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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Oct 24. 2021

20년이 지나면 할머니가 잊혀질 줄 알았다

손녀의 기억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까?


인간은 언젠가 소멸한다. 한 인간이 떠나고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남기고 간 흔적들로 우리는 그 사람을 기억한다. 그 흔적은 위대한 업적일 수도 있고, 책이나 사진과 같은 기록일 수도 있다. 위대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본인의 흔적을 세상 곳곳에 남기며, 사람들 마음에 이름 석자가 각인되게 함으로써 잊히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어떨까? 위대한 업적도 기록도 없는 가장 보통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여기 한 손녀가 있다. 손녀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럽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2학년의 어떤 기억도 없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부모님은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셨고 이웃집에 맡겨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자며 조금은 시끌벅적한 밤을 맞이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무겁고 두려운 나이였지만 파도처럼 덮치는 슬픔을 꺼내놓는 방법 또한 모르는 나이였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행동하기로 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웃으며 베개싸움을 했다. 뱅글뱅글 돌며 베개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내 알 수 없는 슬픔과 무서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깊고 깊은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던 걸까. 어떤 말과 어떤 행동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냥 평소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를 볼 수 없게 되었단 사실 말이다.




나 할머니 보고 싶어, 잉잉
나도 할머니 보고 싶어 엉엉엉


그로부터 15년 후, 화려한 홍대의 밤거리. 어느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을 걸친 손녀 두 명이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슬픔을 꺼내놓지 못했던 손녀는 사촌언니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 보따리를 한껏 꺼내놓더니 결국엔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녀도 나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커가며 남몰래 혼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너도 할머니 보고 싶어서 운 적 있어? 나도 그랬어!!

반가운 동지를 만난 듯,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할머니가 가장 예뻐했던 두 손녀가 할머니 이야기로 하나가 되었다. 나는 더 어릴 때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몇 개 없지만, 할머니 옆집에 살기도 했던 사촌언니는 할머니와 추억도 많고 기억도 많았다. 부러운 마음으로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를 떠올렸다.

출처.TANIAKOLINKO/SHUTTERSTOCK.COM
할머니, 할머니 생일인데 왜 할머니가 날 업어줘??

어릴 때 본인의 대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기하게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몇몇 조각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할머니는 항상 곱게 머리를 빗어 묶은 뒤 내 눈엔 참기름으로 보이는 기름을 머리에 바르셨다. 비녀를 꽂은 머리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늘 정갈하고 단정한 품행을 유지하셨다. 그날은 할머니 생신이라 온 가족이 모였는데, 할머니가 유독 예뻐했던 나를 등에 업으셨다. "이쁜 우리 강아지~ 할머니가 어줄게~~ 이리온~"

어둡고 선선한 밤, 달빛 아래 할머니 등에 업혀 넓은 마당 곳곳을 구경했다. 할머니는 허리를 숙이고 한가로이 마당을 거닐며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네셨다. 그런데 할머니 생일에 내가 선물을 해 드려야 하는데, 할머니가 날 업어준 게 난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할머니를 업어드리진 못하지만, 내가 업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 허리도 아플 텐데. 그래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웃으며 인자하게 말씀하셨다. 정확하진 않지만,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를 업어주는 게 기쁜 일이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품은 넉넉하고 포근했다.


어린 시절이지만 나는 분명한 단 하나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셨단 사실이다. 어려서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시기지만,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보여준 모든 행동은 남들에게선 받을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는 확연히 달랐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할머니'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다. 어린 나는 그 온전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꼈다. 할머니가 '내 새끼'라고 부르는 호칭부터 특별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칭찬해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시며 폭포수처럼 넘치는 온정을 베풀어 주셨다. 부모님은 훈육도 하시고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할머니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내 똥강아지가 원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해주실 태세였다. 언제나 한결같은 자세로 말이다. 할머니는 항상 내 편이었다.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해주실 것 같이, 커다랗고 푸른 산처럼 내 뒤에 계셨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다 안아주실 것 같은 하늘같이 넓은 마음으로 나를 품어주셨다. 그리고 그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과는 다른 느낌의 사랑이라는 것도 어린 나는 알았다.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지 25년이 흘렀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때 느낌 그대로 내 심장에 남아있다.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할머니의 사랑이 내 몸 일부가 되어 흐르고 있다. 가끔, 불쑥 올라와 따스함을 전해주고 간다. 손녀가 받았던 '할머니의 사랑'은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은 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의 사랑 덕분에 나 역시 따뜻한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내 새끼 울렸어?? 딸?? 너야?? 혼나야겠다!!
누가 우리 강아지를~ 누가~~ 아이고 내 새끼~~ 예쁜 내 새끼~~~


위는 우리 엄마, 아래는 시어머니가 내 딸이자 그녀의 손녀에게 하는 멘트다. 양가 할머니 댁에 가면 내 아이 이름은 들을 틈이 없다. '내 새끼' 아니면 '우리 강아지' 아니면 '오구 이쁜 것~' 이런 애칭들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진다. 두 돌이 되기 전, 아기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할머니 집에 가자'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이 또한 부모인 내가 줄 수 없는 '할머니만이 줄 수 있는' 고유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 중이겠지. 훗날 그 기억으로 굳건히 살아갈 아이를 기대해 본다. 할머니의 사랑이 아이의 마음속에서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방패가 되고, 나무가 되어 지켜줄 테지. 그리고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주실 테지.



모든 할머니들의 사랑이 척박한 땅에 뿌리내려 거름이 되고 흙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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