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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Dec 15. 2021

시아버지가 내 브런치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소통하는 법


축복 속에 아이를 낳고 동시에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앞으로 100일간 양가 부모님에게 매일 아기 사진을 보내드려야지



그리고 아무리 육아가 힘들고 지쳐도 꼭 잊지 않고 100일간 어김없이 아기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 드렸다. 100일간의 스스로의 목표를 채운 후에는 며칠에 한 번꼴로 조금 여유를 두기 시작했지만 3년 차인 지금까지도 부지런히 사진을 전송하고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손주를 본 어른에겐 아기 사진을 보는 게 일상의 매우 큰 낙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부자 보고서'에 따라도 100억대 이상 부자들의 가장 큰 행복한 순간이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란다. 돈이 얼마가 있건 결국 행복을 얻는 본질은 비슷한가 보다.



브런치에서 육아 에세이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순간들, 그때 겪은 느낌들,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돌아서면 잊힐 것이기에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사진이 겉모습만 기록하는 것이라면, 글은 그 순간에 함께 있지 않은 사람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 만드는 '현재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언제 누가 읽어도 그 상황 속에 생동감 있게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게 육아의 참 재미(?)를 조금씩 기록하고 그중 몇 개의 글을 가족들에게 전송했다. 전송하고 보니 사진을 보낼 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깊은 감정의 교감이 피드백으로 왔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이나 육아 일상들이 '장면'으로 전달되면서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글 한편으로 모든 느낌 전달되었고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사진을 매번 보내드리던 시아버지도 내 글을 전송했다. 단편적인 사진과 영상이 아닌 '스토리'를 보낸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이가 어떻게 잘 자라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하고 세밀한 우리의 의 모습이 링크를 타고 전송되었다. 시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런데 얼마 후 시아버지가 시 한 편을 화답으로 보내셨다. 식들을 키우며 성실히 살아온 한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시 한 편이었다.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긴 세월 묵묵히 일을 하셨을지, 표현하진 못하셔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감이 단 몇 줄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본인을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힘들어도 '껄껄'웃고 마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을 글에 담아내셨다.


시를 받은 나는 깜짝 선물을 받은 것 같이 기뻤다. 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다. 서로를 잘 모른 채 30년 넘은 세월을 살아온 우리가 가족이란 울타리로 묶인 지 고작 몇 년, 그 긴 세월을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소개팅이라면 모를까 지나 온 세월을 알아가겠다고 시부모님이랑 장장 몇 시간씩 대화하는 이는 또 얼마나 있을까?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관계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 사이를 '글'이 맺어주었다. 글로 소통하니 서로가 살아온 세월, 내면의 깊은 생각까지 고스란히 주고받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었다. 마주 앉아 얼굴 붉히거나 부끄러울 일도 없다. 그저 혼자 담담히 써 내려가고 글을 보내주면 끝이다.



나는 시아버지에게 육아 에세이를 종종 보내드렸고 아버지는 가끔씩 작문하신 시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술보 마마의 생일

여느 때처럼 오늘도 술술 넘어가는
술잔을 경계한다.
사십 년 같이 산 내 아내 생일인데....

(중략)

할머니 생신 케이크 쬐 만한 촛불들
서로 입 바람 불어 겨우 진화하니
소방서 공무원 의기처럼
축하한다고 파티장이 소란이구나

이렇게 유치하게 깔깔깔 ~~~!
웃는  지금이  
축복받은 우리 부부의 삶이라고
조심스레 어깨에 힘주어 본다.

- 시아버지의 시 중에서

시어머니 생신날, 자식들이 차린 생신상에 모처럼 모여 앉아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의 시 한 편이 '동'하고 배달되었다. 우리가 글로 소통하지 않았다면 "고맙다. 애썼다" 정도의 말만 듣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글에는 아버지가 느끼신 행복함이 세련된 기법으로 고스란히 담겨 표현되었다. 글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있게 감정을 나누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며느리~ 나 브런치 가입했어
브런치 구독 눌렀다~!



얼마 전 시아버지께서 내 브런치 구독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앗!!!!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해 살짝 당황했다. 아버지도 엄연한 자유권리가 있는데 왜 내가 보내드린 글만 수동적으로 읽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내 구독자가 됨으로써 그는 나의 퇴사기, 이직기를 비롯 모든 글을 읽으셨고 앞으로 작성될 글을 통해 나의 지나 온 세월을 낱낱이 알게 되실 것이다. 마치 선생님께 일기를 제출한 것 같은 쑥스러움도 시 들었지만 그는 내가 감사해야 할 구독자 반열에 오르셨다. 이로써 우리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뿐 아니라 작가와 독자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해 얻은 성과가 있다면, 그건 시아버지와 브런치로 소통하게 된 것이 아닐까? 글쓰기가 또 어떤 마법을 부릴지 모르니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겠다. 시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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