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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May 28. 2022

양 옆으로 찢어진 동양인의 예쁜 눈?

근무 한 달째, 인종 비하를 당하다. 

미국에 살다 보면 인종 문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피부로 느낀다. 회사에 입사할 때 서류에 자신을 어떤 인종으로 분류하는지도 체크한다. 내가 입사하게 된 회사도 글로벌 기업으로 여러 인종의 화합을 추구하는 캠페인도 하는 패션 회사인지라 8명 되는 매니저팀 안에는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계의 비교적 균등한 분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입사하고 보니 유일한 아시아계 여성 매니저가 되었다. 


전체 직원의 수는 대략 150명 정도로, 층당 많게는 12명 적게는 5명 정도로 세 개의 층에 나눠 하루 4 교대 정도로 운영이 되었다. 전체 직원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55% 정도이고, 25%는 히스패닉, 나머지 20%를 백인과 아시아계 직원들이 차지했다. 


8명의 매니저는 각각 자신이 담당하는 직원이 15에서 20명 정도 되었는데, 매니저 업무 중 직원의 업무 학습/발달, 멘토링 등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흡사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입사를 하고 첫 난관은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 나름 사람 이름 잘 외운다고 생각했던 나는 150명이나 되는 사람의 이름을 얼굴과 매치하여 외우려니 죽을 맛이었다. 거기에 아프리카 공주 이름이라던지 특정 외국어 이름의 철자를 그대로 영문식으로 가져온 생소한 이름들을 어떻게 발음할지 몰라 멘붕이었다. 


머뭇머뭇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새로 온 매니저를 반가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뉴욕 특유의 분위기인 것인지, 유독 노동량이 힘들기로 소문난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까칠한 반응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근무 지시를 내릴 때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옮긴다던지 하는 식으로 텃세 아닌 텃세를 부렸다. 


정신적으로 힘들 법도 한데, 사실 그런 직원들 반응에 상처받기엔 다른 신경 쓸 것들이 너무 많아 마음에 담아둘 시간도 없었다. 입사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퇴사를 생각할 만큼 빡샌 노동량에 나는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온 기력을 다했고,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되어 잠을 자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입사 후 한 달의 트레이닝이 끝나고, 실무를 시작하기 시작한 첫째 주 즈음되었을 때의 일이다. 


직원 한 명이 화장실에서 주웠다며 핸드폰 하나를 들고 왔다. 어딜 가나 왁자지껄한 곳에서 정신이 없던 나는 받아 든 핸드폰을 매니저 사무실에 넣어놓고 매장으로 나왔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을 때, 긴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목에 걸린 빨간 줄로 직원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새로 오신 동양인 매니저인가요?(are you the new Asian manager?)" 라며 강한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물었다. (후에 알게 되지만 그녀는 브라질 출신이었다.)


그 질문과 동시에 그녀는 눈을 옆으로 찢어 보이는 제스처를 했다. 

"화장실에서 누가 주운 핸드폰, 그거 제 거거든요."


분실된 핸드폰을 찾으러 온 직원 A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인종 비하가 담긴 제스처를 했다. 미국 생활 6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딱히 인종 차별이나 비하를 당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던 지라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랐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공격이었다. 


주변에 손님도 많이 있었던지라 나는 그녀를 데리고 매니저 사무실로 가 그녀가 잃어버린 핸드폰을 일단 건네주었다. 심장은 두근거리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흐르고 정신이 돌아오면서 그녀가 핸드폰을 들고 돌아서려 할 때쯤 갑자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곤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방금 한 행동... 절대 다시 하지 마. 동양인 비하하는 행동이야. 너무 무례해."


입사 후 줄곳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항상 소극적이고 조용한 줄만 알았던 나를 사람들은 쳐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 살짝 당황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너 눈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건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그녀는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한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인사 담당 매니저에게 알렸다면 충분히 해고 사유가 될 만한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물론, 그 제스처 하나로 해고당한다는 것이 좀 심한 처사이기도 싶었지만, 일을 크게 만들어서 사건의 심각성을 좀 깨우쳐 줄걸 하는 후회는 남았다. 


재밌게도(?) 그녀는 훗날 내 팀으로 배정이 되었다. 이후, 매장 내에서 그녀는 그 사건 때문에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좋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단지 나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해서라기 보다는 그녀는 일을 정말 못했고, 태도 또한 좋지 않았다. 


잦은 지각은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이 이미 그녀의 업무 태도에 대해 불평을 했기 때문이다. 쉬운 것만 하려고 하고, 팀워크 따위는 없으며, 항상 피해 의식에 휩싸였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1년 반 동안 팀 내 골치 덩어리로 남았다. 평가 시즌에도 일대일로 앉아 논리적인 대화를 시도하며 혹시나 그녀가 깨닫고 변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이 통할리는 없었다. 잘라 낼 수 없는 썩은 이파리 같았다. 


평생 해고할 수 없었을 것 같았던 그녀를 해고할 수 있었던 건, 매장 내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이었다.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손님이 지갑을 분실하였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피팅룸으로 돌아가 직원에게 분실된 지갑이 없었느냐를 물었지만 직원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눈치챘겠지만 그 시각 피팅룸을 담담하던 직원은 바로 직원 A였다. 이후, 매장 내 경호팀이 감시 카메라를 모두 확인한 결과, 그녀가 피팅룸에서 나와 매장 뒤쪽 옷 사이에 뭔가를 숨겨 넣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며칠 뒤 주인 없는 텅텅 빈 지갑이 발견되었다. 


나중에 그녀를 따로 불러 사건의 정황을 알리고 추궁하자 그녀는 눈물을 보이며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였지만 감시 카메라를 증거로 내밀자 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며칠간 휴가를 보내고 나온 나는 그녀가 해고되었다는 통보를 들었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썩은 이 하나가 뽑힌듯한 후련함이랄까. 한편으로는 여기서 일하지 않았다면 상대할 일이 없는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한 다는 사실이 뭔가 착잡함을 남기기도 했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굳이 내가 그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골치 아픈 일이 하나 해결되었다고 모든 게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했지만 나는 방법을 몰랐다. 당장 그만 두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니 결국 다시 제자리였다. 마음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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