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Ⅰ.슬픔에 대하여②
미미, 2004년 6월 28일생. 페르시안 엑죠틱 숏헤어, 크림과 블루 컬러가 뒤섞인 이국적인 털코트를 입은 중성화된 암컷 고양이. 길지 않은 다리에 짧동한 체구로 묘생 전성기 4kg 초반대 몸무게를 구가하며 얼룩 돼지로 불렸다. 다섯 살까지 함께 한 집사에게 파양 당해 2009년 8월 새로운 집사로 나를 간택했다. 그리고 나와 꼭 10년을 함께 하고 2019년 7월 28일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여기까지가 따봉 고양이(*) 미미의 간략한 묘적사항, 신상명세서다.
엑죠틱 숏헤어(Persian exotic shorthair cat). 페르시안 고양이 중 얼굴이 눌린(extreme) 단모(shorthair) 고양이다. 만화 ‘가필드 고양이’로 불린다. 야구공 같이 둥글고 넙데데한 머리를 갖고 있고 코가 꽝 눌려 표정이 풍부하다. 갸름하고 날렵한 고양이의 인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런 얼굴이 심술궂은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데 그래서 영화나 만화의 악역들이 기르는 고양이로 종종 등장한다. 가가멜의 아즈라엘이나 만화 형사 가제트에서 나오는 악당의 고양이 같은. 우리나라에서 썩 인기 있는 외모는 아니다. 이런 고양이를 좋아하는 외국 ‘냥덕’(고양이 덕후)들은 ‘smoosh face’ ‘flat face’, 즉 ‘뭉개진 얼굴’, ‘납작 얼굴’이라는 애칭으로 눌린 친구들의 귀여움을 칭송한다.
모든 고양이가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나는 얼굴이 넓적하고 이목구비가 눌린 동물에게 조금 더 특별한 귀여움을 느낀다. 엑죠틱 고양이를 반려하는 것은 내 오랜 로망이었다. ‘품종묘’ 선호, 특정 외모 지향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려인이 십수 년을 책임지고 함께할 동물을 맞을 때 외모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반려동물 생산과 판매(불편하지만 실재하는 현상이므로 이 단어들을 쓴다)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미는 2004년 지방의 한 고양이 캐터리에서 세 자매로 태어났다. 그 시절 번성했던 페르시안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간혹 미미 자매들의 소식을 볼 수 있었다. 모두 미미와 같은 보기 드문 삼색의 코트를 입었는데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도 나처럼 생김새가 무척 비슷한 동기가 있고, 낳아준 부모가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생명에 대해 새롭고 풍부한 감수성을 주었달까. 물론 역시나 제일 예쁜 건 미미였다. 객관적으로 다른 자매 고양이가 엑죠틱 품종의 외모 스탠더드에는 더 부합했지만 어떤 녀석도 내 고양이만큼 예쁠 리는 없었다.
미미는 유전병(PKD)에서 기인한 질환으로 사망했기에 아이 임종을 앞두고 자매묘 보호자에게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닿지 않았다. 미미 자매들이 어떤 묘생을 살고 있으며 살아왔는지, 혹은 어떻게 삶을 마감했는지 소식을 알 수 있었다면 도움이 됐을 것이다.
미미는 전 주인에게 15만 원을 주고 데려왔다, 혹은 ‘사 왔다’. 당시 페르시안 고양이 인터넷 커뮤니티 분양 게시글에 적힌 대로 아이가 먹던 사료와 모래를 받고, 그자가 제시한 금액을 지불하고 왔으니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난 미미와의 만남을 어느 정도 운명이라 생각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렇다. 나는 오래전부터 엑죠틱 숏헤어 고양이를 원했고, 전 주인은 더 이상 자신의 고양이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약간의 돈을 주고받고 고양이 한 마리를 넘겨받은 셈이다.
전 주인은 미미를 아기 고양이 시절 더 비싼 값에 사 왔겠지만 다섯 살이란 나이에 맞게 일종의 감가상각을 해서 미미의 가격을 책정했을 것이다. 샀던 대로 값을 불렀다가는 팔리지 않을 테니까. 고양이를 비롯해 반려동물은 어릴 때 훨씬 귀엽고 따라서 제값을 받을 수 있다. 흔히 펫샵이라 부르는, 유리 진열장에 새끼 동물을 넣어 전시 판매하는 곳에 가면 2~3개월령이 지나 조금 커져버린 동물들은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사람들은 금세 지나가는 어린 동물의 귀여움에 지갑을 열기에 냉정한 시장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펫샵에선 어린 동물의 성장을 늦추기 위해 아주 극소량의 음식만 먹인다고 한다. 다섯 살 성묘 미미가 훨씬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면 내 고양이가 됐을까. 모르겠다.
전 주인은 미미의 출산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만 다섯 살까지 불임수술을 미루다 입양 직전 중성화를 해서 보냈다. 아무래도 품종 묘인지라 혹시 업자에게 팔려가 평생 아이 낳는 기계로 살 것을 걱정한 전 주인이 아이에게 차린 마지막 예의가 아닌가 싶다. 그 대가로 ‘분양책임비’ 15만 원을 받겠다고 했던 것도 같다.
그 15만 원으로 전 주인은 뭘 했을까. 미미를 파양한 이유였던, 호흡기가 약하다는 자신의 사람 아기를 위한 무엇을 마련했을까. 6개월 넘게 좁은 베란다에 가둬놓고 분양을 기다렸던 고양이에게 새 주인을 찾아 주었으니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 되어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이라도 했을까. 아니면 그냥 주머니에 넣고 마트에 가서 대수롭지 않은 생필품을 사고 떡볶이도 사 먹고 그러면서 써버렸을까.
그때는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지만 5년을 함께 한 아이를 돈을 받고 새 주인에게 파는 것,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분양책임비, 15만 원이라는 돈이 큰돈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작은 돈도 아니다.
이른바 가정분양(**)은 보다 엄격하게 규제돼야 한다. 동물을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존재로, 가벼운 돈벌이로 여기는 우리 사회 인식에 무분별한 가정분양 탓이 분명히 있다. 내 동물이 낳은 새끼동물을 돈을 받고 누구나 팔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키우던 동물도 흥미가 떨어지면 혹은 문제가 생기면 그냥 누군가에게 팔아넘기면 된다. 희소성 있는 품종이라면 제법 돈이 된다. 분양업자도 가정분양을 빙자해 동물을 판다. 2018년 3월 동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소규모 가정분양을 비롯해 모든 동물생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2002. 도서출판 백암 p140~141.
“이런 얘기를 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따봉’과 ‘꽝’ 두 종류가 있다. 시계 같은 것과 똑같다. 이것만큼은 키워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또 외모만으로도 절대로 모른다. 혈통도 소용이 없다. 아무튼 몇 주일쯤 길러 본 후에야 ‘음, 이놈은 따봉이야’ 라든가 ‘골치 아프군, 꽝이야’ 하는 걸 겨우 알 수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따봉 고양이와 운 좋게 만나게 될 확률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나의 오랜 고양이 경험으로 봐서 대충 3.5마리나 4마리에 한 마리 정도의 확률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따봉 고양이는 제법 귀중한 존재이다. 하기야 어떤 고양이가 따봉인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기준이 다르다. 이것은 사람마다 미인의 기준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키우던 반려동물의 새끼를 분양하는 경우를 흔히 가정분양이라 부른다. 전문 업장인 펫샵에서 어린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와 구분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특히 펫샵에서 거래되는 어린 동물들은 대개 비윤리적 번식과 출산이 이루어지는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에서 공급되는데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고 태어난, 건강한 개체를 얻는 방법으로 예비 반려인들에게 가정분양이 권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출산을 소소한 돈벌이로 이용하거나, 법의 사각지대에서 그저 가정분양을 빙자한 소규모 업자에게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 동물 판매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이고, 2018년 3월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동물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은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분양하면 불법이다. 이를 어기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실효성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개인 간 반려동물 거래금액이 연간 15만 원을 넘을 경우 무등록 판매자로 보고 처벌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실질적으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법을 어긴 이들에 대한 처벌 역시 너무나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