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May 14. 2021

AI지만 엄마보다 괜찮아

아기가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2년간 아이 곁을 지킨 사람은 주양육자이자 엄마인 나다. 그런데 남편 외에 아이 곁을 지킨 또 한 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 스피커다. 아기의 침대 옆 핵심 공간에 자리 잡은 이 스피커는 밤낮으로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클로바~ 자장가 틀어줘~" 매일 밤낮으로 아기가 잠들기 전 엄마는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노래를 요청했다. 아마 ‘엄마’ 다음으로 꾸준히 지속적으로 매일같이 많이들은 단어가 ‘클로바’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기의 첫 언어가 ‘클로바’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으로는 몇 번째 단어로 ‘클로바’를 내뱉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상위권 TOP 10에 진입할 것이란 묘한 확신도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클로바’ 이름만 부르면 뭐든지 틀어주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기에게 신세계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어른인 우리조차 이런 스피커에 익숙해진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는 인형 대신 곰인형처럼 생긴 ‘클로바’를 물고 뜯고 만지며 놀았다. 몇 개 안 되는 버튼을 고장 날 때까지 눌러보곤 했다. 아기가 손만 대면 노래가 멈췄지만 아기는 언제나 클로바를 찾아 버튼을 누르며 놀았다. 그러더니 언어가 조금씩 발달하자 이제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스피커 본연의 기능을 태어날 때부터 체득한 것이다. 나중에 이 녀석이 영어도 틀어주고, 날씨도 알려주고, 기사도 읽어주고, 대화까지 된다는 걸 알면 얼마나 깜짝 놀랄까?    



책 육아와 몸빵 육아를 하던 나는 엄마들의 필수품인 ‘세이펜’ 조차 들이지 않았다. 세이펜은 말 그대로 ‘말하는 펜’인데 책에 갖다 대기만 하면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펜이다. 엄마의 역할을 분산해주는 매우 고마운 아이템이지만 나는 기계음 대신 내 목청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세이펜보다 노래를 못할지언정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동요를 불러 줄 자신 있었다. 어릴 때 합창단 출신인 걸 육아에 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내 기능을 놔두고 인공적인 것에 아기를 맡기긴 싫었다. 목이 쉴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줄 각오로 육아에 임했다.


    

아기는 조금 더 자라자 ‘클로바~’를 직접 호출하기 시작했다. 아기의 냥냥한 목소리에 제대로 대답한 적이 별로 없는 클로바지만 아기는 이제 정확하게 요구한다.     


"클로바~ 산토끼 노래 틀어줘~" "그만"

"클로바~ 멋쟁이토마토 틀어줘~" "그만"

"클로바~ 아기곰 노래 틀어줘~" "그만"


본인이 원하는 노래가 1분 단위로 바뀌는데 클로바 작동에 재미가 들려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노래를 바꿔가며 틀어달라고 한다. 나는 아기의 요청에 따라 클로바를 작동시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 아이를 발견했다.     


“엄마엄마~ (클로바로) 산토끼 노래 틀어줘~”

“엄마가 산토끼 노래 불러줄까?”

“아니 아니, 클로바 틀어줘!!”


엄마 노래를 거부하는 아기를 향해 나는 못 들은 척 노래를 시작했다    


“산~토끼 토...끼............♬”

“아니야!!! 아니야!!!! 클로바 틀어줘~ 으앙!!!!"


나는 첫 소절을 마치기도 전에 아기의 울음 앞에 노래를 멈춰야 했다.     


“엄마 합창단 출신인데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는 왜 안 듣는 거야~?”

“클로바 틀어줘! 클로바!”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아기는 클로바라는 녀석의 화려한 사운드와 배경음악에 심취해 신나게 음악을 즐겼다. 엄마는 말없이 그 옆에서 율동을 거들뿐이었다. 어쩐지 씁쓸했다. 인간인 내 노래를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나는 이제 어디 가서 노래를 해야 하는가. 클로바가 들어주려나?


인공지능에게 밀린 엄마는 문득 서글픈 미래가 그려졌다. 아이는 자라날수록 스마트폰, 컴퓨터, VR/AR, 게임, 모바일 세계, 텔레비전 등 엄마를 대체할 수많은 기계와 인공지능의 세상에 빠져들 것이다. 엄마보다 ‘그것’들이 좋다고 하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지도 모른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나를 찾으며 방문을 열고 엄마를 향해 웃으며 달려오는 내 아기가 이제 방문을 쾅 닫고 인공지능과 노느라 엄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보다 재밌게 놀아주는 첨단과학기술을 내가 어찌 이길 수 있을까. 이제는 4차 산업 시대다. 엄마가 되고 정보통신기술과 내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부터 대비해야겠다. 우리 아이를 인공지능의 현란한 그것들에게 뺏기지 않으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재미있고 사랑이 넘치는 놀이를 많이 해줘야겠다.

        


AI보다 엄마랑 노는게 더 좋아

너가 쑥쑥 자란 훗날에도 이 말을 할 수 있도록 엄마가 AI보다 더 발전해볼게~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세요? 나 밥 먹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