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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궁전

by LenaMilk Aug 19. 2022

Tirta Gangga


    아직 발리를 방문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인스타그램을 자주 사용하며, 발리가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내가 소개할 트리티 강가의 물의 궁전의 모습에 매우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그만큼 물의 궁전(water palace)은 국내외 여행객들과 인플루언서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곳들 중 하나이다.

    

    길리에서 다시 발리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트리타 강가이다. 발리에서 돌아와서 한 달쯤 된 지금, 여전히 발리와 길리가 그리운데, 그중 가장 그리운 곳 중 하나가 트리타 강가이다. 우리가 선택한, 아니 남편이 선택한 숙소는 발리 가족이 운영하는 숙박 집이었다. 방은 그냥 간단했다.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아주 어두운 조명과 아주 오래된 화장실. 하지만 매우 깨끗했다. 들어서자마자 얼마나 열심히 청소를 하셨는지 느껴지는 깔끔함이었다. 무엇보다 이 숙소의 강점은 방 바로 앞에 펼쳐지는 자연 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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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내부는 소박하게 정말 필요한 것만 갖추고 깨끗했다. 물론 전등이 매우 어두워서 잠들기 전 독서를 하기가 약간 힘들었지만, 여행 기간 동안 숙소보단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남편이 이숙 소를 고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1. 숙소 내부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가정식 식당(주인아주머니와 사장님 그리고 친척인 것 같은 아주머니께서 빠르게 요리를 해주신다. 2. 유명한 물의 궁전 트리타 강가가 걸어서 10분 내지. 일단 확 트인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하늘을 관찰하다 보면 특정 시간에 맞춰 등장하는 새떼를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약간은 섬뜩하면서도 신기한 소리를 내면 한 20분 정도 배회하다 사라진다. 그리고 발리 하면 떠오르는 라이스 테라스! 저기 멀리 보이는 라이스 테라스를 구경하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면 사장님 내외가 가꾸신 정원의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다.

    

    먼길을 오느라 피곤했던 우리는 도착한 하루는 식당에서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실제로 홈스테이를 하지 않는 이상, 정말 로컬 발리 혹은 인도네시아 사람이 하는 집밥 같은 느낌을 먹어보기가 힘들다. 그것은 어느 곳을 여행하나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도 아무리 전라도와 경상도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로컬 음식을 먹더라도, 집에서 엄마 아빠가 해주는 음식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이 숙소의 식당은 소박하면서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집밥 냄새가 나는 음식도 많았다. 아침마다 조식으로 먹었던 팬케이크도,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먹는 화려한 팬케이크와 달랐다. 팬케이크의 어떤 부분은 타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맛있는 홈메이드 팬케이크의 느낌이었다.


    RICE FIELD/TERRACE


    발리의 농작 시스템 중에서도 물을 공급하는 구조와 방식이 세계 유니세코(Uniseco)에도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발리에서 농업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 수단이자, 그들의 음식 문화를 책임지는(확실히 발리는 면보다는 쌀인 듯하다) 매우 중요한 삶의 부분이다.

    아침 일찍이 길을 나섰다. 운 좋게도 머물던 숙소의 뒷문을 이용하면 트리티 강가 물의 궁전과 라이스 필드를 갈 수 있었다. 남편은 구글맵 지도에 의지해 라이스 필드까지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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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사람이 없는 시간에, 뒷길을 걷다 보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또 쓸데없이 무섭기 시작했다. 인간의 두려움이란, 정말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는 감정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뱀이 나탈날 리가 없지만 다시 뱀을 걱정하고 이렇게 길을 잃으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울창한 작은 숱 같은 분위기를 보니 서울에서 롯데월드와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탈 때의 장식들이 발리의 풍경에도 영향을 받았겠구나 싶었다. 그러게 한참 걷던 중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남편 이렇게 넷이서 발리를 다시 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품은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발을 헛디뎠고, 그렇게 괴음을 지르며 논두덩이로 떨어졌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떨어지는 순간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렇게 떨어지면서도 옆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남편은 착잡한 얼굴로(나중에 남편에게 혹시 내가 떨어진 게 웃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근데 웃으면 내가 화낼 것 같아서 착잡한 얼굴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눈엔 보였다 '착잡한 척!!' 하는 표정이었단 것을...) 내가 다시 올라갈 수 있게 도와줬다. 온몸에 진흙을 뒤덮고 나니 갑자기 억울한 감정이 쏟아 올랐다! 이것은 신혼여행이 아닌 극기 훈련이 아닌가. 아니 누가 신혼여행에서 진흙을 뒤덮는단 말인가! 그냥 좋은 리조트와 호텔에서 하루 종일 쉬기만 좋을 텐데(말은 이렇게 해도 그런 여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오르며 순간 선택의 늪에 빠졌다. 뭔가 내가 굴러 떨어져서 다친 것도 아니고 웃긴 해프닝인 것 같지만 뭔가 짜증이 난다. 어떤 감정을 선택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처럼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 뒤로 거의 1시간 동안 남편에게 없는 짜증 있는 짜증을 쏟아부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얻는 게 뭐냐는 말까지 하면서 이게 무슨 신혼여행이냐고 투덜투덜거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착한 남편은 그냥 묵묵히 나의 짜증을 받아주었고, 그렇게 걷다 보니 기대하던 라이스 필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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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국의 시골을 방문할 때에도 논밭과 농사짓는 풍경을 구경하고는 했지만, 발리의 농작 시스템과 농작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게 밑으로 내려가 라이스 필드를 걷기 시작했다. 내가 굴러 떨어지고 길을 헤매는 탓에 아쉽게도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이 시작되었고, 그늘 하나 없는 라이스 필드에서 계속 걷자니 너무 더웠다. 그렇게 라이스 필드에서 길을 걷다가 또다시 길을 잃었을 무렵 사진을 찍고자 스마트폰을 꺼내니 충격적인 뉴스 하나를 접했다.

    

     일본의 전 총리 아베 신조가 길에서 총에 맞아 위중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유명인들의 충격적인 스캔들 혹은 사망 소식을 들으면 너무 안타깝고 충격적이면서도 금세 흥미 위주의 가십으로 전락해버린다. 일단, 아베가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국가의 수장은 아니었기에, 한편으로는 역시, 정직하고 착하게 제대로 살아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한 국가의 가자아 힘 있던 정치인이 유세 중에 총에 맞아 사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 싶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감정이 교차하며 길을 걷던 중 귀여운 소녀를 마주했다. 처음에는 바짝 마른 몸에 모든 머리카락을 모자 속에 넣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성별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는 귀여운 교정기를 끼고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귀여운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계속해서 걸었다. 아이는 '휘휘 휘휘 휘휘'와 비슷한 소리를 아주 크게 내고 있었다. 아마도 농작물을 훼손하는 새를 쫓기 위해 만들어내는 괴음인 듯했다. 그렇게 열심히 걷기 시작했을 때, 그 소녀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소녀는 우리가 길을 잘못 들면 소리를 지르며 바른 길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를 따라오며 5명 정도 우리의 길을 바른 길로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라이스 필드에서 벗어나 다시 라이스 필드를 바라보니 이미 소녀의 몸은 콩알만 해 보였다. 그렇게 소녀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드니 소녀도 고맙다고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그 소녀가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모든 아이의 눈이 맑은 것은 아니다. 아이의 눈과 마음은 맑아야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아이들의 눈이 맑지 않다. 하지만, 발리의 밭에서 만난 소녀의 눈은 그 어떤 맑은 계곡보다도 맑았다. 정말 너무 맑고 동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떠난 소녀의 삶이 따듯하길 조용히 기도했다.


     그렇게 소녀의 따듯한 마음을 전달받고 나니, 논두렁이로 떨어진 후 나의 반응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별로 큰일도 아닌 것에 웃어 넘기기와 짜증내기라는 선택지에서 후자를 선택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이게 여행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 자신을 노출시키며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는 것, 이것이 여행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서울에서의 삶에서도 사소한 일에는 그냥 웃어넘기려 한다. 제발 그렇게 유연한 마음을 갖고 싶다.


 WATER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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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르타 강가(Tirta Gangga)는 인도네시아 발리 동부에 위치한 옛 왕궁으로, 아방(Abang) 근처 카랑가 셈(Karangasem)에서 약 5km 떨어져 있다. 힌두교의 신성한 갠지스 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곳은 카랑가 셈 왕궁, 수영장, 파티르 탄 사원으로 유명하다.

    한화로 만원 정도를 내면 입장료를 구매할 수 있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입장한 티르타 강가는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 아기자기함과 아름다운 자연의 색 그리고 물속의 잉어를 보다 보니, 발리의 다채로운 매력이 한층 더 부각되는 듯했다. 약간 흐린 날이라 그런지 관광객으로 북적북적 거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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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만든 장식들과 돌계단 그리고 푸르른 나무와 잎사귀, 그리고 발리 특유의 꽃 색갈이 한 곳에 어우러져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그레이라는 무채색의 돌과 자연의 스펙트럼을 머금은 식물들이 한 곳에 모여 궁전을 장식하고, 가든을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각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냥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정말 특별하고 이국적이고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과거로 돌아가 왕족들의 화려함과 여유를 만끽하는 삶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유럽이나 중동 혹은 인도처럼 아주 화려한 장식들로 위압감과 신성함을 동시에 주는 느낌이 아닌, 자연의 자연스러움과 아침 이슬 내려앉은 돌의 축축한 분위기가 한편으론 기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트리티 강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궁전에 위치한 수영장에서 산에서 흘러나온 물(한국 식으로는 계곡 물이겠죠?)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남편이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믿지 않았다. 수영장에 아무도 없었다. 날도 그렇게 덥지도 않았고, 이런 공간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특히, 말 그대로 물질에 환장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당 한화로 2천 원을 내고 나면, 옆의 화장실과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을 할 수 있다. 나는 아침부터 옷 속에 수영복을 입고 왔기에 그대로 옷만 벗고 물에 입수했다. 물은 꽤 차가웠고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깊고 어떤 부분은 깊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물에 들어오지 않았고, 생각보다 넓은 수영장에서 다시 한번 두려움이 느껴졌다. 사실 수영장 두 곳 중에 한 곳은 잉여와 물고 가기 헤엄치고 있었다. 그냥 무서웠다. 아무래도 바로 옆에 사원과 산이다 보니 그냥 혼자 지레 겁먹고 아주 소심한 헤엄을 한 시간 정도 치기 시작하자 조금씩 비가 내렸다. 그래도 언제 이런 이국적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보겠나 싶어 계속해서 소심하게 수영을 했다. 아직도 아쉬운 것은 더 자유롭게 수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계속 놀다 보니 추위를 느껴 슬슬 정리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하자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은 다이빙까지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억울했다. 비교적 점심시간 전 사람이 적을 때 들어온 것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없이 나 혼자 수영을 하려니 약간은 무서웠는데, 이렇게 떠나려고 하니 사람들이 몰려들고 나보다 재밌게 노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소심하게 수영을 하다 돌계단에 무릎이 찍혀 피가 나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춥고 배고팠다.


    나는 물을 매우 좋아한다. 물 마시는 것도, 샤워하는 것도, 계곡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발을 넣고 책을 읽는 것도, 꽁꽁 얼은 겨울의 계곡도, 그리고 무더운 여름날 반짝이는 여름의 해변가와 쓸쓸하기 짝이 없는 겨울의 한적한 바다도 사랑한다. 그렇기에, 이국적인 산 옆의 수영장에서 조금이나마 헤엄칠 수 있던 건 앞으로 두고두고 그리울 기억이 될 것 같다.


    혹시, 트리티 강가를 방문하실 분들은 꼭! 수영장을 챙기시고 큰 수건도 챙겨가셔서 수영을 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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