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Jul 25. 2021

여보세요? 나 밥 먹었어요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전화받기가 무섭게 두 돌 아이는 옆에서 방방 뛰며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전화 왔네! 할머니인가?"

"어머!!! 그걸 어떻게 알았어?"


처음엔 전화가 걸려오면 누구에게 온 전화인지 용케 맞추는 아이가 너무 신기했다. 천재 같기도 했다.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텐데 어쩜 매번 맞출 수 있는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깨달았다. 내 전화벨을 울리는 사람은 나의 엄마, 아니면 동생, 그 둘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육아하며 폭포수 같던 대인관계가 '쪼르르' 정수기 물줄기 정도로 줄어든 것은 당사자인 나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이는 후보지가 2개뿐임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종종 아기랑 직접 통화한다. 둘의 통화는 주로 할머니가 질문하면 아이는 조그맣게 대답하는 수준이다. 할머니는 아이 호칭을 반복해서 부르거나 애정표현을 한다. 그러면 "할머니, 보고 싶어요"라고 엄마가 시킨 문장을 어쩌다 한 번 따라 말하는 날도 있다. 갑자기 수화기를 던져 버리고 다른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다른 놀잇감을 찾아 나서는 날엔 주인 없는 전화기에 할머니 목소리만 공중 빙빙 떠돌기도 한. 별로 주고받은 대화는 없어 보이지만 손주와 할머니의 이색적인 통화는 이어지다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보이지 않아도 손도 열심히 흔들며 통화를 마무리한다.


몇 번의 통화를 주고받던 어느 날, 아이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자마자 말한다.


여보세요?? 나 밥 먹었어



수화기를 들자마자 아이는 자동응답기처럼 밥을 먹었다고 대뜸 말한다. 순간 당황한 할머니지만 웃으며 얘기한다.

- 오구오구~ 우리 아기 밥 잘 먹었어요~~?


전화를 받으면 언제나 가장 먼저 들려오는 할머니의 질문은 "밥 먹었어??" 였던 것이다. '여보세요'와 '밥 먹었냐'는 일종의 세트 같은 것이었다. 이에 아이는 다음 말을 듣기 전에 미리 선수 치며 응답한 것이다. 아이의 밥 잘 먹었단 소리에 할머니는 안심한 듯 편안한 대화를 이어가셨다.




아이의 모습에서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습관 같은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밥'을 잘 먹었는지 안부를 묻곤 한다.


친구와 연락할 때 식사시간 전후면 맛있는 식사를 하라고 인사하거나 맛있는 식사를 했는지 물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연인이라면 식사시간마다 꼬박꼬박 '밥 먹었어?'를 묻거나 이를 빌미로 연락을 하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나의 가장 주요한 과제는 남편과 식구들의 끼니를 잘 챙기는 일이 되었다. 어떤 집안일보다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비즈니스 관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후 시간대에 연락한다면 '식사는 하셨어요?' 하며 자연스럽게 쿠션 언어로 대화를 시작하기 편하다. 그렇다고 밥을 먹었는지가 꼭 궁금한 것은 아니다. 어떤 메뉴와 반찬을 먹었는지 시시콜콜 듣고 싶은 것도 아니다. 딱히 이유는 없다.


내 부모님은 전화하시면 항상 밥을 잘 먹었는지를  인사말로 확인하신다. 그게 식사시간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오후 4시라면 점심을, 오후 8시라면 저녁을 잘 먹었는지 확인하신다. 내가 잘 먹었다고 하면 아이와 남편의 여부까지 확인하신다. 모두가 밥을 먹었다고 해야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만일 사소한 이유로라도 밥을 제 때 먹지 않았을 경우엔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는 것을 놓칠 만큼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삼시 세 끼를 잘 먹는 게 잘 사는 것이고 부모님 걱정 끼쳐드리지 않는 효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일이 있으면 식욕부터 떨어진 것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위'에서 소화할 에너지가 없을 것이고 이는 호르몬 작용에 의해 식욕감소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그런 때라면 억지로 먹는 것이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내가 식욕을 잃지 않고 하루 세끼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다면 내 인생이 순탄하게 잘 흘러간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바라보니 무심코 먹은 한 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나의 밥상을 함께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화려한 음식이 주는 미각의 충족보다, 소박한 집밥에 행복함이 묻어나는 식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