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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Dec 20. 2022

100가지를 해도 테가 안나는 집안일의 마법

일요일 밤, 잠들려는 아이에게 갑자기 생각난 질문을 던졌다.


오늘 하루도 행복했어?


잠결에 '응~' 하고 스르르 잠드는 아이 모습을 기대하며 인사치레와 같이 지나가는 수준으로 질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잠들려다 말고 고래를 도리도리 흔든다.


응?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냈지?


아이가 그냥 '응~'하고 지나가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엄마가 의아해서 재차 물으니 졸린 아이가 '아니'라고 대답까지 또렷하게 한다. 깜짝 놀란 나는 오늘 하루를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돌려봤다. 그러고 보니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아이와 놀아 준 시간이 매우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 엄마가 오늘 별로 안 놀아줘서 그래?

- 응

- 아까 우리 마트 놀이했잖아

- 그건 잠자기 전에 한 번 한 거잖아


아이가 너무 명확하게 대답해서 두 번째로 깜짝 놀랐다. 낮잠 자기 전, 집안일하다가 달려와 마트놀이를 했는데 그 시간을 떠올려보니 10분 정도밖에 안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곤 아이와 함께 놀이한 기억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 내가 오늘 아이랑 10분밖에 못 논 거 있지? 나 도대체 하루 종일 뭐한 거지?

- 그러게. 하루 종일 뭐했어?

- 나?? 음.. 나 하루 종일 집안일했는데???


대답 후 주변을 돌아보니 거실이 난장판이다. 장난감은 어질러져 있고, 책상이며 바닥이며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종일 집안일을 한 건 확실한데 집안꼴은 또 왜 이러지?


분명 아이와 계속 같이 있었는데 단 10분밖에 못 놀았다는 사실에 나도 황당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도대체 집안일이 뭐길래 내 아이를 종일 혼자 놀게 내버려 둔 걸까. 내 억울함을 증명하고 시간 사용 분석을 위해 내가 한 집안일을 나열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안 되겠어!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시간순으로 나열해봐야겠어! 음.. 그런데 빨래하고 밥 차리고.. 또 뭐했더라?


가족 모두 감기에 걸린 주말이었다. 감기몸살이 심한 남편은 하루 종일 안방에 누워 나오지 못고, 나 역시 감기에 걸렸으나 충전한 에너지로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집안일을 했다. 하루 종일 부지런 떨며 서 있었는지 저녁이 되자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1주일 동안 회사일이 바빠 살림을 손대지 못해서 할 일이 평소보다 더 많이 쌓여 있었다.


분명히 쉴 틈 없이 바빴는데 설명하거나 목록으로 적으려고 하니 정말이지 정확히 생각안 난다. 미칠 노릇이다. 그럼에도 기억을 떠올려 최대한 열해 보았다.


- 기상 후 세탁기 2번 돌리기/ 빨래 널기

  : 이불빨래/옷 빨래/어린이집 이불빨래 등

- 어지러운 부엌 정리하기

- 어제저녁 못 치운 설거지하기

- 아침 가볍게 준비하기

- 아침 설거지 하기

- 쌀 씻고 점심밥 하기

- 점심 차리기, 요리 및 식사 준비

- 점심 설거지

- 어질러있는 집안 정리하기

- 로봇청소기로 집 청소하기(걸레질)

- 선반이나 더러운 부분 손걸레질 하기

- 화분에 물 주기

- 반찬 하나 하기

- 음식물,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기

- 아이 간식 주기

- 청소기 부분적으로 빠르게 돌리기


얼핏 보면 몇 가지 안 되는 것 같지만 살짝 어질러진 거실 치우는데만 1시간이 걸리기도 하니 시간은 꽤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자잘한 일들이 분명 많이 있었을 것이다. 내 손과 몸 쉴 틈 없이 움직였단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에 한숨 돌리려고 보니, 건조기에서 고 미처 개지 못한 빨래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


Oh, my god!

하루 종일 일했는데 여전히 할 일이 남아있다고? 일요일만큼은 집안일의 노예가 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집안일에 갇혀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 미안함도 함께 남았다. 내가 부엌살림에 정신없는 사이, 아이는 군말 없이 내 옆을 맴돌며 혼자 이런저런 놀이를 했고 아이가 칭얼대지 않으니 나도 쌓여있는 내 할 일만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하지 못했단 사실을 잠들기 전 질문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다고 위대한 업적이 남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집안일은 하다 보면 다음 할 일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아서면 다시 어질러져서 했던 일을 계속 반복하기도 한다. 아침 먹고 치우면 점심 먹고 치워야 해서 끝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종일 무언가 했는데 뭘 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있다.


집안일의 굴레에 갇히지 않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정리해봤다.


1. 아이를 집안일에 놀이 형태로 참여시키기

- 같이 화분에 물주며 식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 보내기

- 채소 씻기, 계란 풀기 등의 요리 미션을 주어 아이도 즐겁게 참여하고 뿌듯함과 재미 주기

- '장난감 스스로 정리하기' 등 주도적인 좋은 습관 들이기


2. 가전기기 적절히 활용하기

- 물과 전기에너지 절감을 위해 세탁물은 한 번에 모아서 빨기

- 건조기 잘 활용하기

- 식기세척기 틈틈이 활용하기

- 로봇청소기 등 손과 발이 되어줄 수 있는 기기 활용하기


3. 일단 밖으로 외출하기

- 집 안에 있으면 계속 집안일을 하게 되는 반면, 외출하면 집안일 총량이 저절로 줄어든다


4. 적당히 내려놓기

- 적당히 치우고. 가볍게 식단 준비도 하며 내려놓기


5. 아이와 의도적으로 함께하는 시간 가지기

- 집안일은 고리처럼 끝없이 연결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중간에 끊기

- 오전, 오후 1회 이상씩 아이가 원하는 놀이하기

- 놀이 시간에는 아이에게 집중하고 교감하기


이런 다짐과 함께 다시 돌아온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미술놀이나 만들기 놀이도 하고, 책도 읽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눈이 온 날에는 신나게 눈밭에서 놀았다. 덜 깨끗할지언정 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빨래 3바퀴 돌리기, 김 굽기, 양배추 썰어놓기, 고구마 간식 삶기 등 여전히 할 일은 내 뒤에 보란 듯이 길게 줄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를 살림에 계속 내어줄 수 없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중요한 건 없다.


딩동, 서로 뭐하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 집안일이 끝이 없구나ㅜ


이 한마디에 어떤 을 해야 한없이 공감되는 내 마음이 표현될까. 그리곤 각자 밖에 나가 눈에서 뒹굴며 놀았던 사진을 공유했다.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에서 가장 아이다움이 느껴졌다. 뽀득뽀득 눈을 밟기만 해도 신나서 깔깔대는 아이, 눈을 흩뿌리며 즐거워하는 아이, 눈사람 노래를 흥얼거리며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성도 만들고 오리도 만드는 동안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끝이 빨개져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


이 소중한 웃음을 누는 시간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동요)눈을 굴려서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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