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비를 맞으며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비 오는 날이면 마냥 좋았다. 비를 맞으며 뛰어노는 것도,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심지어 소복이 쌓인 눈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듯 일부러 빗물이 고인 웅덩이 위를 툭 밝고 지나가기도 했다.
비가 와도 수업 후에는 온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공을 쫓아다녔다. 그렇게 흙탕물이 튀겨 어지럽힌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 시선에 '축구를 했다'라고 웃음으로 환하게 답하던 시절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운동화가 젖는 것이 당연했고, 엄마가 지저분해진 운동화를 빨아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하지 못하던 철없던 나에게 비 내리는 것 자체가 친구였던 셈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혼자서 대청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듣고 있고 있으면 세상과 내가 마치 하나가 된 듯 평화로운 자유 그 자체였다.
마당에 있는 모든 것들이 빗물이 새로 덧칠을 한 듯 평소보다 더 맑고 진하고 고운 빛을 내고 있었다. 처마 아래 마루에 앉아서 마당을 둘러보는 것은 담벼락 안에 감나무와 꽃과 풀, 그리고 붉은 양동이와 양은 세숫대야를 품은 수돗가가 마치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보였고, 공기 중의 탁한 알갱이들도 모두 떨어지는 비를 타고 지상으로 달아난 듯 상쾌한 산소가 내 몸으로 들어와 몸도 마음도 가벼운 오후를 보내곤 했다.
또 그 풍경이 지루해지면 마루에서 일어나서 태권 자세를 취하며 기왓장처럼 생긴 푸른 널빤지 끝에서 하나둘씩 심장 박동 주기처럼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하나를 주먹으로 맞히는 놀이를 했다.
그 시절에는 숙제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전혀 없었다. 다음 날, 단단한 매를 맞아 붉게 달아오른 토실한 나의 엉덩이조차 담임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즐거움을 느끼던 시절이었으니까!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을 끌어오기 시작하던 사춘기 소년이 되기 전까지의 어린 나는 그렇게 비 오는 날의 운치를 온전하게 만끽했던 자유롭고 행복한 소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겨운 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다. 오랜 가뭄에 반가운 장마였다.
문득 출근길에 정체된 도로 한가운데 차유리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비 오는 날의 오래된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렸다. 한결같이 좋은 추억뿐이었다. 요즘 같은 이상 기후 시기에 짧게나마 자연과 함께 한 나의 어린 시절은 행운 같은 삶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였을까?'
'비 오는 날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 시작은 나의 무관심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이 피던 꽃이 지던, 단풍잎이 떨어지던 낙엽이 쌓이던, 사계절의 변화와 날씨는 내가 하는 일과 취미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었을 뿐, 나는 그 자체에 관심을 주지 못했고 즐기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적에 갖고 놀던 장난감은 점점 나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소중했던 장난감들은 방구석 어딘가에 박힌 채 다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버려진다.
어릴 시절 나의 장난감처럼 비 오는 날은 나에게 더 이상 즐길 수 있는 놀이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그랬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일기 예보를 챙겨 보지도 않고, 출근 시간에 집 밖을 나오고 나서야 비가 내리 것을 깨닫고, 비가 오던지 눈이 오던지 백팩에 항상 들고 다니던 우산을 무심하게 꺼내서 펴고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며 한마디 내뱉곤 한다.
'에이 또 비가 오네!'
아무렇지 않은 듯 어제저녁 주차해 놓은 차로 걸음을 향한다. 톱니바퀴의 이가 다음 자리로 한 칸씩 일정하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날씨의 변화를 느낄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비를 즐겨야겠다.
신호대기 중에 백미러 유리에 고인 빗방울을 통해 비치는 자동차 불빛이 매우 예뻐 보였다. 해가 이미 떠있을 아침 시간이지만, 침울하게 생긴 회색 구름의 어둠을 감지한 차들은 모두 전조등을 켜고 있었다. 그 빛이 백미러를 통해 나의 눈에 비치자,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비를 맞으며 출근할 수는 없지만,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음미하는 출근길은 낭만적이지 않은가?
오늘도 우중충하게 비가 내린다.
오늘의 날씨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고 한들 나의 출근길이 더 즐거웠겠는가?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현재의 삶 속에서 지금 환경 그대로 즐겨야 한다.
어른들은 비를 맞으며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아이들을 이해하면 행복이 보일지도 모른다.