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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May 11. 2021

아기가 왕추가 먹고 싶대


여보~ 바이라민 챙겨 먹었어???



우리 부부는 아기 앞에서 은어를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 흡사 007 작전과도 같은 것인데 그 발단은 이랬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아기가 매일 아침 먹는 바나나가 똑 떨어져서 얘기했다.

"바나나가 다 떨어졌네~ 마트에서 바나나 좀 사자"

돌이 갓 지난 아기는 좋아하는 "바나나"란 단어가 나오자 그때부터 바나나를 외치며 있는 힘껏 울어댔다. 눈 앞에 당장 바나나를 대령할 때까지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겨우 도착한 마트에서 재빨리 바나나를 사 입에 넣어주고 나서야 아기는 평온을 되찾았다. 생존본능이 있는 인간의 DNA가 발달해서 그런지 먹는 것에 관해서만큼은 그것을 사수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우렁차게 울며 쟁취하곤 했다.


그 후로 우리는 바나나란 단어를 함부로 내뱉지 못하고 B-A-N-A-N-A라고 표현을 바꿨다.




어느 날 피곤해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요즘 힘들어 보여~ 비타민 챙겨 먹었어??"


비타민 줘~~ 비타민 줘~~ 비타민! 으앙!!!!


아기는 비타민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발을 구르며 울어다. 새콤달콤 사탕같이 맛있는 비타민이란 신세계를 접한 뒤론 매일 한 번에 5개씩 먹으며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되었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은데 향료나 색소가 들어간 비타민을 자제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잘 놀고 있던 아기에게 실수로 '비타민'이란 단어를 흘리는 순간 집안은 난리가 난다. 우리는 비타민의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 '바이라민'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음식 단어를 영어로 바꾸거나 유사어를 쓰거나 "원숭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이 수수께끼 풀 듯 설명을 하는 등 아기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대체 용어들을 써가며 우리만의 은어를 만들어 가던 어느 날,

 

평화롭던 저녁, 주방에서 칭얼칭얼 우는 아기를 남편이 겨우 달래서 방으로 데려와 재울 준비를 했다.


"아기가 좀 전에 왜 운 거야??"


응~ 왕추가 먹고 싶다고 울었어



추???? 왕추가 뭐지?????

순간 처음 듣는 단어에 황했다.

"왕추라니?? 그게 뭔데??"


왕추 있잖아~~ 왕추~~~



남편은 아기가 또 그 단어를 들으면 달라고 울 것이기에 차마 얘기를 못했다. 그 순간 정답을 눈치챈 나는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남편의 센스와 퀴즈를 맞췄다는 기쁨이 교차하는 웃음이었다.


대추구나 대추!!! ㅎㅎㅎ


차마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외치며 혼자 박수를 치며 웃었다. 정답을 맞혔다는 짜릿함이 밀려드는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는 간혹 007 비밀 언어 작전을 펼치지만 언제나 잘 먹고 잘 웃고 씩씩하게 잘 자라는 우리 아기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란다~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먹을 수 있게 열심히 돈 벌어서 다 사줄게!!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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