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프롤로그
환묘를 돌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다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그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한 집사는 아이가 떠난 날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인터넷에서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을 검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것이 가당키나 할까.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면 그런 것을 믿거나 행할 리 없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안됐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철이 없어도 어쩌면 이렇게 없을까, 조금 혀를 차는 기분으로 글을 넘겼다.
아이를 잃기 전이라 그랬다. 허탈하지만 나 역시 아이가 떠나고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시간여행’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부디 그런 것이 있다면, 제발 내 고양이가 살아있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이라니. 글쓴이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무슨 더한 생각이라고 못할까.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것은 그만큼 불가능에 호소하고 절망에 무릎 꿇게 되는 일이다. 제발 누가 말해다오. 다시 나의 고양이를 만지고 냄새 맡고 쓰다듬을 수 있다고. 그것이 영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아이가 없는 지금은 잠깐 꿈일 뿐이라고.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론 물리학 책을 탐독한 적이 있다. 그때 주워 담은 얕은 지식을 더듬어 보면 시간은 우리가 사는 공간을 구성하는 한 축의 차원에 불과하다. 또한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장소마다 다른 속도를 갖는다. 그러니 그것을 휘거나 방향을 돌려서 내 사랑 야옹이를 다시 만나는 것이 어떤 과학적 설계상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당대의 이론 물리학자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잃게 된다면 우리는 시간 여행에 성큼 다가서게 될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기로 했다.
언젠가 시간여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그 꿈을 잃지 않되,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한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당장 가능하지 않은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보다 현실적인 치유, 건설적인 작업일 테니까. 너를 잃은 폐허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 사랑하는 동물을 잃는다는 것에 대하여, 누군가에겐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나 역시 한 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불경한 사건을 모두가 준비하고 적어도 생각은 해 두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나의 따봉 고양이 미미,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기 전 너의 특별한 여정에 대해, 너와 내가 만들어온 언어에 대해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기억을 꺼내 기록하는 일. 뭇 고양이들에게 귀감이 될 너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것조차 지금은 나를 무척 슬프고 아프게 하지만 시간여행을 준비하는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같다. 그리고 세상 모든 고양이는 가장 아름답고 특별하다. 그래서 이것은 가장 보통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여행을 준비하는 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