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Ⅰ.슬픔에 대하여 ⑥
고양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질환이 만성 신부전(CKD)이다. 신부전이 특별한 것은 많은 고양이들이 이 병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때문이다.
글로벌 펫푸드 기업 힐스(Hill’s)가 2017년 워싱턴DC에서 진행한 글로벌 심포지엄에서 제인 로버트슨 미국수의내과전문의(DACVIM)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고양이 세 마리 중 한 마리, 개 열 마리 중 한 마리 꼴로 노화에 따라 신장질환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많은 임상 수의사들이 경험상 고양이, 특히 노령묘의 사망원인으로 가장 빈번한 질환을 신부전으로 꼽는다. 고양이 집사들에겐 이 반갑지 않은 질병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어지는 내용은 만성 신부전에 대한 매우 간략한 정보다.
신장을 ‘불가역적 장기’라고 한다. 한번 나빠진 신장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또 따라오는 말이 ‘침묵의 장기’다. 신부전이 무서운 이유는 신장이 상당 수준 손상돼도 증상이 없고 거의 말기에 이르러서야 질환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임상 증상을 관찰했다면 신부전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또한 만성 신부전은 요독증, 빈혈, 소화기 질병, 구강궤양, 대사성산증 등 다양한 증상과 합병증을 동반한다. 질환 말기에 이르면 몸속에 쌓인 노폐물과 전해질 이상으로 종종 경련, 발작이 일어나거나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따라서 만성 신부전 치료의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신장 기능 저하로 나타나는 각종 증상을 교정하고, 합병증을 줄여 환묘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행스럽게도 만성 신부전은 관리만 잘하면 진단을 받은 뒤에도 건강한 고양이에 못지않게 수년간 괜찮은 삶을 이어갈 수 있다. 보호자들은 신부전 진단과 함께 기대수명이 짧게는 몇 달밖에 안 된다는 선고를 듣고 큰 슬픔에 빠진다. 병원에서 공격적인 치료를 권하며 보호자를 겁먹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수치와 증상에 따라 다를 수야 있지만 아주 말기가 아니라면 만성 신부전은 꾸준한 관리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질환이다. 보호자가 두려움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장의 기능
신부전을 이해하려면 신장의 기능부터 알아야 한다. 신장은 중요한 장기다. 간과 함께 생명활동의 부산물로 배출되는 노폐물을 처리한다. 신장은 그중에서도 단백질 대사 과정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암모니아와 요소, 요산)을 처리하는 장기다. 질소산화물은 독성이 있기에 체내에 쌓여선 안 되고, 소변을 통해 반드시 몸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이때 거름망 역할을 하는 것이 신장(의 네프론)이다.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질소산화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혈액을 타고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신부전이다.
혈액검사(Bio marker)상 신장기능을 확인하는 항목이 BUN(blood urea nitrogen), 크레아티닌(Cr, Creatinine)이다. 신장에서 처리하는 독성물질들이 혈액에 얼마나 있는지 측정하는 항목이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한다면 몸 안을 돌아다니는 혈액 속에 이 항목들이 적정 수치(reference)를 넘어가지 않는다.
-크레아티닌 : 근육에서 나오는 일종의 폐기물인데 신장에서 배설돼 몸 밖으로 나간다. 신장 기능이 절반 이상 떨어지면 이 폐기물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해 혈액 중 크레아티닌 농도가 상승한다. 따라서 크레아티닌 수치가 적정치를 벗어났다면 신장이 상당히 나빠진 상태, 즉 만성 신부전이 상태라고 봐야 한다. 단백질 섭취가 많거나 근육이 많은 고양이라면 크레아티닌 수치가 그렇지 않은 고양이보다 살짝 높을 수 있다.
신부전 진행 단계는 국제신장협회(international renal interest society, IRiS)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 ‘아이리스 스테이지(IRiS STAGE)’를 기준으로 한다. 아이리스 스테이지는 만성 신부전 진행 단계를 1~4기로 구분한다. 2019년 10월 개정된 기준(**)은 고양이의 신부전 단계를 △1기 크레아티닌 1.6 이하 △2기 1.6~2.8 △3기 2.9~5.0 △4기 5.0 초과로 규정하고 있다. 1기는 초기, 4기가 말기(End-stage)에 해당된다. 사람은 말기 단계에 이르면 혈액투석 또는 복막투석을 하면서 버티다 신장을 이식한다. 고양이의 투석이나 특히 신장이식은 사례가 아주 드문데 예후가 좋지 않아 아직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BUN : 혈액 내 요소의 질소화합물 농도를 의미한다. 요소는 단백질 섭취에 따른 최종 부산물로 간에서 만들어지고, 대부분 신장에서 걸러진다. 따라서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BUN 수치가 상승한다. 이밖에도 고단백 식이나 탈수, 소모성 질환 등이 BUN 수치를 높인다. 신장기능 이상 외에도 BUN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요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신장기능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크레아티닌 수치를 더 유의미하게 본다.
-SDMA(Symmetric dimethylarginine) : 만성신부전을 측정하는 지표로 기존 혈액검사상 지표인 BUN, 크레아티닌 보다 조기에 신부전을 진단할 수 있어 최근 각광받는 검사다. SDMA는 몸에서 만들어지는 물질로 신장의 사구체에서 걸러져 소변으로 나온다.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즉 사구체 여과율(glomerular filtration rate, GFR)이 떨어지면 혈액에 이 물질이 정상수치 이상으로 남는다. 크레아티닌과 번 지수는 신장 이외 다른 이유로 널 뛸 수 있는 반면, SDMA는 간섭 요인이 거의 없다.
또한 크레아티닌이 신장의 70~75% 이상 망가졌을 때부터 정상수치를 벗어나는 것과 달리, SDMA는 신기능이 평균 40% 정도 소실됐을 때부터 측정이 가능하다. 신부전은 불가역의, 진행성 질환이기에 조기 발견으로 진행을 늦추는 게 관리의 핵심이다. 크레아티닌, BUN 등 수치가 정상범위 안에 있더라도 신장질환 발병 가능성이 염려된다면 SDMA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는 게 좋다.
아이리스는 SDMA 수치가 18 이상이면 만성신부전 1기, 18~25는 2기, 26~38는 3기, 38을 넘으면 말기로 진단한다. SDMA 수치는 전용 장비가 있는 병원이라면 몇 분 만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없는 병원이라면 전문기업(IDEXX)에 혈액을 보내 며칠 뒤 결과를 받아보게 된다. 물론 만능은 아니라서 혈액검사, 소변검사, 초음파 등 추가적인 검사를 통해 신부전을 확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뇨비중(단백뇨 여부)과 전신성 혈압도 신부전 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수치는 위 그림을 참고)
이밖에도 신장은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체내 수분량과 전해질(칼륨·칼슘·인·나트륨), 산성도 등을 적당한 범위 안에 있게 해 준다.
인체 대사에 필요한 각종 호르몬을 생산하는 기능도 신장의 주요 기능이다. 신부전 말기 고양이들 대부분 빈혈에 시달린다. 신장은 조혈 기능을 담당하는 호르몬(에리트로포이에틴)을 생산한다. 이밖에도 신장은 혈압을 유지하고, 칼슘과 인 대사 등에 필요한 호르몬을 직간접적으로 만든다. 신부전이 말기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임상증상을 관찰할 수 있는데 내 야옹이의 생기 넘쳤던 진분홍 혓바닥이 어느 날 아주 옅은 분홍으로 변한 것을 어느 날 발견한다. 그리고 찾아올 빈혈에 대비하지 못한 무지한 자신을 탓하게 된다.
주요 신장질환
-다낭성 신장실환(Polycystic Kidney Disease·PKD) : 신장에 액체로 채워진 낭종(물집)이 생기고 크기가 커지면서 신장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질병이다.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흔한 유전질환이다.(***) 페르시안 고양이의 30~40%가 PKD 환묘라고 한다. 콩팥 겉질에 여러 개의 낭포가 후천성으로 발생하는데 초음파와 방사선 검사, 혈액검사 등을 통해서 확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낭포의 개수가 늘어나고 크기도 커지기 때문에 결국 신장의 실질이 망가져 신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초기엔 증상이 없어 치료할 필요가 없으며 사실 치료가 가능하지도 않다. 정기 검사를 통해 낭포의 개수와 크기를 추적하고, 신장의 기능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낭포엔 대개 체액이 들어있는데 세균성으로 확인되면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다. 낭포를 없애는 외과적 수술도 가능하지만 유전질환이라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 PKD 환묘의 신부전 발병은 시기를 예측할 수 없으나 확정적이다. 반드시 신장 기능이 떨어지고 이는 고양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크고 많아지는 낭종은 간·췌장 등 다른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당장 문제가 생기는 질병이 아니기에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 신장의 망가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PKD가 의심된다면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 유전자 보유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진단 시기를 앞당기면 보다 예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증상은 없지만 보인자(carrier***)로 판명될 경우 세심한 관리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푹 빠져서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딸 동백이를 버리고 모진 인생을 살다 돌아온 동백이 엄마(이정은 역)가 바로 PKD에서 기인한 만성 신부전을 앓는 인물로 나온다. 19회에서 의사는 동백이 엄마를 향해 그냥 신장병이 아니라 유전질환이라면서 딸의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PKD는 폴리시스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PKD1, 2)의 결함으로 발생한다. 부모 중 한 명이 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만성신부전에 걸릴 확률이 적어도 25%라는 얘기다. 따라서 사람에게도 드문 질병이 아닌데 어릴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낭종 개수가 많아지고 커지면서 대개 30대 후반부터 신장기능이 떨어지고, 40~50대에 이르면 신장 기능이 10% 이하로 나빠져 투석이나 이식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국 동백이 엄마처럼 힘들게 투석을 받다가 신장을 이식해야 살 수 있는 질병이다. 다행히 딸에게 PKD가 유전되지 않아, 동백이 엄마는 신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되찾는다. 모정과 삶에 대한 의지 사이에서 고뇌하는 동백이 엄마를 보면서 같은 병을 앓다 떠난 내 고양이를 떠올렸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휴머니티 가득한 명작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극의 전개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그리워 자주 울었다.
-만성 신장질환(CKD·Chronic Kidney Disease, CRF·Chronic Renal Failure, ) 말 그대로 신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고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원인은 노화에 따른 기능 퇴화, 나쁜 식이, 유전, 고혈압, 칼륨 부족 등 다양하다. 앞서 봤듯 신장은 매우 중요하고 다양한 일을 하는 장기다. 또한 30%만으로도 정상기능을 한다. 따라서 70% 이상 신기능이 소실될 때까지 증상이 없다.
약속 때마다 어디서 게으름을 부리다 뒤늦게 나타나 요란을 떠는 친구가 한 명쯤 있을 것이다. 신부전의 증상이 그렇다. 피로감, 무력감, 식욕감소, 체중감소, 소화불량과 구토, 수면장애, 구강궤양, 입냄새, 침 흘림, 빈혈 등을 동반한다. 요독증, 대사성산증(*****) 등 무서운 합병증도 빈발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슬프게도 신장 기능이 거의 파괴되고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기능하지 않는 아이의 신장을 대신해 보호자들이 많은 일을 해줘야 한다.
-급성 신질환(Acute kidney injury·AKI) 외상이나 독성물질, 요도 폐쇄, 복잡한 수술 등이 주요 원인이다. 신장이 갑자기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다. 적극적이고 빠른 처치를 통해 정상 수치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만성 신부전으로 진행되는 사례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만성신부전으로 관리하는 중에 급성신부전이 오기도 한다.
* <A Practical Approach to Using the IRIS CKD Guidelines and the IDEXX SDMA® Test inEveryday Practice> Jane Robertson, DVM, DACVIM (Content presented at the 2017 Hill’s Global Symposium in Washington D.C., May 5 - 6, 2017.)
**http://www.iris-kidney.com/pdf/IRIS_Staging_of_CKD_modified_2019.pdf
***PKD는 상염색체 우성(Autosomal Dominant) 유전질환이다. PKD를 ADPKD라고도 하는데 Autosomal Dominant Polycystic Kidney Disease의 줄임말이다.
****세포를 구성하는 염색체는 부(父)와 모(母)로부터 각각 유전자를 물려받아 한쌍을 이룬다. 보인자(carrier)는 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염색체 한쌍 중 하나만 갖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즉 한쌍의 유전자 중 하나는 정상이지만, 하나는 질환을 유발하는 돌연변이(열성 또는 우성) 유전자를 가진 경우다. 이를 이형접합이라 하는데 PKD 환묘 대부분이 이런 경우다. PKD 유전자 두 개가 한쌍을 이루면(동형접합) 임신기에 도태되거나 아주 어릴 때 신부전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요독증 : 소변으로 배출돼야 할 노폐물인 요산이 배설되지 못하고 체내에 쌓여 발생하는 다양한 증상. 대사성산증 : 몸속의 체액이 산성화 하는 것. 과다한 산으로 인해 효소 활성이 감소하고, 중추 신경계 기능이 저하되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