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같이 밥을 먹는 동료와의 점심시간, 그녀는 앞에 앉아 축 처진 어깨와 생기 없는 얼굴로 겨우 손만 움직이며 밥을 입에 넣고 있었다. 평소 재잘재잘 수다스럽고 에너지가 넘치던 직원이 정 반대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큰 아들이 군대에 간 것이다. 그녀는 툭 건들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한 표정과 시종일관 말이 없는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지만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과 출산을 하여 아들이 벌써 스무 살이다. 어린 나이에 엄마란 이름표를 달고, 키우는 동안 대부분을 주말부부를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아들은 듬직한 남편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유독 어른스럽고 모범적인 아들에게 그녀는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진로를 바꾸더니 수능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다. 들어도 잘 모르는 특수부대 같은 곳인데, 여러 번의 시험을 통과해서 합격했고, 매일 보던 아들은 순식간에 연락도 잘 닿지 않는 강원도로 떠나버렸다.
아들을 군대 보낸 엄마의 입장은 내게 생소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을 키우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다가 '군대'란 단어가 불쑥 나타나자 공감과 위로를 건네기 어려웠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그녀는 아들이 보행기 끌던 시절의 추억을 갑자기 꺼내는가 하면,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진 기억까지 생생하다고 얘기했다. 지난 20년간 아들을 키워 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게다가 군입대는 대학교 입학 후로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갑작스러운 독립을 맞이하면서 아직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엄마로서의 20년, 아들을 키운 20년을 돌아본 그녀가 꺼낸 소감이 흥미로웠다.
- 선생님, 우리 아이는 태양이었어.
- 오~ 태양이요?
- 응. 태양처럼 그냥 그 모습 그대로였던 거야. 그런데 햇살을 비추면 예뻐하고 좋아하고, 먹구름이 가려지면 짜증 내고 혼내고 미워했던 것 같아. 날씨에 따라 내가 변덕을 부린 거였어. 어떤 모습이건 아이는 태양처럼 그 존재 자체가 변치 않는 그냥 태양으로서 있었던 건데.
- 와... 정말 맞는 말이네요!
20년 차 엄마가 들려준 양육의 깨달음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항상 바르고 예쁘고 좋은 모습으로만 인간이 존재할 수 없듯이, 아이도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 형태에 따라 엄마가 웃고 울고 짜증 내고 화냈던 것이다. 아이는 변하지 않는 본연의 모습으로 언제나 태양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미운 행동을 하는 그 순간조차도 아이는 늘 존귀한 존재였는데 내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울그락불그락했는지도 모른다. 육아를 하며 감정이 들락날락, 일희일비하며 말 안 듣는다고 아이보다 내가 더 찡찡대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이가 말 잘 듣고 예쁜 행동을 할 때만 좋아할 게 아니라, 그 어떤 모습이어도 아이를 품어주고 온전히 사랑으로 감싸줘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나 또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아이가 애교 부리고 웃는 예쁜 모습은 부모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예뻐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가 투정 부리고 떼쓰는 미운 행동을 할 때는 어떤가?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인상을 찌푸리고 싫어할 것이다. 그러니 그 행동에 흔들리지 않고 훈육으로 이끌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부모가 '나 역시 싫어!'하고 등을 돌리고 똑같이 싫은 감정으로만 받아친다면, 아이는 부정의 모습을 수용받을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그 또한 포용할 줄 알고, 올바르게 지도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비록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를지라도 말이다.
아이의 존재감 자체를 사랑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달콤하게 아이에게 말을 건네본다.
- 엄마는 네가 웃어도 사랑해
- 네가 짜증 내고 울어도 사랑해
- 네가 심술부리고 투정 부려도 사랑해
- 네가 양치 안 해도 사랑해
-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너를 사랑해
- 내가 엉엉 울어도 사랑해?
- 응! 당연하지. 네가 엉엉엉 울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엄마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항상 너를 사랑해~!!
- 우와~!! 히히~~ 나도 사랑해~~
태양처럼 빛나는 너로 인해 나의 오늘도 눈부시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