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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Aug 09. 2022

죽음에 대한 오해 -2

19 Ⅱ. 죽음에 대하여 ⑤

2. 죽음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 죽음의 순간은 대체로 평온하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본 적 없는 사람들, 죽음의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잘못 해석하기 쉽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한다. 패트릭은 호흡할 때 나는 가래 끓는 소리와 주기성 호흡을 할 때 나는 깊고 쉭쉭 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사랑하는 형제가 신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도 저렇게 고통받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그가 소리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선생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고통을 멈춰줄 수 없습니까?"

(...) 나는 그에게 이것이 보통의 죽음, 편안한 죽음, 평온한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브렌던의 호흡이 빠르고 느리게, 얕고 깊게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호흡이 점차 약해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브렌던은 다시는 숨을 들이쉬지 않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평온하게 이루어져서 숨이 멎었다는 것을 눈치채기 힘들지도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큰 이유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또한 임종의 순간 극도의 고통을 경험할 것이란 인식 때문이다. 죽음에 앞서 몸이 늙거나 병들어 점차 나다움을 잃고, 마침내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극한의 통증이 덮칠 것이라는 공포. 고통은 나란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고 추하게 몸부림치다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편적인 인식 같다.


말기 암 환자인 50대 남성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정확히는 영상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가족들의 보호 아래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하고, 편안하고 의미 있게 삶을 마무리한 듯 보이는 망자를 향해 많은 이들이 댓글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드러내며 안락사 허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굳이 고통의 과정을 겪지 않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다.

unsplash.com (Silvestri Matteo)

누군가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병자는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숨을 헐떡이고, 거친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별안간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병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가 고통받고 있다는 생각에 비통함을, 해줄 것이 없다는데 무력감을 느낀다. 도입부에 소개된 일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소중한 고양이의 임종을 지켜보며 그랬다. 느리게 새어 나오던 아이의 숨이 갑자기 빨라지고, 다시 느려지고, 또 불편한 소리와 함께 어느 순간 빨라지는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애가 탔다. 마침내 그르렁 거리며 큰 숨이 새어 나오다 최후의 순간이 왔을 때 아이가 숨쉬기 어려워하며, 그로 인해 큰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애 말기 통증과 불편감, 자율성의 박탈은 죽음을 앞둔 존재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생로병사, 생명체로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마지막이고 그것이 상쾌하고 기분 좋은 사건 일리는 없다. 하지만 임종의 순간, 갑자기 크나큰 고통이 덮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됐다고 완화의료 전문가들은 말한다. 죽음을 앞둔 신체는 완전히 이완되고, 의식은 혼수상태로 접어들면서 통증을 포함해 신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죽음과 고통을 나란히 놓는 것은 얄궂은 도치 같기도 하다. 극한의 괴로움이나 절망에 짓눌린 인간은 그 탈출구로 죽음을 떠올린다. 고통의 끝자락에,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죽음을 소환하는 것이다. 죽음과 고통은 짝꿍처럼 같이 다니지만, 그것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두려움이 만든 편견 혹은 과도한 공포에 불과할지 모른다. 물론 생명의 개수만큼 개별적인 삶, 서로 다른 죽음이 존재하며 그 어떤 것도 단순화하거나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앓고 있는 질병이나 노화 정도에 따라 통증의 양상은 천차만별 다르다. 


현대의학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술,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을 통해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부작용으로 죽음을 실패라 받아들이고, 터부시 해 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점차로 많은 이들이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임종기 환자의 통증관리에 대한 논의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죽음의 질을 논할 때 통증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호스피스 케어로 통증을 다스리고 세심하게 관리해 통증을 줄여주는 의학이 발전하고 있다. 인의에 비하면 동물 수의학이 갈 길은 아직 멀 테지만 나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믿는다.


죽어가는 사람의 통증은 물론, 노령동물의 통증은 세심한 주의와 관심으로 관리될 수 있다. 죽음은 두려운 것, 죽음의 과정은 고통으로 얼룩진 자갈밭이란 편견을 벗어던지면 소중한 이들을 더 의연하게 돌보고, 언제일지 모를 나의 죽음에도 한결 담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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