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우주 Jul 22. 2022

미미가 별이 되기까지 : 간단한 투병사

05 Ⅰ.슬픔에 대하여 ④

2014년 유전병인 다낭성 신장질환(PKD) 진단을 받았다. 그전까지 매년 한 번씩 혈액 검사를 했는데 신장을 비롯해 장기 기능에 이상은 없었다. 열 살 되던 해 처음 초음파를 찍었는데 신장에 여러 개의 낭포(cyst)가 발견됐다. 크기도 제법 되고 개수도 적지 않았는데 수의사의 설명을 듣고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다섯 살에 아이를 데려오면서 유전병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PKD가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매우 흔한 유전 질병이라는 것도 진단 후에 알았다. 페르시안 고양이의 30% 정도가 PKD를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전까지 고양이 유전병은 스코티시폴드나 먼치킨 고양이에게나 있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PKD가 어릴 때 아이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위험성에 비해 질병의 존재감이 덜 알려진 것 같다. 스코티시폴드의 유전병인 골연골 이형성증(*)은 개묘차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 발현 시기가 빠르고, 발병하면 걸음걸이가 어색해지고 높은 곳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등 질환의 증세가 확실히 눈에 보인다. 또 ‘접힌 귀’ 선호에 따라 무분별한 교배로 유전병 환묘 폴드 고양이들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역설적으로 유전병의 존재가 잘 알려진 측면이 있다.


PKD를 갖고 태어난 고양이 중 비교적 건강한 개체는 점차 나이가 들며 급격하게 신장이 나빠지고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미미가 그랬는데 일생 동안 별다른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다 마지막 석 달 동안 아주 급격하게 신장을 비롯해 다른 장기들이 복합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페르시안 고양이의 셋 중 하나가 앓는 유전병 PKD, 흔하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신장 유전병을 가진 품종의 고양이가 별다른 주의 없이 마구 퍼진 것은 인간의 무지와 욕심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가 반려동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2000년 전후다. 특히 우아하고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페르시안 고양이가 인기를 주도했다. 페르시안 고양이 열풍이라고 할 만큼 반려 고양이 하면 페르시안 고양이를 떠올리던 당시, 유전병에 대한 주의 없이 마구 새끼 고양이를 생산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을 것이다. 흔히 경매장, 공장이라 부르는 전문업자들은 물론이고 품종묘 브리더의 캐터리(**)나 가정분양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일부 페르시안 고양이 캐터리에선 보유한 고양이가 PKD에 안전하다(PKD-free)는 것을 내세운다. PKD는 초음파·유전자검사 등 비교적 간단한 검사로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문 브리더라면 고양이들의 유전질환을 확인해, PKD 보인자는 번식하지 않도록 하는 게 당연하다. 스코티시폴드는 이제 유전병의 위험이 잘 알려져서 최소한 귀가 접힌 고양이들끼리의 교배는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유전병이 비교적 잘 알려진 스코티시폴드와 먼치킨 고양이

내 소중한 고양이가 신장이 망가지는 유전병을 갖고 있다니 걱정스럽긴 했지만 신장질환의 심각함을 잘 모르던 시기라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다니는 동네 동물병원에서 정기적인 추적관찰을 하기로 했다. 사실 PKD가 특별한 처치를 할 수 있는 병은 아니다. 다만 신장이라는 장기의 부담을 덜 수 있게 유산균과 오메가3 등 보조제로 더 빨리 관리해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미는 내 고양이가 된 뒤 닭고기를 위주로 생식을 했다. PKD 진단 이후에도 레시피에 변화 없이 뼈가 들어간 생식, 즉 인(phosphorus) 함량이 높은 생식을 했는데 후회하는 부분이다. 신장 기능에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엄격하게 인 섭취를 제한할 필요까진 없었겠지만, 고(高)인 식단이 좋을 리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신장 피질을 덮은 낭포는 꾸준히 많아지고 커졌는데 아이의 활력에 차이를 느끼진 못했다. 난 미미가 참 건강하다 느꼈는데 돌아보면 아픈 것을 숨기는데 일가견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열 살이 넘어가면서 1년에 한두 번 심한 감기(허피스)로 항생제를 먹었고, 호흡기 약물을 처방받아 집에서 네블라이저(호흡기에 미세한 분무 형태로 약물을 뿌려주는 장치. 심한 비염이나 기관지염, 폐렴, 천식 등이 있는 어린이나 노인환자들이 많이 쓴다)를 해주곤 했다.


2017년 11월 검진에서 마침내 만성신부전(CKD) 2기 진단을 받았다. 크레아티닌(Creatinin) 수치는 정상범위(reference) 안에 있었지만 번(BUN) 수치가 50대였다. 바로 규모 있는 동물병원으로 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입맛이 전 같지 않아 남긴 밥을 내가 쫓아다니며 떠 먹인 지 오래였고, 생식을 하기 때문에 거의 전혀 먹지 않던 물을 스스로 마시기 시작한 지도 좀 됐다.


한 번은 욕실에서 소리가 나 달려갔더니 변기 위로 올라가 물을 먹다가 뒤뚱하고 떨어진 거였다. 너무 귀여워서 끌어안고 핀잔을 줬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유전병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징후가 전형적인 신부전 증상임을 알아차렸을 텐데 바보 같았다. 노묘 반열에 오를 나이(13년 5개월)니 입맛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물을 찾아 먹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반려인의 무지는 나중에 아이를 보내고 나서 커다란 후회와 죄책감으로 남는다)


식욕부진과 음수량 증가(다음 多飮), 배뇨량 증가(다뇨 多尿)는 신장 기능이 나빠졌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신호다. 또 고양이는 아픈 것을 숨기는 동물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아픈 개체로 보이면 야생에서 공격을 받기 쉽고, 서열싸움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통증을 숨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그간 기특하게 일해 줬던 신장이 슬슬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른바 ‘촉진’이 가능할 만큼 신장 모형에 변형이 있음을 알게 됐다. 흔히 2차 병원(***)이라고 하는 곳에서 정밀 초음파를 진행하니 신장의 크기가 정상보다 확연히 크고, 신장 피질을 덮은 낭포의 개수와 크기도 처참했다. PKD가 CKD로 진행되면서, 즉 신장 피질을 뒤덮은 낭포로 결국 신장 기능이 망가지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다.


만성신부전 진단 직후 생식 레시피를 저(低)인 함량 레시피(****)로 바꿨다. 신부전을 앓는 사람도 인과 단백질을 제한하는 것이 식이의 기본이다. 주치의가 생식을 끊고 엄격한 단백질 제한 식이를 권고했지만 처방식 사료와 습식을 간식처럼 먹이고 생식은 계속했다.


고양이는 의무적인 육식동물이다. 요즘 신부전 환묘 관리 추세는 수치상 2기(*****)까지는 단백질 제한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수의학의 수준도 눈부시게 발달했다고 하지만 동물별, 분야별 편차가 크다. 반가운 것은 최근 들어 ‘고양이 본래적’ 수의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고양이 신부전 케어에 대해 과거와 다른 다양한 논의들이 있고, 단백질 제한을 완화하는 쪽으로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그런 추세를 알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생식을 좋아해 끊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난 뒤 생식에 대한 확신을 잃고 한동안 극단적인 저단백, 처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크게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또한 신부전 환묘용 고양이 유산균, 사람용 유산균 몇 가지 종류를 돌아가며 급여했다. 원래도 적극적으로 사랑 표현을 하는 편이었는데, 진단 후에는 더 많이 놀아주고 더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미미가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 없으니까.


2019년 5월 초, 종종 앓던 허피스 증상이 심하고, 아이 기력이 전 같지 않은 느낌이라 조금 지켜보다 병원에 데려갔다. 바로 달려가야 했지만 두려운 마음과 바쁘다는 핑계로 내원을 며칠 미뤘다. 그리고 그로부터 석 달을 투병하고 아이는 별이 되었다.


노묘 혹은 중증 환묘의 말기 케어는 대개 마지막 한두 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당시 매일매일 아이 상태가 너무 나빠져 절망하는 날이 많았다. 하루 만에 어떻게 복수가 이렇게 많이 찰 수 있지, 하루 만에 어떻게 걸을 수 없게 됐지, 하루 만에 왜 목을 가눌 수 없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믿기지 않아 원망스러운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돌아보면 이 짧은 삶을 살다가는 아름다운 동물에게 하루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다. 고양이의 나이를 사람 나이로 환산할 때, 통상 성묘가 되는 1살까지를 인간의 20살로 치고, 이후 한 살에 4를 곱해 계산한다.


미미는 만 15살을 꽉 채웠으니 1*20 + 14*4=86살 이런 식이다. 임종에 접어든 사람 노인도 하루 이틀 만에 상태가 확확 꺾이곤 한다. 하루면 고양이들에겐 인간의 나흘과 같다. 중증 환묘의 건강 상태가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미가 본격적으로 투병한 게 석 달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딱 1년을 앓고 간 셈이다. 보호자에겐 야속할 만큼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생각에 이르러서야 아이가 최선을 다해줬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 작은 귀가 반쯤 접힌 깜찍한 외모를 가진 스코티시폴드 고양이의 귀 모양은 유전병인 골연골 이형성증 때문이다.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변형된 연골이 귀를 지탱하지 못해 접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돌연변이 질병이 귀뿐 아니라 다리, 꼬리 등 다른 관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영국 최대 고양이 품종 등록 기구인 GCCF(Governing Council of the Cat Fancy)는 이런 이유로 일찍이 스코티시 품종이 발견된 초기부터 스코티시폴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 것을 거부했다. 품종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해당 고양이를 번식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브리더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귀여운 외모 때문에 평생 관절염으로 고통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도 인위적으로 스코티시폴드 고양이를 번식했다. 반려인들은 스코티시폴드 고양이가 건강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귀여운 외모에 반해 입양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


스코티시폴드의 유전병은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근본적인 예방법은 번식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스코티시폴드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고양이 품종 중 하나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스코티시폴드 번식과 사육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7년 스코티시폴드 고양이 번식과 양육을 금지 또는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선 이와 관련한 별다른 논의가 없고, 교배 당사자들이 귀 접힌 폴드 고양이와 유전질환이 없는 다른 종의 고양이(브리티시 숏헤어, 아메리칸 숏헤어 등)를 이종 교배하는 정도가 다다. 그러나 이는 발병 가능성을 낮추는 것일 뿐 유전병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귀 접힌 고양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폴드-폴드를 무분별하게 교배하는 업자들, 유전병에 대한 무지로 가정에서 폴드-폴드 교배를 시키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영국수의사협회는 스코티시폴드 번식과 사육을 멈출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영국수의사협회(British Veterinary Association)는 2017년 4월 스코티시폴드 생산을 멈춰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구드런 라베츠(Gudrun Ravetz) 영국 수의사협회장은 "스코티시폴드 고양이 모든 개체가 갖고 있는 유전병은 관절염처럼 평생 치료가 불가능하고 고통스러운 질병을 일으킨다"며 "귀엽다는 이유로 이런 고양이를 원하는 것은 애완동물의 삶의 질보다 외모를 우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해 보다 진전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특정 품종의 고양이를 전문적으로 번식하는 곳


***동물병원은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과 달리 1~3차, 즉 동네의원으로 시작해 지역 종합병원, 상급 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공식적인 분류 체계가 없다. 수의사 1~2명이 운영하는 소규모 동네 동물병원과 달리 더 정밀한 의료장비를 갖추고, 24시간 운영하는 규모 있는 동물병원을 편의상 2차 병원이라고 부르는데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이런 동물병원은 대개 수의사법이 규정하는 동물진료법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의무적 육식동물인 고양이는 먹거리가 풍부한 자연 상태에서 사냥한 동물의 살코기는 물론 뼈와 내장, 가죽, 털 등을 모두 먹어 필요한 영양소와 수분을 섭취한다. 생식은 집고양이에게도 이런 식단과 가깝게 주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란 생각에서 시작된 식이다. 바삭하게 말린 건사료 보다 손이 많이 가고 급여도 까다롭지만 질 좋은 영양소와 수분이 풍부하다.


고양이가 자연에서 사냥할 수 있는 가금류나 작은 포유류 동물(주로 닭, 오리, 꿩, 메추리, 토끼 등)을 손질해 뼈와 내장을 통째로 갈아 만든다. 여기에 영양제를 곁들여 칼로리와 필요 영양성분을 채워주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 생식에 들어가는 뼈는 칼슘과 미네랄의 주요 공급원이지만 인 함량이 높다. 신부전 환묘의 경우 인의 섭취를 제한해야 하므로 인 함량이 높은 생뼈 대신 난각(eggshell), 골분(bone meal) 같은 별도의 칼슘 제재를 넣고, 부족한 미네랄은 영양제(chelate minerals)로 보충한 레시피를 활용한다.


*****아이리스 스테이지, 이어질 ⑦편 참고


이전 04화 따봉 고양이의 집사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