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나의 작은 테라스에 긴히 불편한
다리로 시장까지 두 번이나 걸어가서
모종을 사다 심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게 좀 이르게 3월쯤 모종을 사다 심었더니
지금은 제법 고추도 달리고, 토마토도
익어가서 가끔씩 몇 알은 따먹을 정도로 자랐다.
거기다 쌈 채소는 벌써 몇 번을 뜯어먹었고,
모종대신 씨앗을 뿌린 루꼴라와
참외, 수박 씨앗이 싹을 티어 이제 모종정도
크기로 자라고 있다.
별거하는 일도 없이 단지 내가 하는 일은
물을 주는 거뿐인데도 작은 화분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게 매년 보는 건데도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사실 실외에서 화분에
심겨진 식물이다 보니 여름철 해가 뜨거울 때는
출근 전에 물을 한 번 주고 퇴근 후 한 번 더
줘야지 한 번이라도 빼먹으면 잎이 노랗게
시들어 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물 주는 것은
되도록 까먹지 않고 주려고 하는데, 가끔
늦게 집에 가는 날은 깜깜한 테라스에
맨발로 나가 물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작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사진들을
똑같이 매일 수십 장씩을 찍고 있다.
좌측은 노랗게 익어가는 토마토 우측은 4월에 심은 귤나무 그런데 쑥갓은 몇 번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꽃을 피워버려 더 이상 쌈채소의 기능은
사라져 버렸고, 이제 꽃구경을 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꽃을 자세히 보니
꽃줄기에 다들 어디서 생기는 건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초록색 보호색을
띤 미니미 벌레들이 가는 줄기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작년에 산 천연 해충제를
하루가 멀다 하고 뿌려 되는데도 전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미생물들도 이런 천연 해충제
따위는(?) 살짝 무시할 정도인가 보다.
그래서 좀 더 용감하고, 무식할 때는
천연 기피제라고 쓰여있는 에프킬라를
뿌려서 애꿎은 블루베리 나무와 아끼는
체리 나무를 보낸 적이 있다. 에프킬라는
천연재료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절대 뿌려선 안된다는 깊은 교훈을
얻었다.
몇 번을 배어 먹어도 잘 자라나는 부추, 부추는 벌레도 없이 잘 자라는 거같다. 거기다 새순이 올라오기도 전에 주인
없는 테라스에는 새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와 꽃이 피기도 전에 토마토
줄기를 다 뜯어먹거나 심어놓은
모종의 새순을 하도 뜯어먹어
제대로 열매를 못 맺거나, 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복병이다.
어느 날은 퇴근을 하고 테라스 창문에
살금살금 다가가보면 새들이 5~6마리가
화분마다 들어앉아 화분의 흙을 파헤치거나,
새순을 뜯어먹고 있다가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화들짝 놀라 날아가 버린다.
이게 더 신기한 게 새들이 찾아오는 것도
시간이 있나 보다 주말에 테라스에 가끔
앉아 있다 보면 새들이 후루룩 날아왔다가
나를 보고 후루룩 도망가기를 하루 몇 번을
하는데 그 찾아오는 시간대가 비슷하다.
새들도 나름 '저 테라스 있는 집은 이때쯤
가자'란 루틴이 있나 보다...
서울의 작은 테라스에도 파리와 모기,
날파리는 디폴트이고, 왕벌도 찾아
오기도 하고, 심지어 나비와 새까지
찾아오는 걸 보면 여느 숲 속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서울의 빌라에도 벌레들이 이 정도
찾아오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깊은 산골짜기에는 얼마나 더 다양한
산짐승들과 벌레들이 찾아올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뭔가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크고 작은 벌레들과 함께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인 거 같다.
벌레들을 끔찍이도 싫어하면서
매년 흙을 사서 그 흙에 모종을 사다
심는 거 보면 나도 아~주 조금씩은
벌레들에게 적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아직은 아닌 거 같다.
아~벌레들이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