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Ⅱ. 죽음에 대하여 ⑤-4
70~80년대 근사체험에 대한 연구는 비주류 관심사를 가진 괴짜 학자들의 주장으로 치부됐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1세기 들어 다차원적 검증과 정교한 사례 연구가 더해지며 한 발짝 더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학술지가 논문에 게재하는 주제들은 그것이 학술적 연구가 필요한, 즉 실재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2000년을 전후로 근사체험과 관련한 논문이 권위의 의학 학술지들에 속속 등재되기 시작한다.
2001년 세계적 권위의 의학 학술지 란셋(Lancet)에 ‘심장정지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근사체험 : 네덜란드의 전향적 연구’라는 논문(*주1)이 실렸다. 란셋은 1823년 영국에서 창간된 최초의 의학 저널 중 하나로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의학계의 네이처, 사이언스로 불리는 학술지에 근사체험을 다룬 연구가 처음 게재된 것이라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근사체험이 한낱 신비체험에 불과하다면 저명한 학술지가 실어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네덜란드의 심장전문의 핀 반 롬멜(Pim van Lommel) 박사가 진행한 이 연구는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환자들의 근사체험을 다뤘다. 연구진들은 근사체험의 원인과 경험의 빈도, 깊이,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평가하기 위해 1988년부터 1992년 사이 네덜란드의 10개 병원에서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심장질환자 344명의 사례를 조사한다. 근사체험을 경험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인구통계학적, 의학적, 약학적, 심리적 요인을 비교하고, 근사체험 후 삶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2년, 8년의 긴 시간 동안 이들을 추적했다.
특히 기존 연구와 달리 ‘전향적(prospective)’ 연구를 채택했다. 연구진들은 10개 병원과 사전 협의를 통해 심폐소생술 성공사례가 발생한 즉시 환자를 방문해 인터뷰를 했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근사체험을 경험한 이들을 수소문해 찾아가는 ‘후향적(retrospective)’ 연구였다. 이 경우 상당한 시간이 흘러 체험자의 기억에 한계가 있고, 연구진들의 선입견이 작용할 수도 있다. 전향적 연구는 그런 가능성을 차단해 연구의 신뢰도가 훨씬 높다.
연구 기간 심폐소생술로 회생한 이들은 344명(*주2)이었고, 연령은 26~92세로 다양했다. 평균 나이는 62.2세, 남성이 251명(73%), 여성이 93명(27%)이었다. 이들 중 62명(18%)의 환자가 근사체험을 했고, 41명(12%)은 근사체험의 핵심(core) 요소들을 경험했다. 근사체험 중 고통스럽거나 기괴한 기억을 보고한 이들은 없었다.
연구자들은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일부 환자들에게서 왜 임사체험이 발생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며 환자들은 모두 임상적으로 사망한 상태였다고 밝힌다. 나이나 성별, 학력, 삽관 여부, 처치 장소, 처치 시간 등 다양한 외적 요소들은 임사체험의 빈도와 깊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연구는 심폐소생 도중 근사체험을 경험한 이들을 2년, 8년에 걸쳐 추적한다. 이들은 근사체험 후 삶의 태도가 의미 있게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체험자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커졌고, 사랑과 공감을 더 잘 표현한다고 답했다. 삶의 목적이나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고, 일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현저하게 커졌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낮고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더 크게 나타났다. 몇 분에 불과한 짧은 체험으로 삶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이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처럼 근사체험이 뇌가 만든 잠깐의 환각이나 착각이었다면 나타날 수 없는 변화로 봐야 할 것이다.
이 논문엔 연구 초기 심장환자 중환자실 간호사가 전한 흥미로운 사례가 등장한다. 야간근무 중 혼수상태로 앰뷸런스에 실려 온 44세 남성 환자의 케이스다. 의료진들은 심폐소생을 시도하다 자발 호흡이 돌아오지 않자 인공 삽관을 시도하는데, 이 간호사는 환자의 틀니를 발견하고 위쪽 틀니를 빼서 ‘응급처치용 카트(crash cart)’에 올려둔다. 한 시간 가량 강도 높은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끝에 환자는 심장박동과 혈압이 안정돼 중환자실로 옮겨진다. 여전히 혼수상태로 인공호흡과 삽관을 유지한 채였다.
약 일주일이 지나 환자는 깨어났고, 환자는 회복 후 처음 간호사를 만나 이렇게 말을 건넨다. “내 틀니가 어디 있는지 아는 분이시군요?”. 간호사가 이야기를 듣고 놀라자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당신이 제 틀니를 빼냈죠. 그리고 위에 병들이 잔뜩 있고, 아래쪽엔 수납 서랍이 있는 카트 위에 제 틀니를 두셨잖아요.”라고 설명한다. 심폐소생술 장면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또한 의학용어인 ‘crash cart’를 모르는 일반인이 세세한 상황을 수준 껏 묘사한 것이다. 당시 그 남성은 깊은 혼수에 빠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놀란 간호사가 재차 묻자, 환자는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당시 그는 처치실 침대 위에서 수술 침대에 누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바쁘게 심폐소생을 하는 것을 모두 지켜봤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공간에 대해서도 정확히 설명했다. 특히 의료진들이 처치를 포기해 자신이 죽을까 봐 노심초사했다면서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 처치를 계속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의료진을 향해 보냈다고도 했다.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해 실제로 의료진들은 회생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환자는 임사체험에 큰 감명을 받아 이후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고, 4주 뒤에 건강하게 퇴원했다.
2007년 미국 신장병 학회지(American Journal of Kidney Disease·AJKD)에도 장기간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진행한 근사체험 연구 결과가 실렸다. 만성 신장질환은 2차 세계대전 중 개발된 혈액투석 처치로 생명을 연장하게 된 질병이다. 다만 힘든 투석 과정에서 요독증 혼수(uremic coma), 저혈압(intradialytic hypotension), 패혈증(sepsis) 등 다양한 합병증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하는 환자가 많다.
미국 신장병 학회지에 게재된 <근사체험이 혈액투석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대만에서의 다기관 연구>(*주3) 는 2001년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대만 타이베이의 7개 투석센터에서 투석을 받은 신장병 환자 71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동양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사체험 연구 중에는 지금까지 가장 표본이 많은 연구다. 투석 중 임상적 사망 상태에 이를 뻔한 경험을 한 환자는 70명·91회로, 이들 중 45명(64.3%)에게서 51회의 임사체험이 보고됐다.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이들 중 통상 10~25%가 임사체험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비율이다.
환자 21명은 두 번이나 사망에 가까운 상태를 경험했는데, 두 번 다 근사체험을 한 환자가 6명, 한 차례 체험이 8명, 7명은 근사체험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복수의 근사체험을 한 6명 중 5명은 여성이었고, 평균 나이는 37.8세로 이 연구에선 비교적 젊은 여성 신부전 환자들에게 근사체험이 많았다. 이 중 한 명은 두 차례 모두 평온한 분위기의 정원과 초원으로 들어가는 비슷한 임사체험을 했고, 한 명은 체험마다 각각 다른 신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 연구에서 근사체험자의 성별은 여성이 33명(73.3%)으로 남성(12명) 보다 많았고, 체험 당시 평균 연령은 42.5세였다. 체험자의 대부분인 44명(97.8%)이 종교를 갖고 있었고, 불교 30명·도교 9명·개신교 3명·가톨릭 2명·무교 1명 등 종류는 다양했다. 14명(27.5%)의 환자가 근사체험 중 초월적 존재를 만났는데 4명이 부처, 5명은 다른 동양의 신, 1명은 예수, 1명은 천사, 3명은 특정하지 못하지만 신을 만났다고 답했다. 자신의 종교가 아닌 신을 만난 이는 없었다.
임사체험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뛰어넘는 공통 요인들을 갖지만 한편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같은 사람이 복수의 임사체험에서 완전히 같거나 다른 경험을 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세계관(종교의 신) 안에서 체험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서양과 동양에서의 임사체험 연구결과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만의 연구도 근사체험은 체험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 내렸다. 체험자들은 타인에게 더 친절하고, 동기부여가 잘 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답했다. 임상적 죽음이 닥친 아주 짧은 시간 겪은 체험이 한층 나은 삶을 살게 하는 동인이 된 것이다. 미국 신장병학회지에 실린 대만의 연구 역시 란셋의 연구와 비슷한 시사점을 도출한 것은 근사체험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성을 갖는 인간의 체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주목할 연구로는 미국·영국·오스트리아 등 15개 의료기관에서 4년간(2008~2012년) 진행된 ‘어웨어 프로젝트(AWARE Project)’(*주4)가 있다. ‘소생 중의 의식(AWAreness during REsuscitation)’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이 시사하듯 연구는 심폐소생 중 발생하는 근사체험, 나아가 육체와 분리된 의식을 증명하기 위해 도발적인 연구방법을 채택한다.
연구진은 심정지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응급실·중환자실 위쪽에 선반을 설치하고, 그 위에 그림·글자가 들어간 이미지를 올려두었다. 이는 공중에 떠서만 볼 수 있는 위치로, 근사체험 중 유체이탈 현상(OBE, out-of-body experience)을 경험해 환자가 천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면 이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이 연구 역시 전향적 방법을 택하는데, 심정지에서 살아나 근사체험을 증언하는 환자가 보고되면 즉시 그를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근사체험의 핵심 요소인 유체이탈 현상을 증명하기 위한 이 연구방법은 큰 화제를 모았고, 응급의학 분야 최상위 학술지인 ‘리서시테이션(Resuscitation)’ 2014년 10월호에 연구결과(*주5)가 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연구진이 선반에 숨겨둔 이미지를 보고 증언한 심정지 환자는 없었다.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심정지의 80%가 선반을 설치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연구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실제로 연구기간 2060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해 330명이 살아났고 연구진은 이들에게 3단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중 두 차례 인터뷰를 완수한 101명 중 9명이 매우 높은 수준의 근사체험을 경험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특히 2명은 심폐소생 중 응급실에서 있었던 시각과 청각적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했는데(*주6) 두 명 다 선반을 설치하지 않은 장소에서 심폐소생을 받았다.
다른 문제도 있다. 체험자가 가정대로 근사체험 중 유체이탈로 허공에 떠 있더라도 집중해서 애써 보지 않으면 선반에 올려둔 이미지를 보고 기억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현상을 ‘부주의로 인한 시각장애(inattention blindness)’ 혹은 ‘주의력 착각’이란 용어로 설명한다.(*주7)
어웨어 프로젝트는 이후 ‘AWARE II’라는 이름으로 한 번 더 대규모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차 연구의 문제점을 보완해 심폐소생 중 태블릿PC를 이용해 환자를 시청각 자극에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개선했다. 미국심장학회(AHA) 학술지인 서큘레이션(Circulation) 2019년 11월호에 간단히 초록(Abstract) 형태로 연구결과가 공개됐는데, 465명의 심정지 환자 중 44명이 소생해 21명이 인터뷰에 응했고, 이 중 4명이 분명한 근사체험을 했다고 답했다. 이 중 한 명은 심폐소생 중 주어진 청각 자극을 정확히 기억했다. 다만 시각 테스트를 통과한 이는 이번에도 없었다.
큰 기대를 모았던 어웨어 프로젝트의 결과는 오히려 근사체험 회의론자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됐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연구가 유체이탈과 근사체험의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데 실패했으므로, 근사체험은 증명할 수 없는, 나아가 실재하지 않는 현상이란 것이다. 어웨어 프로젝트가 목표한 바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패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음 이후 일어나는, 살아있는 이들에겐 결코 보이지 않는 너머의 세계를 탐구해 보여 주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언젠가 더 많은 이들이 수긍하는 결실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주1 : Near-death experience in survivors of cardiac arrest: a prospective study in the Netherlands. Dr. Pim van Lommel(MD), Ruud van Wees(PhD), Vincent Meyers(PhD), Ingrid Elfferich(PhD) Published:December 15, 2001
*주2 : 연구 기간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환자는 총 509명이다. 즉 165명은 회생하지 못했다.
*주3 : 미국신장병학회지(American Journal of Kidney Disease) 2007년 7월 124-132쪽, Impact of Near-Death Experiences on Dialysis Patients: A Multicenter Collaborative Study. Chun-Fu Lai(MD), Tze-Wah Kao(MD), Ming-Shiou Wu(MD, PhD), Shou-Shang Chiang(MD) 등
*주4 : 어웨어 프로젝트는 심장전문의 샘 파르니아(Sam Parnia) 박사가 총책임을 맡은 연구다. 샘 파르니아는 심폐소생 환자들의 임사체험과 유체이탈을 연구해 <죽음을 다시 쓴다(Erasing Death) 2013, 페퍼민트>라는 책을 냈는데, 란셋의 연구를 주도한 핌 반 롬멜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 뇌가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의식(non_)을 매개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기존 뇌과학은 인간의 의식과 지각, 정신을 신경 활동의 결과물로 본다. 대뇌피질의 활동이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사체험에서 보듯 죽음에 임박해 뇌의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에도 의식과 인지, 정신(psyche) 활동이 계속된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의식과 지각, 정신이 뇌의 활동과 별개라는 새로운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주5 : Parnia, S; Spearpoint, K; de Vos, G; Fenwick, P; et al. (2014). "AWARE-AWAreness during REsuscitation-a prospective study". Resuscitation.
*주6 : 위의 논문 5페이지 <Table 2>에 소개된 사례다.
“심장마비가 발생하기 직전, 간호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사타구니를 아주 세게 누르는 것 같은 강한 압력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텅 빈 느낌과 함께 명확한 자동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환자에게 충격을 가하시오.(shock the patient, shock the patient)” 그리고 그 순간 병실의 코너 위쪽에서 어떤 여자가 나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저기로 올라갈 수 없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날 아는 것 같았고, 믿을만한 사람인 것 같았지만 왜 거기 있는지 알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순간 내가 그 위로 올라갔고 아래를 내려 보니 간호사 한 명과 파란 모자를 쓴 퉁퉁한 대머리 남자가 있었습니다. 모자를 쓰고 있었고,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모자를 쓴 태가 대머리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다음의 기억은 침대 위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간호사가 말했죠. “깜빡 잠이 드셨는데… 이제 다시 깨어나셨네요.” 간호사의 말인지 자동 음성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행복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 대머리 남성을 봤어요. 이름은 모르지만 보니까 알겠더군. 나를 방문하러 왔는데 어제 본 사람인 걸 말이죠.”
연구진은 이 남자와 인터뷰 후 의료기록에서 AED(자동심장충격기)의 사용을 확인했다. 또한 의료진을 통해 대머리인 의료진의 존재도 확인했다.
*주7 : 눈앞에 벌어지는 시각적 현상, 아주 가까이에서 계속되는 감각 정보도 집중하지 않으면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뇌가 중요한 자극에 집중할 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자극에 대한 인식은 약화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