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Dec 09. 2022

놀이터에서 느낀 10가지 감정과 양육에 대한 다짐

아이가 태어나고 2년간은 발달 과업도 많을뿐더러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있다 보니 매일 변화가 느껴졌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아이 모습을 보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과정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 못했던 단어를 처음 내뱉거나, 어제는 못했던 손뼉 치기를 해내고, 하나씩 할 수 있는 단어와 행동들이 늘어갈 때마다 신기함과 기쁨을 느끼며 육아했다. 그러다 회사로 복직해 워킹맘이 되고, 아이도 조금씩 커가면서 이미 할 줄 아는 게 많아졌기에 나는 점점 세밀한 변화에 무뎌져 갔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하루의 연속인데 어느 순간 보면 아이의 신체, 행동, 언어들이 훌쩍 자라 있는 느낌이랄까.


아이와 오랜만에 놀이터에 간 날이었다. 평소 할머니와 하원하며 놀이터에서 종종 놀았지만 엄마 손잡고 갈 일은 별로 없었다. 집에 오면 밤이고, 주말에도 밀린 살림이나 나들이를 가다 보니 놀이터 방문이 낯설 만큼 오랜만이었다.


놀이터에는 작은 미끄럼틀과 큰 미끄럼틀이 있다. 얼마 전까지 아이는 작은 미끄럼틀에서 놀았다. 짧은 높이의 암벽 형태로 된 돌들을 잡고 올라가면 작은 미끄럼틀을 탈 수 있다. 혼자 암벽등반이 어려워 뒤에서 밀어 올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큰 미끄럼틀은 외나무다리 같은 길을 지난 뒤 양 옆이 뻥 뚫린 높은 곳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는 미션을 지나야 탈 수 있다. 내 키만큼 높은 다리에 양 옆이 뚫려 있으니 아이가 지나가기엔 아직 어리고 당연히 못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미끄럼틀을 타겠다는 아이가 당연한 듯이 큰 미끄럼틀을 타는 길로 향했다. 그리고 외나무다리를 성큼성큼 지나더니 높은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처음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절대 못 탈 줄 알았던 곳을 향해가는 거지? 위험한 것 아니야? 보기에도 불안한데 괜찮은 걸까? 아참, 그런데 내 손잡고 올라가던 아이가 내 도움 없이 저게 가능하다고?? 안 도와줘도 되는 걸까? 손 잡아줘야 할 것 같은데.


기쁨과 놀라움과 불안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내 도움 없이 어려워 보이는 난관을 뚫고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훌쩍 커버린 듯한 느낌에 대견하기도 했다가, 벌써 엄마의 손길 없이 독립적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가, 높은 곳을 지날 때는 심장이 콩닥콩닥 거리며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런 3단계의 감정이 아이가 미끄럼틀을 타는 횟수에 맞춰 무한 반복되었다. 다리를 건너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젓하게 커버린 아이의 뒷모습과 멀어져 가는 거리만큼 '엄마에게서 떠나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더 이상 손을 내밀게 아니라 그저 아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해 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높은 징검다리는 지나갈 때마다 내 심장이 널뛰기하듯 뛰었다. 말리고도 싶고, 아슬아슬하게 보이기도 하고, 혹시 다칠까 염려되는 마음에 불안감이 담긴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렇지만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나의 불안감이 아이에게 전달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다리에 바짝 붙어서 보호해주고 싶었지만 애써 태연한 듯 두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곤 떨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조심해~ 그렇지~ 잘한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가 무사히 다리를 다 지나 마지막 걸음을 폴짝하고 내딛을 때면 나도 모르게 기쁨과 안도의 미소가 나오며 물개 박수를 쳤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재밌는지 손뼉 치는 엄마를 한 번 바라보더니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아이가 다시 같은 길을 지나 미끄럼틀 앞에 착지할 때마다 엄마는 여러 마음을 담아 물개 박수를 치길 반복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잘 해냈구나' 하는 대견한 마음에 절로 고개도 끄덕여졌다. 아이는 10번도 넘게 미끄럼틀을 탔다.


그래~ 계속 믿고 지켜봐 주자
혼자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는 뒷모습을 응원해주자
다소 불안감이 올라오더라도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자


엄마는 생각했다. 놀이터에서 경험한 것처럼, 앞으로 아이의 성장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 많이 직면하게 될 것이다. 때론 도와주고 싶고, 나서서 해결해주고 싶고, 대신 아파해주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불안하고 못 미덥고 말류 하고 싶은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부모인 나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아이를 대해야 할까?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부모가 개입한 만큼 아이의 회복탄력성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우치고 점점 발전해 나갔듯이, 부모의 사랑과 애정 속에서 꿈을 펼쳐갔듯이 나 역시 넓은 울타리 속에서 사랑과 격려를 해줘야겠다.


오늘처럼 떨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아이가 내딛는 걸음에 응원의 눈빛과 기쁨의 미소를 보내며 힘껏 손뼉 쳐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워킹맘 둘이 밥 먹다가 눈물 흘린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