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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Jul 29. 2022

<집사의 일기2>만성질환을 앓는 반려동물을 돌본다는 것

10 Ⅰ.슬픔에 대하여⑨


아이가 제 입으로 밥을 전혀 먹지 않은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이달로 만 열다섯 살 된, 만성 신부전을 앓는 내 아기,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의 고양이. 목화솜처럼 보드라운 털 결, 동그란 눈,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가진 사랑스럽고 귀엽고 한없이 예쁜 내 새끼.


그동안 한두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도 기적이고 또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많이 아프면서 나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다양한 역할과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다. 그중 유일하게 대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집사라는 정체성임을 이번에 알았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은 내게 돌아올 어떤 이익을 포기하거나 또는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온전히 반려인, 나의 몫이다.


내가 내리는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온전히 이 아이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영역 동물이란 특성상, 또한 만성질환이라 홈 케어를 할 수밖에 없다. 입원 처치나 전문 시터도 잠시 도움이 될 뿐 일상적으로 내 시간과 열정이 이 아이에게 가야만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먹는 문제다. 제 입으로 먹지 않아 음식과 물, 약 등 모두 강제로 먹인다.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기 때문에 강제 급식은 원칙적으로 두 시간 단위로 하고, 공복이 길어지면 토를 하기 때문에 아무리 길어도 다섯 시간을 넘지 않는다.


주로 소화가 편하고 영양균형이 잡힌 신부전 환묘용 유동식을 먹이는데,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하루 한두 번은 다른 걸 준다. 신장질환용 처방캔을 갈아 그때그때 필요한 보조제와 약을 넣어서 주는데 음식 준비(주로 곱게 갈기)부터 먹이기, 뒤처리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또 단순히 아이 입을 벌려 주사기로 음식물을 쏴주는 게 아니다. 고양이다. 살살 달래 가며 아이를 먹여야 한다. 정말 먹기 싫으면 삼키지 않는다. 또 스트레스받으면서 먹는 게 잘 소화될 리 없으니 최대한 아이의 기분을 북돋으며 먹여야 한다. 그래도 잘 먹지 않거나 어렵게 먹인 것을 다 토하면 정말 힘이 빠진다.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왼손 엄지가 퉁퉁 부어있다. 그동안 대부분 투약을 밥이나 간식에 섞어 줬는데 더는 알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며칠간 시도하다 어젯밤엔 결국 이빨 자국 여섯 개만 엄지에 얻고 약은 먹이지 못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못 먹여서 걱정되고, 내가 밉고, 그런데 아프고. 나날이 잇몸과 혀가 창백해지는 아이를 보면서 어떻게든 철분제를 먹여야 하는데 정말 애가 타서 죽겠다.


아이는 요즘 하루 서너 번 배변 실수를 한다. 보름 전부터 평생 하지 않던 배변 실수가 시작됐다.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오늘도 이불과 침대 패드, 침대 커버를 다 빨았다. 창밖에 눈부신 날씨를 곁눈질하며 쉴 새 없이 세탁기를 돌렸다. 힘들다는 생각을 잠깐 하면서도 그러면 안돼, 아이가 옆에 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워, 황급히 생각을 바꾼다. 그러면서 자책도 하게 된다.


그래도 이런저런 노하우가 생기고는 있다. 또 수월해진 것은 하루 두 번 하는 피하수액. 처음엔 너무 막막해서 아이를 안고 왈칵 울기도 했는데 이제 아이도 나도 아주 편하게 하고 있다. 알약 먹이기도 그렇게 돼야 하는데 될 수 있을까... 허들 한 개를 넘으면 생각지 못한 다른 허들이 기다리고 있다. 끝없는 장애물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케어 말고 다른 문제들도 있다. 아이를 돌보면서 사람들과 관계가 무척 힘들다. 어떤 종류의 관계든 전만큼 충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정기적인 모임에 나타나지 않고, 약속 잡는 걸 회피하며, 잠시 만나더라도 늘 바쁘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다. 최근 한두 달간 아이가 크게 아프면서 나에게 책임과 의무가 있는 일들에 엮인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다투기도 했다.


"고양이가 아파서요"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유난 떠는 사람, 혹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 '얼마나 아프다고 저러는 거야'라고 궁금해하거나 혹은 뒷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참 그렇다. 어쩔 수없이 얘기할 때는 커밍아웃하는 기분이 들어서 민망할 때가 있다.


이달 들어 저녁 약속은 딱 한번, 피할 수 없는 자리라 참석했다. 오랜만에 한껏 사회인의 소양을 과시한 뒤 돌아오는 길, 너무 마음이 급하고 아이에게 미안해 집에 다 올 때쯤 참았던 눈물이 났다. '덕후'라고 할 만큼 빠져 있는 운동이 있다. 평일 틈틈이 또 주말이면 늘 반나절 이상 강도 높게 운동을 했는데 전혀 못하고 있다. 그게 참 팔자 좋은 시절이었구나 아득하다.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비교적 자유롭게 일하고 있어서 그나마 아이를 돌볼 수 있다. 당장 놓을 수 없는 일, 최소한의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을 다 아이에게 쏟고 있다.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넘치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일의 결과물도 늘 만족스럽지 않다. 늘 잠이 부족하고 마음이 조급하다. 풀타임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케어할 수 있었을까. 또 가능한 방법을 찾아냈을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유한 적은 없었지만 큰 부족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중병을 앓는 가족이 있으면 가세가 기울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것은 아주 오래전 한국이 후진국이던 시절, 혹은 드라마에서나 보는 불행이라 생각했다. 다소 집에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나라가 보장하는 복지체계 안에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일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게 정말 운이 좋았던 거다. 가족 고양이가 크게 아프니 그게 먼 일이 아니구나 느낀다. 나는 지금 가족이라 썼다. 그렇다. 이 아이는 완벽하게 나의 가족이다. 종(種)이 다르다고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일상을 나누고 서로 삶의 의지를 북돋으며 하루하루 살아왔고, 또 앞으로 계속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겪어보니 돈문제가 정말 쉬운 게 아니다. 우리 의료보험 체계 안에서 인간은 몇천 원 정도를 내면 할 수 있는 간단한 피검사나 엑스레이 촬영, 초음파가 동물들에겐 눈 깜짝할 새 수십만 원이 청구된다. 높은 수준의 치료나 선택적 진료가 아니라,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검사조차 너무나 비싸다. 이건 문제가 있다. 여기에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 처방용 음식부터 보조제, 약값 등도 만만치 않다. 집사의 통장은 텅장이 되어 가고... 동물권이 곧 인권이구나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한다.


인간 수준의 공공의료보험을 요구했다간 돈 없어 치료 못 받고 죽는 사람도 많은데 배부르게 고양이 타령이나 하고 있단 비난부터 나올 것이다. 하지만 운이 아니라 누구든 인간적 권리,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다. 그런 차원에서 반려동물 의료보험(복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이제 다섯 가구에 하나 꼴로 반료동물을 키운다는데 이 아이들이 단지 반려인의 행복만을 위한 존재는 아니다. 반려동물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행복이 곧 사회의 행복이기도 하니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제 입으로 먹으려 하지 않고, 매번 배변 실수를 하는 고양이, 그루밍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고양이에게 반려인의 욕심으로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힘든 고비를 넘어갈 때 잠시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아침 첫인사를 건네면 여전히 그릉그릉 노래를 불러주고, 억지로 먹긴 하지만 맛있는 것은 더 잘 받아먹는다.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한 자리를 찾으려 들고, 건강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꼬리와 울음으로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한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내게 전해지고, 몸속에 따뜻한 피가 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


앞으로 신장은 얼마나 더 나빠질지, 언제 다시 담관이 막히고, 빈혈 수치는 어디까지 떨어질지 불안하고 두렵다. 아이가 정말 아파하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과연 내가 적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날이 이렇게 눈부신데 말이다. 일을 해야 하는데 집중이 안돼 넋두리만 잔뜩 했다...


2019.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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