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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Jul 19. 2022

<집사의 일기1>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02 Ⅰ. 슬픔에 대하여 ①

죽음을 생각한다. 한 존재의 소멸, 무가 되는 것, 완전히 사라지는 것. 모든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내 고양이도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었다. 내 소중한 고양이가 죽었다.

 

내사랑 미미, 2004년 6월 28일생 나의 고양이가 15년 하고 1개월을 더 살고 무지개다리 넘어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보호자로, 언젠가 삶이 다할 똑같은 생명체로 여러 감정을 맛봤다. 굉장히 날 것의 감정들이 휘몰아쳤고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것들도 있었다.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흔한 유전병 다낭성 신장질환(PKD)을 갖고 태어났으며, 2017년 11월 만성신부전 2기 확진. 관리를 그럭저럭 해오다 2019년 5월 초 본격적인 투병 시작. 식욕부진과 활력 저하, 종종 앓던 허피스 증상이 심해 내원했더니 수치가 어느덧 2기에서 3기로 진입했고 체내 염증반응이 심했다.


5월 한 달은 좋아지고 나빠지고를 반복하다 6월 초 담관이 막혔다. 여러 장기가 복합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파도가 휘몰아치는 날들을 지나 2019년 7월 28일 아이는 내 품 안에서 별이 됐다.


아이가 탄 열차를 되돌릴 수 없겠다 깨달은 것이 7월 20일, 그러니까 아이를 보내기 8일 전이다. 의학적 진단과 보호자의 감을 종합한 결론이었다. 그전까지 병원이 권하는 모든 검사와 처치는 적극적으로 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7월 20일 상황을 인정한 뒤 고민했다. 아이는 곧 돌아올 수 없는 강 앞에 설 것이고, 도강의 여정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보호자인 내가 열차의 멈춤 버튼을 눌러주자. 더는 아이가 힘든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이다. 아이도 원할 것이다...


밥은 떠먹여 줘야 먹을 수 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삶이 고양이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인간에게 의탁한 하루하루, 그저 연명하는 날들이 가장 고양이다웠던 이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치의와는 나름 신뢰를 쌓아왔고, 내 생각을 전하니 격려해줬다. 주치의는 만성신부전을 앓던 14살 반려견을 자기 손으로 보낸 경험이 있고, 절대 나쁜 선택이 아니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안락사라... 보호자인 내가 마지막이 두려워 아이를 너무 빨리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괴로운 것을 보는 나 역시 고통스러워서, 또 아이를 돌보느라 전혀 일상을 살지 못하고 있어서 아이의 죽음을 앞당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죄책감이라 생각했다. 미미야 미안해, 우리 사랑을 그렇게 폄하해선 안 되는데 그치?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데려가는 날 아침을 먹일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이동장이 아니라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고 싶다. 그렇다면 운전은 누구에게 부탁을 할까, 처치실에는 누구와 함께 들어갈 것인가 등등 다 정해두긴 했지만 무엇보다 병원에 간다는 것이 나를 주저케 했다. 아이가 마지막에 정말 병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의식이 있는데 병원 가는 길을 모를 리 없고, 가서 처치실에 있는 동안 굉장한 공포를 느낄 것이 분명했다.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며칠 하다가 아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양이 다움 혹은 미미 다움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아이는 비록 먹여줘야 했지만 밥을 잘 먹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 역시 상대적이다. 아이는 마지막 날 세 번의 응가를 했는데 마지막 응가까지 패변패드를 두어 번 긁어 고양이의 일을 해냈다. 내가 아이를 옆에 두려는 욕심에 고양이 다움을 빼앗고 있다는 죄책감은 버리기로 했다.



흔히들 존엄한 죽음을 맞고 싶다고 한다. 나도 존엄하게 죽고 싶다. 그렇다면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 고양이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다가오는 확실한 죽음 앞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자연스러운 소멸. 생명체의 죽음은 '순간'이 아닌 '과정'이다. 안락사, 그 청결한 느낌을 주는 죽음 대신 아이가 스스로 삶을 완결 짓도록 하자. 나는 그저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사람일 뿐이다.


미미야 미안. 엄마는 이것이 태어난 존재의 일이라고 생각해. 생명으로 태어난 게 업이다. 모든 삶이, 생명체가 짠하다는 것, 그런 연유일 거야. 네가 생명으로 태어난 업을 다하되, 다만 그 과정이 외롭거나 너무 고통스럽지 않도록 내가 도와줄게. 옆에 있어줄게. 그것이 엄마의 일이다. 너와 나의 시간들, 너와 내가 만들어 온 언어는 이런 것이다 아가야.


임종을 준비하는 마지막 며칠 미미가 좋아했던 친구들을 불러 아이와 인사하도록 했다. 미미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중 한 명은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손길이 그저 좋았는지 그날 나에게는 한 번도 해주지 않은 그릉그릉을 친구가 만져주는 두어 시간 내내 했다. 질투도 났지만(인간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 이런 상황에도 질투를 한다) 아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내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 그거면 된다.


마지막 나흘 동안 조금 했던 바깥일도 중단하고 아이와 꼭 붙어 보냈다. 행복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병원을 가지 않게 된 뒤로 한결 편안해진 아이는 내게 표정과 몸짓, 꼬리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중엔 엄마 지금 나 괜찮아요, 행복해요 하는 찰나도 있었다.


미미는 마지막 날 오전까지 밥도 잘 받아먹었다. 내가 해준 생식이 마지막 식사였다(정말 고맙다 아가야). 한 시간쯤 뒤에 레날 드링크(신장질환 고양이를 위한 음료수)를 좀 먹였는데 원치 않아해서 물렸더니 30분 뒤 마신만큼을 토했다. 토는 8일 만에 처음이라 긴장했는데 그러고 나서 대소변을 계속 쏟아냈다. 기력이 확연히 떨어지고 눈빛이 탁해졌다. 거의 다 온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임종 두어 시간 전, 미미의 마지막 꼬릿 짓.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느라 일어났더니 아이가 꼬리를 한번 탁 내려쳤다. '나 지금 힘든데 어디를 가는 거냐옹 집사!' 목격한 친구의 증언으로는 딱 그 뉘앙스였다고 한다. 기특한 내 새끼의 마지막 의사표현을 듣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임을...


아이의 힘든 숨은 점점 가빠졌다. "미미 잘 살았어, 그만하면 좋은 묘생이었어. 이제 치즈 냄새를 따라 가자. 우리 아가, 네가 좋아하는 분홍 털공을 따라가면 돼. 엄마는, 엄마는 너를 응원해 아가야. 사랑해 내 새끼. 잘 살았어 우리 아기, 최고의 사냥꾼, 최고의 고양이, 너무 잘하고 있어, 내 새끼 최고 최고..."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이런 소리를 백번쯤 한 것 같다. 굉장히 애틋한 말이었지만 써놓고 보니 좀 멋쩍다.


아이를 보내고 나면 어떻게든 후회가 남는다고 한다. 나 역시 후회가 없지는 않다. 마지막 숨으로 가는 몇 분간 많이 힘들어했다. 숨을 못 쉬는 고통, 얼마나 힘들까. 아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아 정말 끝이구나, 거친 깊은 숨을 한 숨 한 숨 힘겹게 뱉을 때 이성을 잃고 아이를 붙들고 숨을 불어넣는 나를 발견했다. 곧 놓긴 했지만, 아이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앞서 덜컥 손과 입이 먼저 간 것이다. 잠시지만 짐승처럼 울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도 아이만큼 힘들었다.


마지막까지 아이는 정말 예뻤다. 내 앞에서 죽어간 내 소중한 고양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여정이 존엄했는지 당사자 의견은 들을 수 없으니 모르겠다. 다만 아이가 극한 통증을 동반하는 질환을 앓았다면 내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다행히 미미는 고통이 큰 마지막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집에서 약물처치를 할 수 있었다면 대안이 됐을 것 같다. 여러 문제가 있어 허용되지 않고 있을 테지만.


가장 소중한 존재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는 경험, 정말 특별했다. 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고, 대견했고,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구나, 그 시간 동안 알게 됐다. 아무 조건이 없는 사랑, 무엇도 바라지 않는 사랑, 그저 아이가 살기를 아니 편안하게 삶을 완결 짓기를 바라는 온전한 마음.

아프지 마 아가야, 이리 누였다가 저리 누였다가, 귀엣말로 사랑과 응원을 속삭이다, 가슴이 뜯겨 나가는 것 같다가, 동시에 터질 것처럼 충만해지는 그런 감정. 짧은 잠에 드는 새벽, 내 고양이가 오늘 하루치 분량의 삶을 잘 살아냈다, 우리가 만들어 온 시간을 돌아보며 미미야 사랑해, 하고 속삭이던 날들.


고맙다 아가야. 나의 착한 고양이 미미, 내 착한 아기. 이만하면 지구에서의 시간은 괜찮았지? 네가 너무 보고 싶고 만지고 싶구나 내 털 덩어리 귀염둥이... 네 덕에 엄마는 조금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리고 예쁠 때 건강할 때를 지나, 늙고 병들고 손길이 필요할 때, 특히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손길이어야만 할 때, 사채 쓰듯 당겨다 쓴 행복한 날들의 채무 수표가 생각보다 빨리 날아온다.


고양이도 그렇게 아픈가, 묻는 사람이 있다. 물론이다. 사람 걸리는 병은 다 걸리고 고양이라 더 잘 걸리는 병이 있다. 신부전이 그렇다.


너무 많은 동물이 태어나고 쉽게 거래되고 버려지거나 죽는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게 어떤 일인지 알면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조장하는 사회를 내버려 둬선 안된다. 너무 비싼 병원비 역시 대안이 필요하다. 돈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삶을 다하는 동물들이 많을 것이다.


이건 동물을 넘어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석 달간 의료비를 비롯해 여러 지출을 감당하면서 돈이 없어 갖다 버리는 사람이 많겠구나 했다. 사람 가족도 버리는데 말 못 하는 동물쯤이야 너무 간단하니까.


노묘 반려자들 대부분 그렇겠지만 빛나던 20~30대를 함께 보냈을 것이다. 아이를 보내고 나니 청춘의 한 페이지가 뜯겨 나간 것 같다. 뜯긴 자리가 너덜너덜하고 공허하다. 상실감에 몸이 떨린다. 아이가 자주 웅크렸던 자리를 보고 울고, 밥 먹다 목이 메어 밥을 물리고, 이를 닦다가 울고, 물을 마시다 울고, 앉아서 울고, 일어나서 울고, 누워서 울고, 베개가 마를 날이 없다.


그런데 죽음은 나쁜 것일까. 죽으면 그만인데 죽은 존재에게 나쁠 게 뭐가 있을까. 그저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존재와 손을 놓게 되는 남은 사람들에게나 죽음이 안타깝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그런 생각도 했다. 죽음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겠구나...


인생의 한창때 암으로 힘들게 투병하다 삶을 마감한 누군가 한 말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존재의 소멸, 예정된 끝. 하지만 끝을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저녁 되면 배고플 텐데 점심을 먹어서 무엇하나, 그러진 않으니까.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묵묵히 산 것으로의 일을 할 뿐이다. 미미가 없는 세상, 그러나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잘 살 것이다.  


2019.7.30    


사랑하는 내 고양이 미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난 이틀 뒤, 쓴 글이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내 아이의 죽음의 과정과 방식에 대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고, 이 글을 쓰던 마음으로 지금도 아이의 기억을 등대 삼아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큰 변화도 있다. 죽음은 끝이라는 인식, 죽음은 한 존재의 소멸, 즉 완전한 무가 되는 것이란 인식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를 보내고 죽음을 탐구하다 죽음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극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죽음과 그 과정을 파고들면서 내가 쉽게 받아들였던 죽음을 둘러싼 관념들이 오해와 편견에서 기인했음을 알게 됐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이의 마지막을 더 담담히 함께 하며 잘 도와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내 작은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살던 대로 살았을 것이다. 이제는 아니다. 내 사랑스러운 고양이 미미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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