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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Jul 26. 2022

환묘 케어 : 시간-돈-열정의 삼박자 1

08 Ⅰ.슬픔에 대하여 ⑦-1

아픈 반려동물을 돌보는데 생각보다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아이를 정말 사랑해야 가능한데 사랑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길게는 약 2년, 짧게는 마지막 3개월 내 고양이가 투병하는 시간 동안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 말기로 갈수록 집중적으로 자원을 쏟아부어야 했는데 시간이 절대적이었고 열정과 돈 역시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환묘 보호자 대부분이 직업이 있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생활인이다. 한 손에 생활이라는 커다란 짐을 이고 또 다른 손엔 환묘 케어라는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하루하루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줄타기에 필요한 자원은 크게 시간과 돈, 열정. 이 자원들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겨우 아이를 돌보고 일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아이 건강상태가 갑자기 나빠진다거나 질환이 말기에 다다르면 가까스로 유지한 일상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1. 시간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데 가장 중요한 자원을 꼽자면 단연 시간이다. 신부전, 심장병, 췌장염, 당뇨, 종양 등 만성질환을 앓는 고양이들은 상시적으로 보호자의 돌봄을 요구한다. 특히 병세가 나빠지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여차하면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현실적으로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있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홈 CCTV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다.


말기가 아니더라도 중증 질환을 앓는 동물을 일상적으로 돌보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비슷한 수준의 질환을 앓는 사람 환자보다 더 손이 많이 간다고 보면 된다. 말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니 보호자가 더 섬세하게 동물의 상태와 요구 등을 파악해야 한다.


돌봄이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게 아니다. 진행성 불치병을 앓는 동물들에겐 병의 진행을 늦추고 합병증을 막기 위해 많은 약과 보조제가 몸속으로 들어간다. 만성신부전의 경우 필수로 독소 배출을 돕는 유산균과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를 낮추는 약제(크레메진·레나메진 등), 인 흡착제, 오메가3 등 최소 서너 종류, 많게는 열 종류 안팎의 약과 보조제가 필요하다.


이 중에는 공복에 먹어야 하는 약이 있고, 식사 후 일정 시간 뒤에 먹어야 효과가 극대화하는 약이 있다. 약 사이에 간섭효과가 있어 시간 차이를 두고 투여하지 않으면 효과가 말짱 꽝인 약도 있다.


투약은 먹는 문제와 함께 간다. 신부전이 말기로 진행되면 식욕과 함께 소화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씩 여러 번 환묘용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사람 중환자와 비슷한데 더 어려운 것도 같다. 떠먹이는 것까지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단계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강제급식(강급)을 시도하는데 주사기, 젖병 등 다양한 도구를 시도해서 보호자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이 받아들이는 방식을 찾는다. 그래도 먹이는 게 어렵다면 비강이나 식도에 급식용 튜브를 장착한다.


투약과 식사 일정을 채우는데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 사이 탈수를 막고 전해질 불균형이 오지 않도록 수액 처치를 하는 것도 신부전 환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의 배설물 형태와 횟수, 양을 체크하고 움직임이나 특이 징후를 살피는 것도 필수다. 이 모든 것은 기록하는 게 좋다. 기록과 함께 사진과 영상을 찍어두면 주치의와 상담할 때 도움이 된다. 아무리 주의 깊은 보호자도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동물의 상태를 알아채기는 여간해서 어렵기 때문에 사진과 영상은 시간에 따른 질환의 경과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신부전 환묘 보호자 대부분이 집에서 피하 수액 처치를 한다. 비용, 내원 시간 등을 줄이기 위한 측면과 함께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를 상당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생에 의료 처치라고는 상처에 약을 바르거나 밴드를 붙이는 정도가 다였던 보통의 사람들이 자기 고양이에게 수액을 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한동안 이틀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췄다. 그러다 매일 가야 하는 상황이 오자 떠밀리듯 집에서 수액 처치를 시작했다. 그전부터 집에 수액 처치를 위한 준비를 해뒀지만, 몇 번의 시도에서 실패한 뒤 겁이 나서 엄두를 못 내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니 하게 됐다. 신부전 환묘 보호자들이 겪는 흔한 간병 경로랄까.


처음엔 정말 벌벌 떨면서 아이를 찔렀고, 아이도 굉장히 당황했는데 놀라운 것은 금세 피하 수액 처치가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절대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해내고, 그 일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드물게 찾아오는 간병의 기쁨과 보람이지만 마음이 무거운 보람이다. 수액 처치 방법은 병원에 따라서 수의사가 직접 지도해주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유튜브나 환묘를 돌보는 보호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활발히 공유되고 있으니 노하우를 참고할 수 있다.


다만 수액 주기와 투여량은 반드시 주치의와 상담한 뒤 진행해야 한다. 짧은 시간 다량의 수분이 몸속에 들어가는 것이라 폐와 심장 등에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액으로 영향받을 기저질환은 없는지 살펴야 하고, 병의 진행상태에 따라 주기와 투여량을 조정해야 한다. 또한 피하수액을 하면서 아이가 마시는 물의 양에 변화가 있는지 살펴 음수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동물의 생명과 직결되는 투약이나 처치 등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에 의존하거나 누군가의 조언, 권유에 의존해선 절대 안 된다. 아이의 질환과 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와 지속적으로 상담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미미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시작해 곧 일주일에 두 번 수액을 맞다가, 이틀에 한번, 하루 한번 수액처치를 했다. 말기로 가면서 수액 양이 늘자 폐와 심장에 물이 차서 같은 양을 하루 두 번으로 나눠야 했다. 또 피가 묽어지면서 빈혈이 왔지만 탈수를 막기 위해 피하수액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철분제를 투여하며 관리했다.


이런 일들 대부분이 보호자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도 보호자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입원을 하면 간병 3대 자원 중 시간과 열정을 많이 아낄 수 있다. 급성신부전으로 공격적 치료가 필요하거나 외과적 처치가 요구되는 상태라면 입원은 피할 수 없다. 만성신부전 역시 수치가 갑자기 오름세라면 대개 입원을 해서 정맥 수액 등으로 수치를 떨어뜨린 뒤 다시 집에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급적 입원을 하지 않고 아이를 돌보려고 했다.


말기로 접어들면서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일지, 아이에게 필요한 처치가 무엇일지 득실을 저울의 두 팔에 올리고 고민을 계속해야 했다. 아픈 동물을 돌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매일 어마무시한 돌덩이를 밀고 산꼭대기로 오르는 시지프스처럼 일상의 무게가 보호자를 짓누른다. 병세에 대한 두려움, 차도가 없는데 대한 절망 등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책감에 시달린다. 아이를 돌보고, 하루를 정리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새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잠이 늘 부족하다. 존재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한편,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나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우주적인 기쁨과 보람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 아득하고 막막했던 시간들, 낯선 감정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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