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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Jul 27. 2022

환묘 케어 : 시간-돈-열정의 삼박자 2

08 Ⅰ.슬픔에 대하여 ⑦-2

2. 돈

신부전은 돈이 많이 드는 병이다. 신부전뿐만이 아니다.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동물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이 큰돈이 들어간다. 공적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 기초적인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 실시하는 최소한의 혈액검사(혈청화학검사)가 10만원 안팎이다. 사람은 동네 보건소에서 몇 천 원을 내면 할 수 있는 검사인데 동물은 최소 열 배의 비용을 줘야 한다. 간, 신장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을 파악하는 혈청검사 외에 혈구검사, 전해질 검사 등을 추가하면 비용이 두배, 세배로 불어나기 시작한다. 이밖에 소변검사나 SDMA검사, 초음파, CT(컴퓨터 단층) 촬영 등 동물의 건강상태에 따라 다양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람 의료비용과 비교하면 최소 2~3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입원 또는 수술을 하면 순식간에 수십, 수백 만원이 청구된다.


약값도 비싸다. 동물용 약이 따로 개발된 제품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람이 복용하는 약을 용량만 달리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같은 약값이 적게는 2~3배에서 100배가 넘기도 한다. 나는 말기에 아이 인 수치가 폭등해서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인 흡착체(알마겔)를 급히 처방받았는데 3일 치에 약 2만 5000원을 줬다. 알마겔은 사람 위장질환에 흔히 처방되는 약인데 보험수가가 적용되면 한알에 100원 정도 하는 약이다. 보험수가를 적용하지 않아도, 즉 비급여로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산다고 해도 한알에 몇백 원이면 된다. 동물병원의 약값 청구에도 근거가 있겠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 때가 많았다.


동물병원 약값이 이렇게 터무니없으니 신부전을 앓는 지인들을 통해 필요한 약을 구하는 보호자들도 있다. 대개 사람과 같은 약을 쓰기 때문이다. 많은 보호자들이 위법, 탈법의 위험을 무릅쓰고 동물병원 처방 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 약을 구한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에 가서 약을 구하는 집사들도 있다. 신부전 환묘에게 필수인 피하수액 처치에 필요한 수액 역시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보호자들은 저렴한 값에 안정적으로 수액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


보조제도 상당히 비싸다. 신부전 환묘에겐 신장 기능을 도와주는 보조제, 신장의 섬유화를 막고 각종 합병증을 늦추는 약제나 보조제가 필수다. 유산균이나 오메가3 등 아주 기본적인 보조제만 구비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신부전 환묘용 처방식이나 간식도 일반식보다 비싸다. 병이 깊어지면서 입이 짧아져 평소 먹던 음식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애가 타는 보호자는 다양한 먹거리를 사들이게 된다. 시장에 수입 유통되는 처방식과 환묘용 간식은 선택의 폭이 아주 좁기 때문에 해외 직구 등을 하게 되는데 그러기 시작하면 지갑은 더 크게 열린다.


아이를 보내기 전 석 달 동안 쓴 돈을 계산해 보니 대략 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병원비가 절대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고 보조제, 처방식, 간식 등도 수백만 원은 우습게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이가 입원을 해야만 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입원 또는 수술을 했다면 병원비가 최소 수백만 원은 더 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아이를 돌보느라 투입한 시간의 기회비용, 그러니까 내가 포기한 경제적 이득을 합치면 계산서는 더 불어나게 된다.


‘펫택스(pet-tax)’라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 전용 제품에 대해 사람이 쓰는 물건보다 훨씬 비싼 값을 요구하는 세태를 일컫는 말이다. 아픈 동물의 보호자들은 이중 삼중의 펫택스를 지불해야 한다.


유리장 안에 작고 귀여운 어린 동물들을 진열해 둔 펫샵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진열장 유리에 이런 문구를 크게 적어두면 좋겠다. ‘지금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이 병에 걸리면 수십, 수백만 원이 눈 깜짝할 새 청구됩니다. 마음은 물론, 당신의 지갑은 준비가 되셨나요?’, ‘동물은 당신보다 일찍 죽습니다. 제 수명을 누린다 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년엔 병에 걸려 누군가 돌봐줘야만 합니다. 고생해 번 돈을 아픈 동물을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쓸 각오가 되어 있나요?’


3. 열정

지식 없는 열정은 독이 된다. 반려동물이 앓는 질환에 대해 충분하고 정확한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돌보면서 정말 어려웠던 점은 내 결정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결정을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부전이 어떤 병인지, 그래서 어떤 처치와 관리를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없다. 사람도 본인의 증상이나 기분 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동물은 오죽할까. 보호자가 유심히 관찰하고 수의사와 함께 치료방법을 의논하는 수밖에 없다. 의논, 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수의사의 치료 방향을 맹신하거나 의사가 요구하는 대로만 끌려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동물을 돈벌이로만 생각해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의사도 드물게 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무턱대고 보호자를 겁주는가 하면, 말 못 하는 동물을 상대로 자신만만하게 임상실험하듯 다루는 의사도 있다. 의학적 지식이나 의술, 인성이 훌륭한 의사라도 동물의 질병과 노화, 삶의 질에 대한 철학과 판단이 보호자와 다를 수 있다. 주치의가 제시하는 선택지를 꼼꼼히 고려하되, 보호자가 주도권을 잃지 않고 치료에 임해야 한다. 의사의 진단, 권하는 치료에만 아이를 맡겨둘 수 없다. 대안은 없는지 있다면 왜 지금 치료방법(외과적 처치, 복약 등)으로 결론을 내린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막대한 진료비를 내는 보호자에겐 선택 가능한 옵션 중 최선의 치료를 받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아픈 동물에겐 권리이고 보호자에겐 책임일 것이다.

 

믿을만한 병원과 의사를 찾고, 주치의와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름이 좀 알려진 동물병원,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동물병원은 아픈 동물로 넘쳐난다. 의사들은 무척 바쁘고 내 아이에게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질환에 대한 진단, 임상 반응에 대한 해석은 전문가에게 맡겨야겠지만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보호자인 나다. 보호자는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양이가 가진 질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 다양한 정보를 섭렵해야 한다. 반려 고양이가 신부전을 앓고 있거나 추후 만성 신장 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 소견이 있다면 더 적극적인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반려 고양이 인구가 늘어나고, 2000년 초반 페르시안 고양이 입양 열풍을 지나 이제 노묘를 돌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각종 지식을 갖출 수 있는 참고자료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많다.


질병에 대한 이해는 동물 내과학 같은 수의학 학술서를 보는 것이 좋다. 여건이 된다면 수의학 저널이나 학술논문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요즘엔 고양이를 비롯해 반려동물의 주요 질병에 대한 백과사전식 정보를 제공하는 책도 많이 출간돼 있고, 최신 정보라고 할 만한 논문이나 해외 기사의 내용을 발 빠르게 공유해주는 고마운 이들도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과 정보를 나눌 인터넷 커뮤니티도 큰 도움이 된다. 신장질환 환묘를 케어하는 보호자들 대부분 네이버 카페 ‘신장질환을 이긴 고양이들’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데 수의사 뺨치는 지식과 정보를 가진 분들도 있다. 구하기 힘든 먹거리나 보조제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정보도 올라온다. 값비싼 병원비에 각종 지출로 집사의 통장잔고는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데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이가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입에 맞는 환묘용 간식을 찾는 것도 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곳에서 환묘 집사들은 서로 노하우를 나누고 의지를 북돋으면서 고독한 간병 생활에 큰 힘을 주고받는다.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연대감은 엄청난 것이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익명의 집사들과 우정을 나누는 드문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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