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Jun 04. 2024

엄마, 내 꿈은 말이야~~

6살 아이의 반전 꿈

5살에 처음으로 들은 딸의 꿈은 발레리나였다.


경찰차를 좋아하는 조카에게 경찰이 꿈이냐고 어른들이 관심을 주자, 딸은 내게 쪼르르 달려와 앙증맞은 손을 귀에 갖다 대며 귓속말을 한다



- 엄마, 내 꿈은 발레리나가 되는 거야^^



발레학원 3달 다니고 힘들다고 제발 안 가겠다 해서 끊었는데 꿈이 발레리나였다니. 연습과 학원은 거부했지만 처음으로 수줍게 밝힌 그녀의 꿈이었다.






6살이 된 그녀, 어느 날 갑자기 전보다 우렁차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엄마, 내 꿈은... 엄마가 되는 거야!!



- 응?? 엄마가 되는 게 꿈이야???

- 응!!!



딸의 고백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지금의 나처럼 엄마가 되겠다고? 그게 정말 너의 원대한 꿈이라고??? 엄마가 뭐길래 엄마가 되려 하는 걸까? 이유가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왜 엄마가 되고 싶은 거야^^??


- ~ 나도 엄마가 돼서 아빠 밥도 차려주고, 엄마처럼 요리도 잘할 거야. 엄마처럼 화장도 하고, 회사도 갈 거야. 그리고 어른 돼가지고 물건도 안 떨어뜨릴 거야. 청소도 하고, 차에 앞자리에도 탈 거야. 그리고 엄마처럼 예쁘게 옷도 입고 귀걸이도 고 차도 마실 거야.




아이의 구체적 설명과 다부진 계획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아이가 엄마란 꿈을 이뤄하고 싶은 일들은 내가 그저 매일 하고 있는 일상이었다.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별 뜻 없이 행동하던 일들마저도 어린이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꿈이 되고 해 보고 싶은 일들로 비쳤다.




후다닥,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하는 화장

주부의 숙명, 매일 가족들 위해 요리하기

옷 고를 시간 없고 있는 옷 적당히 돌려 입기

노는 게 좋지만 직장인이니까 출근하기

남편이 차려주는 밥이 더 좋지만

안 차려주니까 내가 계속 맛있는 밥 차려주기

청소는 바쁘니까 양심에 찔리기 전에 가끔 하기

차 마시는 건 그냥 평범한 일상 중 하나




사실은 이런 일과였을텐데 아이가 바라보는 엄마의  라이프는 달랐나 보다. 엄마가 꿈이 될 수 있을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과 하루들이 누군가에게 '꿈'이 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일상을 살아내던 나의 워킹맘 라이프에 큰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마치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엄마로서의 내가 아이의 한마디로 달콤한 꽃이 되었다.





내겐 소소하게 루틴처럼 매일 가족을 위해 하던 살림과 노력들이, 그리고 평범하게 느꼈던 나의 일상들이, 아이에게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 매일이 아름답게 빛나는 날들이었다.





그저 나 자신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엄마라는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으면서 동시에 회사에서는 멋지게 커리어를 쌓고, 집에서는 가정에 헌신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지 않았나 보다. 워킹맘으로서 가치를 인정하고 돌봐주지 않고 그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렸나 보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 어쩌면 위대한 일이었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있었나 보다.





아이가 다시 눈을 뜨게 해 줬다. 나 자신이 소중하다고, 나의 매일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일깨워졌다. 어른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을 의미 있게 바라보게 해 줬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정을 위해 노력했던 일들이 헛되지 않게 해 줬다. 잘 살아왔다고 토닥이게 해 줬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더 멋진 엄마이자 어른이 되고 싶게 해 주었다. 





나는 너의 아름다운 꿈이 되어 오늘도 하게 비춰주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1등 하고 싶은 유치원생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