로 했다.


마침 오늘 날씨도 비 온 뒤라 그런지 하늘도

정말 화창하고,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더할 나위 없는 5월의 화창한 날씨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젊은 외국인들도

꽤 오랫동안 그 공연을 즐기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공연이 계속 이어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덩실덩실 흥을 더할수록

갑자기 마음이 슬퍼졌다, 사실 오늘이

어버이날인줄도 몰랐고, 이렇게 눈부신

좋은 날을 병상에 계시느라 즐기시지도

못하고 떠나신 엄마가 생각이 났다.


살아계셨더라면 이런 날만큼은 빚이라도

내서 효도를 해드리고 싶은데 나에겐 그럴

분이 아무도 안 계신다는 게 서글펐고, 갑자기

주책맞게 눈물이 날 만큼 슬펐다.....

아마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오열을 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물론 그 이전에 갑작스럽게

떠나신 아버지도 살아계셨더라면 아마

두 분과 해외여행은 실컷 다녔을 것이다.

항공사 직원의 가장 큰 혜택이 비행기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건데, 내가 입사를

했을 땐 아버지는 이미 안 계셨고,

엄마는 그때부터 아프셔서 한 번도

그 혜택을 누려 본 적이 없다...


간신히 딱 한 번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온 게

전부이다.

그때도 몸이 안 좋으셔서 얼마나 조심조심

다녔는지 그래도 하루씩 예약한 택시 기사분을

좋은 분을 만나서 나를 대신해서 휠체어도

밀어주시고, 또 엄마가 편히 갈 수 있는

곳을 찾아 함께 가는 곳곳마다 엄마는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 평생가장 큰 효도라면 아마도

그때일 것이다.


주변에 보면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투덜거리는

사람을 가끔 본다, 자식 된 도리로 그런 날이

부담스러워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고,

자식이 있음에도 이런 날 대접 한 번 못 받아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다. 난 순간 자식이

대접을 안 해준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지금 이렇게 서운해할 만큼 본인 부모님

에게 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이라 그런지 예쁜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어버이날이면

나는 엄마가 계신 요양원으로 카네이션과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가져갔다.

그때마다 요양사들이 도끼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들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내가

밖에서 사 온 음식들을 엄마에게 드리는 걸

못마땅해했기 때문에 나는 그 음식들을

엄마가 드시고 싶을 만큼 충분히 드리지

못했다. 혹시나 탈이라도 나면, 내가

없을 때 얼마나 눈총을 받을까 싶어서 말이다.


5월은 가정이달이라고 하는데, 부모도 없고

혼자 사는 나에겐 큰 의미는 없지만,

5월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날을

떠나신 부모님과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그냥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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