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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Jul 21. 2022

따봉 고양이의 집사는

04 Ⅰ.슬픔에 대하여 ③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여섯 살 즈음 띠띠라는 하얀색 강아지가 집에 왔는데 며칠 만에 죽었다. 간단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흔한 파보 장염 같은 것이 이유였지 싶다. 장롱에 들어가 한참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집에 늘 동물이 있었다. 지금은 상전벽해 한 경기도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 반려동물이라기보다 가축에 가까운 동물이 많았다. 그렇다고 소나 돼지 같은 본격적인 산업동물은 아니고 마당과 뜰이 있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작은 토끼나 닭 그런 것들이었다. 할아버지가 농사를 조금 지으셨는데 소일거리로 동물을 키우셨던 것 같다. 지금도 부모님은 집 앞마당에 닭 몇 마리를 두고 달걀을 얻어 드신다.


대학 졸업 후 어렵사리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이리저리 치일 때 수의사 학사 편입을 알아보곤 했다. 현실도피 측면이 있었지만, 역시 동물이 너무 좋아서가 큰 이유였다. 또한 수의사는 전문성과 소명, 지속적인 노력이 꼭 있어야 하는, 다시 말해 의미 있고 멋진 직업이니까. 수의사가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가끔 한다.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객관적으로 늦었다. 대신 다시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면 해당 동물의 생애주기나 행동습성, 영양학 등을 빈틈없이 공부해 아이와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예측불가의 생명체이므로 계획보다 대응이 더 중요할 것이다.


미미가 내게 온 것은 2009년 8월. 좀 힘든 때였다. 돌아보니 나는 인생의 막막한 시기에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엔 동물을 입양하는 것을 책임이라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로해 줄 귀엽고 따뜻한 생명체로써 고양이가 필요했다. 그래서 미미와 나는 가족이 됐고 우리는 10년 동안 서로의 우주였다.


미미의 귀여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상에 완벽한 고양이는 없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최고의 고양이는 있고, 내겐 미미가 그랬다. 미미의 귀여움을 나열하고 그 사례를 일일이 들자면 백과사전 분량도 부족하다. 또한 미미의 사랑스러움을 추앙하기 위한 글쓰기는 아니기에 부득불 몇 가지만 추린다.


미미는 사랑받는 걸 당연히 여겼다. 구김살이 없었다. 첫날부터 완벽하게 적응했는데 내게 오기 전 반년 넘게 베란다에 갇혀 산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영역 동물임이 무색하게 아주 잠깐의 탐색 후 원래 제집이었던 것 마냥 내 공간을 활보했고 첫날 새벽부터 밥을 더 달라고 나를 깨물며 깨웠다.


의사표현이 확실했다. 너무 잘 그릉거려 처음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우렁찬 골골송을 오래도록 불렀다. 고양이마다 좋아하는 놀이방식이 있는데 미미는 낚아챈 사냥감을 물고 자랑하는 것을 좋아했다. 제압한 사냥감을 물고 커다란 눈을 호동그레 씩씩 거리는, 기세 등등한 그 모습.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온통 주는 것이 당연한 아이였다. 아주 금세 행복함을 느끼고 그것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고양이. 누군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며 자기감정을 적극적으로 내보이는 고양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고양이 미미는 무엇에든 거침이 없었다.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받는 것을 당연해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요구하기는커녕, 마땅한 칭찬조차 겸연쩍게 여기며 살아온 나는 미미에게 홀딱 빠졌다. 내가 너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이 나이가 열 살을 넘어가면서, 그러니까 함께 한 시간이 5년을 지나면서부터 나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를 혹여 잃는다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음이 저릿저릿하고 도리질이 처지곤 했는데 그래서 둘째를 데려와야 하나 한동안 고민했다. 나는 네가 없는 세상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다른 고양이라도 하나 있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에. 그래도 미미 이유를 보태자면 같은 종 친구가 있으면 다소 의지가 될 것이란 생각.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반대로 고양이나 다른 동물은 싫어해서 포기했다. 미미가 8살이던 해 추운 겨울날 이른바 ‘냥줍’을 했다. 길에서 어미 잃은 치즈 태비 아기 고양이가 딱해 데려왔는데 미미가 받아줄 눈치가 아니라 격리 상태로 3주 정도 돌보다 입양을 보냈다.


미미는 내게 오기 전 반년을 베란다에 갇혀 살았고, 다른 고양이와 개가 한 마리씩 더 있었다고 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동물 셋이 복작대며 다른 동물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특히 개는 다가오면 아주 앙칼지게 대했다. 짧은 다리로 놀랍도록 멋지고 용맹한 날아차기를 선보였다. 옆집 사는 갈색 푸들 똘이가 물정 없이 미미에게 호감을 표현하다 한번 호되게 맞고, 이후엔 미미를 보면 주눅 든 눈으로 뒷걸음을 치곤 했다. 몸집이 두배 세배 큰 개도 제압하는 단호함과 카리스마도 갖춘 고양이가 미미였다. 


그런 너를 품은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주 최고로 행복한 집사. 고유한 한 고양이의 가족이 되는 것만으로 누구나 '우주 최고'라는 극상위의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 별 볼 일 없는 내 삶에 이토록 충만함을 주는 관계라니.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행한 기적을 10년이나 누린 나는 정말이지 우주에서 가장 운 좋은 집사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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