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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Jul 18. 2022

자식 자랑은 어쩔 수 없나 봐

자식 자랑을 듣는 자식의 입장

1년 만이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오붓이 외식하는 일이 1년 만에 가능할 줄은 몰랐다. 굳게 걸어 닫았던 현관문 밖으로 한 발짝 나왔다. 우리는 늦은 저녁 번개로 만나 시아버지의 최근 단골 고깃집으로 갔다. 전화 한 통에 30분이면 만나서 식사할 수 있는 일이 어려워 1년이 훅 지나갔다. 외식은 꿈도 꾸지 않았 시기가 지나고 우리는 너무나 오랜만의 외출을 마치 매일 그랬던 것 마냥 '밥이나 같이 먹자~나올래?' 정도의 말 한마디로 바깥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시아버지의 단골 고깃집으로 초대었다. 새로운 사람과 인사 나누는 일조차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 속에 없었다. 그런 우리를 시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호탕한 미소와 낭랑한 목소리로 고깃집 사장님께 소개했다.


- 이 쪽은 우리 아이야! 무슨 무슨 일을 하고, 000 TV  방송에도 나왔어~


시아버지는 새까맣게 잊고 있던 남편의 방송 출연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지? 결혼 전 남편은 회사를 소개하는 일로 방송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바른 자세로 또랑또랑 하는데 간은 긴장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다. 표성을 띄고 방송에 나갔으니 대단한 일 중에 하나임이 맞지만 365일 출근하는 일상 중 겪는 하나의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내 기억에서 잊혔는데 시아버지는 어느 날 불쑥 자식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 일을 가장 먼저 꺼내셨다. 마치 어제 일처럼 말이다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아들의 방송 출연이 마치 어제 일과도 같이 생생하게 남아있음을 알아차렸다. 자랑스러운 자식이라며 부모가 느꼈을 '뿌듯함'이 어느 평범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불쑥 표현되었다. 어버이 눈에 비친 아들은 얼마나 기특하고 바르고 대견했을까.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서가 아니라 매일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사례를 통하면 보다 빠른 수긍을 이끌어 낼 수 있으니 적절히 용되는 것이다. 자식이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부모 입장에서는 '훌륭하게 키운 내 자식'다. 매일 자랑해도 질리지 않는 것, 매일 생각해도 흐뭇하고 기특한 것,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한편이 뿌듯해지는 것, 바로 자식을 떠올릴 때의 마음이 아닐까.






아버지는 내가 대학생 때까지 표현에 인색하신 분이었다. 종종 다정하게 여러 주제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 더 익숙한 보통의 가장이셨다. 여기에는 사랑한다는 표현, 칭찬 등도 포함이었다. 초등학교 때 한 번 올백을 맞아 이웃들을 초대해 잔치를 한 적은 있다. 기쁨과 들뜬 분위기의 연속이었던 게 느낌으로 진하게 남아있다. 아버지는 직접적 표현은 아끼셨지만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건 뭐든지 지원해 주시겠다며 늘 든든한 응원을 해주셨다. 돌이켜보면 이 메시지의 힘이 상당히 컸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생 때 공부를 안 하고 놀던 내가 큰 결심을 하고 뒤늦게 아버지께 공표를 했다.


- 아빠, 저 토익 공부해서 900점 맞아보려고요!

나는 오랜만에 공부 결심을 해서 당연히 격려와 응원, 긍정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알았다. 내 결심에 칭찬도 해주실 줄 알았다.

- 그래! 나는 너를 믿는다. 넌 할 수 있어!

이런 대답을 기대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대답.


-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900점을 맞겠다고 말만 할게 아니라 결과로써 보여줘야 해. 세상은 과정을 인정해주지 않아. 네가 900점을 맞은 결과로써 세상에 증명해야 해!!!


혹독한 사회생활에서 노력과 과정보다 '결과'와 '성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아버지의 현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라나는 아이에겐 '과정'이 더 중요하다던데 사회는 다른 것 같았다. 사회는 칭찬에 더욱 인색한 곳이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것이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온 에너지를 쏟아 4개월 만에 토익 900점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제야 아버지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무렵이었을까. 대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아버지와 '인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 정말요? 저는 아빠가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아버지는 더욱 깜짝 놀라셨고 약간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 난 단 하루도 널 자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냐?

- 저한테 말씀해 주신적이 없잖아요

-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는 거냐? 당연한 거지!!!!

- 표현을 해주셔야 제가 알죠. 말씀을 안 해주시면 어떻게 알아요~~~



이 우연한 대화를 계기로 나는 표현의 중요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아주 작더라도 사랑 표현과 자식에 대해 느낀 점(예를 들면 자부심)을 표현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10년 후, 우리 부녀의 모습은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을 앞에 앉혀 놓고 당사자에게 자식 자랑을 하시는 습관과 사랑 표현을 하는데 아주 익숙하신 분이 되어 계셨다.


가장 강력했던 메시지는 폰에 저장까지 해 두었다.

- 내 딸인 게 너무너무 자랑스럽다. 어떻게 이런 딸이 나왔을까! 너희들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자식 자랑을 직접 듣는 자식의 입장은 어떨까?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지 않다. 약간 민망할 때도 크게 사양하거나 거절하지 않는다. 어디 가서 이런 말을 들어보겠나! 내가 아무리 못나도 나를 자랑스럽게 봐주는 유일한 사람이 부모님인데 말이다. 자식이 어떠한 모습이든 사랑해주고 뒤에서 든든하게 사랑과 믿음으로 지켜봐 주는 사람이 부모님이다. 그 존재감과 사랑, 자식을 자랑스럽게 바라봐주는 마음은 듣는 자식이 살아갈 때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들

내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

작게 이룩해내는 것들부터  성취까지



내가 하는 날갯짓을 부모님은 흐뭇하게 바라보실 것을 생각하면 라는 사람이, 내 인생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조금 잘하는 능력도 더욱 많이 잘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힘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



부모에게는 이유가 없어도 자식이 최고다. 그리고 그 믿음과 사랑의 물을 받은 자식은 단단하게 뿌리내려 반짝반짝 빛나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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